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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칼리스토 프로토콜, B와 D 사이 '선택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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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칼리스토 프로토콜, B와 D 사이 '선택의 딜레마'

'데드 스페이스'에 '바이오하자드4' 요소 더해져
그래픽·음향은 우수하지만 연출·편의성은 아쉬워

'칼리스토 프로토콜' 플레이 중 캡처한 것.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칼리스토 프로토콜' 플레이 중 캡처한 것. 사진=이원용 기자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탄생(Birth)과 사망(Death) 사이 매 순간 선택(Choice)의 기로에 놓인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한 선택이 완벽한 정답인 경우는 드물다. 그것이 어떤 분야에 있어 첫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해 코스피에 데뷔한 게임사 크래프톤이 AAA급 게임에 처음으로 도전하기 위해 내놓은 '칼리스토 프로토콜' 역시 이러한 '선택의 딜레마' 속에서 고심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완벽한 명작이라 보긴 어려웠지만 개발진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개발을 맡은 것은 크래프톤 산하 독립 스튜디오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SDS)다. 게임의 장르는 SF 호러 액션 게임으로, 이 장르의 교과서로 꼽히는 '데드 스페이스'의 원작자 글렌 스코필드 SDS 대표가 개발을 총괄했다.

게임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미국 리뷰 통계 분석사이트 메타크리틱에 등록된 전문가 리뷰 79종의 평균 점수는 73점(최고 100점 기준), 최고 100점에서 최저 30점까지 넓게 분포됐다. 이용자 평점은 PC판 기준 46점, 엑스박스 63점, 플레이스테이션 69점이다.

개발자의 명성이 워낙 높다보니 이 게임은 출시 전부터 '데드 스페이스'의 정신적 후속작으로 불려왔다. 본 기자도 과거 '데드 스페이스'에서 느꼈던 것과 비교해가며 이 게임을 즐겼다. 두 게임 모두 PC판이었다. 이 리뷰에는 두 게임의 서사에 관해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된만큼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이들은 주의하길 바란다.

'데드 스페이스'(왼쪽)과 '칼리스토 프로토콜' 이미지. 사진=일렉트로닉 아츠, 크래프톤이미지 확대보기
'데드 스페이스'(왼쪽)과 '칼리스토 프로토콜' 이미지. 사진=일렉트로닉 아츠, 크래프톤

게임의 핵심 콘텐츠인 전투를 살펴보면, 데드 스페이스와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부던히 노력한 것들이 보였다.우선 벤 워커 SDS 디자이너가 올 6월 인터뷰서 공언한대로 접근전의 중요도가 크게 올랐다. 전작과 비슷한 원거리 무기들은 있지만, 어디까지나 적의 진화를 알리는 신호인 '촉수'를 빠르게 공격하기 위한 수단 겸 보스전의 편의성을 높이는 장비로 주무기가 아닌 보조무기 역할이다.

이용자가 인벤토리(장비 칸)를 원할 때 장비 업그레이드로 크게 늘릴 수 있던 데드 스페이스와 달리 꽤 오랜 기간 장비칸 수가 6칸으로 제한된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탄환 부족이 크게 체감됐고 자연히 원거리 무기의 활용성은 더욱 낮아졌다. 다대일 전투를 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보는 듯한 암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접근전의 중요한 축인 회피 시스템은 이용자들의 혹평을 받았는데 일반적으로 리듬 게임과 같이 정확한 '타이밍'을 요구하는 타 게임과 전혀 다른 형태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키를 누르는 타이밍은 상당히 널널하고 그보다는 적이 휘두르는 '방향'을 잘 살펴보고 키를 누르는 것이 중요하다. 리듬 게임에 취약한 본 기자의 경우 오히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시스템이었다.

다대일 전투 상황을 피하기 위한 또 하나의 키 포인트는 데드 스페이스의 염동력 장치 '키네시스 모듈'의 역할을 계승한 '그립(GRP)'이다. 데드 스페이스에서도 큰 도움이 됐던, 가스통과 같은 투척 가능한 폭발물을 찾아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가시철망, 분쇄기 등 이번작 특유의 '즉사 함정' 오브젝트도 적극 활용, 적의 수를 빠르게 줄여야 손쉽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

액션성에 비해 생각보다 여유로운 전투 템포, 한정된 인벤토리 안에 무엇을 담아가야하느냐와 이 장소에서 어떻게 싸워야 하느냐를 끝없이 선택해야하는 양상 등은 호러 액션 장르 명작으로 꼽히는 캡콤의 '바이오하자드 4'를 떠올리게 했다. 전투만 놓고 본다면 이 게임은 B(바이오하자드4)와 D(데드 스페이스) 사이의 C(칼리스토 프로토콜)라고 봐도 무방하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플레이 중 캡처한 것.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칼리스토 프로토콜' 플레이 중 캡처한 것. 사진=이원용 기자

칼리스토 프로토콜만의 특장점이라면 단연 그래픽과 사운드다. 글렌 스코필드 SDS 대표는 올 6월 서머 게임 페스트에서 이번 작품을 소개하며 광원 물리학과 입체 음향 기술 등을 굉장히 강조했다. 게임을 플레이할 수록 그의 발표가 이유있는 자신감에서 비롯됐음을 느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 또한 그래픽과 음향 면에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나, 2013년을 기점으로 3부작이 마무리된 후 10년 가까이 지난 만큼 그래픽과 음향 모두 진일보했다. 특히 접근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호쾌한 타격감은 원거리 교전 위주였던 데드 스페이스와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개발진의 그래픽 기술이 특히 집중된 분야는 '잔혹성'이다. 이 게임의 주적 '바이오파지'들의 모습은 데드 스페이스의 '네크로모프'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로 기괴하다. 인체를 끔찍하게 비튼 바디 호러 연출과 사실적인 사지절단, 다채로운 사망 씬 모두 데드 스페이스에 비해 진보했다. '고어' 장르의 매니아라면 크게 만족할 것이다.

음향 또한 쇳소리, 발소리, 비명소리와 배경 음악이 어우러지며 긴장감을 주는 데 크게 일조했다. 스테이지마다 음향의 소재와 입체감에 계속 변주가 이뤄져 지루함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쉴 곳에선 확실히 쉬어갈 수 있게끔 하는 완급조절도 뛰어났다. 음향 장비가 좋으면 좋을수록, 더욱 몰입감이 강화될 것이다.

고품질 게임에 으레 뒤따르는 그래픽 버그는 어쩔 수 없는 옥의 티였다. 제멋대로 휘는 오브젝트와 '길막' 현상, 이따금씩 일어나는 순간이동 등이 그것이다. 성능 최적화 역시 썩 매끄럽진 않았다. 웬만한 명작 게임들도 피하기 어려워하는 문제인 만큼 눈에 띌 정도로 심각한 약점은 아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플레이 중 캡처한 것.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칼리스토 프로토콜' 플레이 중 캡처한 것. 사진=이원용 기자

칼리스토 프로토콜이 데드 스페이스와 비교했을 때 단점이라 볼 수 있는 부분은 서사와 연출이다. 잔혹한 연출 못지 않은 심리적 공포감이 더해졌던 '데드 스페이스 1', 공포 요소는 줄어들었으나 서사적 완성도가 높았던 '데드 스페이스 2'에 비하면 적잖이 아쉬운 부분이다.

공포 장르는 "뻔한데도 무서워야" 명작이라는 말이 통용된다. 데드 스페이스 1이나 '아웃라스트'가 대표적인 예시다. 두 게임은 이른 '깜놀(깜짝 놀라게 함)'로 불리는 점프 스케어 요소는 물론, 정신병에 걸린 인물들의 광기 어린 행위를 적나라하게 선보여 심적 공포감을 유발, "귀신이 없어도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게임들이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점프 스케어는 나올 때가 됐다고 하는 곳에서만 나왔고 변주는 거의 없었다. '미친 놈들이 많은 구역'이란 말을 듣고 진입한 곳에 사람은커녕 별다른 몬스터조차 없는 등 일부 의미 없는 연출에 맥이 빠지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의 광기 대신 사지절단된 사체 등을 강조해 잔혹성 묘사는 뛰어났지만 심적 공포 요소는 거의 없었다.

데드 스페이스 1·2에 비해 특히 아쉬웠던 부분은 두 가지다. 첫 째는 '니콜'의 부재다. 니콜은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주인공 아이작의 의도치 않은 선택으로 비극적 최후를 맞은 연인이다. 이를 통해 게임 속 서사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란 강력한 무게감과 몰입감을 부여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주인공 제이콥은 사고사한 직장 동료 '맥스'에게 죄책감을 느끼긴 하지만 무게감은 다소 가벼울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보스전이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최종 보스전은 대체로 시스템적으로는 일반 전투의 연장선 수준이지만 압도적 크기의 거대 괴수를 상대하는 '코스믹 호러'적 연출을 선보여 밋밋함을 커버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최종 보스는 딱히 압도적이지 않은 인간형 괴물이다. 그런데 특별한 공략법이 없는 전투 방식은 그대로다. '엔딩'에 걸맞는 카타르시스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칼리스토 프로토콜' 플레이 중 캡처한 것. 사진=이원용 기자이미지 확대보기
'칼리스토 프로토콜' 플레이 중 캡처한 것. 사진=이원용 기자

이 밖에도 편의성 면에서 소소한 문제점들이 있었다. 대표적 예시는 레벨 디자인이다. '파밍(아이템 농사)'를 위해 돌아가는 길과 지름길을 선택하는 지점이 꾸준히 나오는데 어느 곳이 내가 원하는 길인지 직접 가보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데드 스페이스의 길찾기 모듈과 같은 기능이 있었다면 선택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죽으면 특정 구간으로 돌아가는 자동 저장 방식 또한 불편함을 유발했다. 저장 구간이 다소 널찍하게 잡혀있고 앞서 말한 '파밍을 위해 돌아가는 길'에는 대부분 자동 저장 구간이 없다. 수동 저장 기능이 분명히 있는데 이 역시 가장 가까운 자동 저장 구간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의도인지 버그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의도라면 수동 저장 기능을 왜 추가했는지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한글판 역시 다소 어색했다. 성우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입모양과 음성의 괴리가 눈에 띄었다. 일부 구간에선 아예 한국어 대신 영어 음성이 나왔다. '퓨즈 필요' 대신 '퓨즈 필수의', '입소 경위' 대신 '도화선' 등 오역도 눈에 띈다. 개발사는 미국 게임사지만 퍼블리셔를 맡은 모회사가 한국 업체였던 만큼 더욱 아쉽다.

PC게이머의 숀 프레스콧 에디터는 이 게임에 100점 만점에 79점을 주었다. 그는 "팬들이 원하던 역겨움과 몰입감으로 가득찬 게임이나 다소 뻔한 면도 없지 않았다"며 "SDS는 게이머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이 원하는 게임을 만들 자격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고 평했다.

다수의 아쉬운 부분이 공존함에도 불구하고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확실히 재미있는 게임이다. 이 게임이 명작의 반열에 들지는 모르겠지만 명작을 만들 기술적 역량과 잠재력이 있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 출시와 함께 예고된 DLC, 엔딩에서 암시된 후속작을 통해 크래프톤과 SDS가 이를 증명해보이길 기대한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