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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희망으로 엮은 선행(善行)의 오롯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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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희망으로 엮은 선행(善行)의 오롯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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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
이화여대 삼성홀, 이화발레앙상블(예술감독 신은경)의 기획공연 ‘A&Z’는 이지혜 안무의 발레 「좁은 길 끝에」를 프로그램의 마지막에 두었다. 삶에 관한 사유,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에 대한 발레적 사숙, 도시에 포위되어 촉수의 감각이 마비된 채, 고단한 일정을 소화해내며 여정을 꾸리지만, 녹녹지 않은 삶은 검투사의 투지를 불러온다. 여전히 좁은 문 속에 갇혀, 그 끝에서 찾은 빛줄기가 다시 내디딜 용기가 된다. 오늘도 그 길 끝을 향해 간다.

프롤로그; 냉정한 세상의 단면, 암흑의 한가운데 열정이 사라진 안개 숲을 거니는 것 같다. 여인의 가느다란 빛줄기가 두리번거리듯 방황하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단조로운 선율에 손전등을 든 무용수가 위태롭게 한발 한발 어둠 속을 걸어간다. 삶에 대한 비유는 가혹한 현실의 자극보다는 낭만적 호기심으로 관찰적 태도를 지니게 한다. 타자의 시선은 늘 그러했다.

1장; 손전등의 빛이 하수의 블랙 오브제 속 웅크려 앉아있는 무용수에게 비치고, 무용수는 그 빛에 이끌리듯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 무용수를 더욱 옥죄이듯 가둬버리는 커다란 큐브 영상은 지속해서 천천히 회전하는 삶의 굴레를 상징하고, 답답한 큐브에서 벗어나려 애써 보지만 큐브는 견고하게 흔들림 없이 계속 돌아가고 자유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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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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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


끊임없이 회전하며 큐브 영상이 상수로 이동하면서 시간의 흐름이 시각적으로 보인다. 블랙 오브제를 이동시키며 큐브 영상과 함께 상수로 이동하는 무용수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빠른 심장박동과 같은 건반악기의 두드림과 함께 낮은 음의 현악기 연주는 답답한 무용수의 감정을 대변하며, 현악기의 연주가 빨라지면서 무용수의 움직임도 더욱 강렬해진다.

2장; 빠른 건반악기의 불안감이 현악기로 바뀌고, 솔로 무용수를 가두던 큐브가 네 명의 무용수로 대체된다. 사각 구도의 안무 구성과 좁은 사각 조명은 솔로 무용수가 혼자서 느끼던 고립과 불안함이 관계 속에서도 여전히 존재함을 나타낸다. 군무들의 각진 손동작과 벽에 부딪히듯 밀어내는 발동작은 자신만의 벽을 인지하는 순간 깨닫는 인간의 한계를 시각화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석을 향한 무용수들의 고정된 시선을 반복적으로 구성함으로써 관객들이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단호한 삶의 굴레 속에서 점점 지쳐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안무된다. 이지혜는 안무가 거듭될수록 낭만적 서사 가운데 핏빛 사연을 채워 넣는다. 탈진에 이를 정도의 섬세한 가무(加舞)와 수정은 만족스러운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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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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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


3장; 음악이 잦아들면서 몸부림치듯 움직이던 무용수들이 쓰러지고, 각각의 무용수들을 향해 상수에서부터 희망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인생길의 상징인 빛줄기가 나타난다. 인생의 항해 길에서 등대를 만나 희망을 품듯이 무용수들이 천천히 빛을 향해 움직인다. 이때의 움직임을 더욱 시각적으로 극대화하기 위해 무대 뒷막에 하수를 향해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영상이 함께 연출된다. 빛을 향한 고정된 무용수들의 시선은 희망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순탄치 않은 ‘삶의 여정’의 표현으로 빛을 향해 발끝으로 서서 위태롭게 몇 걸음 걸어가다가 이내 포기하고 뒷걸음치거나 쓰러지기도 한다. 그 좌절의 순간에 느끼는 암흑 같은 감정을 무용수들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는 동작으로 표현한다. 암흑 속에서도 빛은 여전히 존재함을 메시지로 담는다. 무용수들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절망감과 좌절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도록 눈을 가리며 웅크려 드는 동작에서 군무가 무리를 이루며 정면을 향한다.

상황의 전개를 위해 상수행 무용수들의 방향성을 관객석으로 변화시켰으며, 주역 무용수를 등지고 둘러싸는 듯 앉아있는 구도를 통해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여정 속에 있음을 나타낸다. 현악기의 불안한 떨림을 바탕으로 위태롭고 불안정한 분위기 연출은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가느다란 사선 조명을 활용하였고, 그 속에서 무용수들이 줄지어 앉아 뒷모습으로 웅크리거나 희망을 갈구하듯 팔을 위로 뻗어 보지만 어둠으로 사라지고 한 명의 무용수만 남는다.

4장. 사선의 길 조명 속에 홀로 남은 무용수는 진공의 상태에 놓여 죽어가듯 무음 속에서 천천히 사그라져 간다. 조용한 피아노 연주와 함께 흰옷의 무용수가 등장하고, 쓰러진 무용수 주변에서 다시 한번 희망을 이야기하듯 움직인다. 다시금 발견한 희망의 빛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는 무용수의 뒤에 정면을 향해 전진하는 무용수의 양옆으로 3차원 모노톤의 건물의 배경 영상이 보인다. 피아노 연주에 현악기가 추가되면서 벅찬 희망의 무용수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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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


무대 중앙을 가로지르는 조명 속의 무용수는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발끝으로 위태롭게 전진하거나 한 다리로 흔들거리며 서 있는 움직임으로 희망 이면의 불안과 외로움을 표현한다. 안무가는 희망을 향해 가는 무용수의 긍정 심리는 결국 우리가 모두 희망에 대한 확신하게 될것임을 기원한다. 마침내 그 길의 끝에 다다른 것 같이 무대 앞쪽에 도착한 무용수의 손동작과 함께 최고조의 현악연주가 멈추고, 암전에 조용히 피아노 연주가 연결된다.

조명이 천천히 다시 켜지면, 흰옷의 무용수가 이전과 다르게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그 길을 다시 걸어간다. 공간은 희망에 더욱 가깝게 확장되고, 빛이 쏟아지는 긍정적이고 밝은 분위기가 연출된다. 흰옷의 무용수는 무대 앞쪽을 향해 전진하며 주변을 점차 밝히며 공간을 확장하며, 희망의 빛을 주변에 알리듯 무용수를 한 사람씩 무대로 불러들인다. 풍성한 현악기의 심포니는 십자가 조명 아래 환희에 찬 듯 무용수들이 담긴 금빛 영상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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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안무의 '좁은 길 끝에'


에필로그; 무용수들은 화려하고 밝은 색상의 겉옷을 착용하고, 지속해서 보여주었던 정면을 응시하는 고정된 시선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향의 시선을 사용하도록 구성함으로써 이들이 좁은 길을 지나 길 끝에 있는 빛 속에 도착하였음을 표현해낸다. 여섯 무용수는 긍정적이고 희망에 찬 움직임으로 무리 지어 무대 전체를 누비다가, 다시 등장한 흰옷의 무용수를 따라 무대 뒤쪽에 줄지어 서고 정면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다. 가지런한 희망의 다짐이 시작된다.

이때, 앞 장면의 전진 움직임과 같이 눈을 가리거나 고정된 정면 응시를 우회하여 자유롭지만, 더 멀고, 높은 시선이 잘 보이도록 움직임을 구성한다. 이는 좁은 길 끝의 빛 속에 도착한 이들의 기쁨과 환희를 관객들에게 점차 가까이 다가가면서 직접 전달하기 위함이며 마지막을 V자 대형으로 구성함으로써 좁은 길 끝에서 만난 희망의 빛이 계속 이어지는 방향성과 지속성을 상징한다. 이지혜, 김다애, 서민영, 최솔빛나라, 이정은, 배민지, 박지현이 열연한 「좁은 길 끝에」는 이지혜 안무의 미적 형식과 삶을 대하는 깊숙한 감각으로 수작(秀作)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