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제도 개편으로 국민레저 정착 '홍콩 경마' 롤모델 삼아야

공유
0

제도 개편으로 국민레저 정착 '홍콩 경마' 롤모델 삼아야

■기획 '100년 한국경마, 국민레저로 달리고 싶다' - (하) 홍콩경마, 어떻게 '경마=도박' 인식 바꿨나
180년 역사의 홍콩경마도 초기엔 불법도박·도박중독 문제로 골치 앓아
2006년 의회가 도박세 개정...세율 낮추고 환급률 높여 '시장 양성화' 성공
불법경마 인구 절반 가까이 감소…우리 정부는 "온라인마권 반대" 되풀이

내년은 '한국 경마(競馬) 100주년' 되는 해다. 일제 강점기에 탄생해 한국전쟁의 상흔을 극복하며 100년 동안 '국민의 대중오락'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 경마를 덮친 '코로나19 재앙'은 올해로 이어져 경마를 포함한 한국 말(馬)산업의 위기를 불러올 정도로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국내 사행산업 시조(始祖)격으로 한때 사행산업 매출 비중 70%를 차지하던 한국 경마는 지난해 매출 비중이 10%로 급감했고, 올해 10월까지 1%로 쪼그라들어 거의 '소멸' 지경에 처해 있다. 다행히 11월부터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전환으로 경마장 고객 입장이 재개됐고, 한국마사회 소속 경주마 '닉스고'는 한국 경마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경주마 랭킹 1위에 올라 한국 경마의 잠재력을 국내외에 알리는 쾌거를 거뒀다.

코로나로 고사 위기에 내몰렸던 경마업계는 타개책으로 '온라인 마권 도입'을 줄기차게 요구하며 경마를 사행산업이 아닌 국민 레저산업으로 봐 줄 것을 정부와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다. 아울러 말산업계와 핵심 지원기관인 마사회의 혁신도 요구하고 있다.

시행 100주년을 맞는 한국 경마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한국 경마가 진정한 '국민 레저'로 발전하기 위한 길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로또·토토·경륜·경정 등 사실상 국내의 모든 사행산업에서 시행 중인 '온라인 발매'를 유독 경마만 불허하고 있는 정부의 입장은 하나로 요약된다. “경마를 보는 국민의 부정 인식이 커서 아직은 온라인 발매를 도입할 수 없다”이다.

이같은 정부의 주장은 ‘중대한 흠결’을 안고 있다는 것이 경마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국민들 ‘인식이 변해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바꿔야’ 국민 인식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성공 사례로 경마업계는 홍콩 경마를 꼽는다. 우리나라와 같은 유교권 문화이자 과거에 우리처럼 ‘경마는 도박’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경마제도를 개혁해 불법경마를 크게 줄여 경마를 국민레저로 정착시킨 홍콩의 사례가 한국경마의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다는 주장이다.

◇홍콩 경마, 2006년 도박세 개혁...세율 낮추고 환급률 높여

홍콩 해피밸리 경마장에서 많은 관중들이 경주마 시합을 응원하고 있는 모습. 사진=호스차이나원닷컴이미지 확대보기
홍콩 해피밸리 경마장에서 많은 관중들이 경주마 시합을 응원하고 있는 모습. 사진=호스차이나원닷컴


홍콩 경마는 180년 전인 1841년 영국인이 홍콩에 상륙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한국마사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홍콩자키클럽(HKJC)’이 출범했다.

홍콩자키클럽은 마사회와 같은 독점 경마시행체이지만 민간 비영리단체이며, 경마 외에 토토(축구)와 로또 사업도 관장한다. 우리로 치면 마사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복권수탁사업자(동행복권)를 합친 조직인 셈이다.

흔히 ‘중국인은 도박을 좋아하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중국계의 나라인 싱가포르와 마카오도 불법도박과 도박중독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고, 홍콩 역시 ‘경마=도박’이라는 부정 인식이 컸다.

그러나 이런 부정 인식에 변화를 가져다 준 계기가 다름아닌 2006년 홍콩 입법위원회의 ‘도박세법’ 개정이었다.

도박세법 개정으로 홍콩 정부는 경마 과세를 기존 ‘매출액에 일정 세율의 원천징수’에서 ‘순이익에 일정 세율의 변동세액 징수’로 변경시켰다. 또한 환급금 등 경마제도 운영 권한을 홍콩자키클럽에게 대폭 이양했다.

법 개정으로 홍콩자키클럽은 환급률을 올리고 ‘리베이트 제도’를 도입했다. 얼핏 보면 세금도 줄고 홍콩자키클럽 수익도 감소시킬 것 같은 조치들이었다. 제도개편 전 마권매출의 구성비율이 환급금 81%, 제세금 13.4%, 홍콩자키클럽 수익금 5.6%에서 제도개편 후 환급금 84%, 제세금 11.8%, 홍콩자키클럽 수익금 4.2%로 변경됐다.

그러나 제도의 변화 이후 홍콩자키클럽의 매출과 수익은 오히려 제도 개편 전보다 더 늘어났고 세금 납부액도 더 걷혔다.

환급률을 3%P 높이고 리베이트를 제공하자 마권매출액은 60% 증가했다. 제세금 총액은 42% 증가했고 홍콩자키클럽 순이익은 28% 증가했다. 세율과 수익률을 모두 인하했음에도 매출이 늘어 실제 거둬들인 세금과 수익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성공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름아닌 ‘합법경마를 불법경마만큼 매력있게 만들어 불법경마 이용자를 흡수한다’는 홍콩자키클럽의 전략이 먹혔기 때문이다.

세계 경마시행국의 공통된 골칫거리인 불법경마는 세금이 없어 환급률이 높고, 베팅에 제한이 없으며, 온라인 등 접근이 편리하다는 여러 매력을 지닌다. 여기에 더해 불법경마 운영자는 큰 돈을 잃은 손님에게 일정 금액의 리베이트(현금 위로금)도 제공한다.

홍콩자키클럽은 환급률을 높여 불법경마 환급률과 크게 차이가 없도록 했다. 또한 불법경마와 비슷한 수준의 리베이트 제도도 도입했다.

제도 개편에 앞서 홍콩자키클럽은 이미 ‘온라인 마권발매 제도’도 운영하고 있었다. 초기에는 전화(ARS) 구매방식이 중심이었다가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구매방식이 늘고 있다.

환급률도 높고, 접근성도 우수한데다가 리베이트까지 선사하니 많은 불법경마 이용객들이 합법경마로 돌아섰다. 이용객 입장에서 불법경마의 가장 큰 위험요소인 ‘(불법)경마 운영자가 언제 내 베팅금을 들고 잠적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합법경마에서는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홍콩자키클럽 자료에 따르면, 홍콩 불법경마시장 규모는 도박세법 개정과 경마 환급제도 개편 이전인 2005년 약 1000억 홍콩달러(약 15조 원)에서 현재 연간 500억~600억 홍콩달러(약 7조 5000억~9조 원) 수준으로 크게 위축됐다. 불법경마 인구와 수익 절반이 빠져나간 것이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 2019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불법도박 실태조사에서 한국 경마 환급률은 73%, 불법 사설경마 평균 환급률은 88%로 합법경마와 불법경마 간 환급률 차이가 여전히 크다. 국내 경마팬에게 불법경마가 여전히 매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더욱이 합법경마는 온라인 발매를 하지 않아 불법경마 성행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는 게 경마업계의 공통 견해이다.

국내 로또와 토토는 환급률이 경마보다 더 낮아 스포츠토토 환급률은 60.0%, 복권(로또) 환급률은 50.0%이다.

◇‘발상의 전환’으로 도박을 레저로 승화시킨 홍콩…한국은 ‘언감생심’

한국 어린이 승마선수가 승마 연습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마사회이미지 확대보기
한국 어린이 승마선수가 승마 연습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마사회


홍콩처럼 제도 개혁으로 불법경마를 제한시킨 사례는 ‘경마=도박’이라는 인식을 해소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경마업계의 설명이다.

경마업계에 따르면, 현재 홍콩에서 경마를 도박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없다. 홍콩의 2개 경마장에서 경마가 열릴 때마다 젊은 여성들은 가장 화려한 옷을 입고 경주를 관람한다. 한국에서 고위 관료들과 기업인들이 골프장에서 중요한 대화를 나누듯이 홍콩에서는 경마장에서 중요한 만남과 대화가 이뤄진다고 한다.

또한 홍콩자키클럽은 홍콩 최대 납세자로 2015년 한 해에만 200억 홍콩달러(약 3조 원)를 세금으로 냈다. 뿐만 아니라 연간 약 40억 홍콩달러(약 6000억 원)를 홍콩 각 사회 분야의 자선·기부에 사용한다. 금액 기준으로 세계 톱10의 자선·기부단체에 오를 정도이다.

2015~2016년 홍콩자키클럽 연례보고서에서 홍콩자키클럽의 연간 총 매출액은 2000억 홍콩달러(약 30조 원), 이 가운데 경마매출이 1000억 홍콩달러(약 15조 원)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홍콩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도 홍콩 같은 제도 개혁 성공사례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내 경마는 환급률이 낮아 사행심이 높다”고 말했고, 또다른 농식품부 관계자는 “국회 차원에서 경마 관련 세제개편 논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생각뿐이었다. 지난 2년 간 정부 차원의 경마 세제개편 논의는 거의 없었다. 당장 최신 IT 기술로 청소년 접근과 과몰입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다는 ‘온라인 발매’조차 혹시 불거질지 모를 논란을 지나치게 의식해 반대하고 있는 마당에 ‘발상의 전환’에 가까운 세제개혁과 환급률 개편을 농식품부가 주도할수 있겠느냐는 말산업계의 자조 섞인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실제로 농식품부는 지난해 경마관계자 4명, 외부전문가 5명, 농식품부 관료 1명, 마사회 임원 1명 등 총 11명으로 구성된 한국마사회 및 한국경마제도 혁신협의회를 구성하고 지난 10월 ‘한국경마 상생 거버넌스 구축 및 한국마사회 미래상 재정립을 위한 혁신방안’ 최종안을 확정했으나, 농식품부는 정작 최종안 발표를 미룬 채 온라인 발매 시행에 관한 연구용역만 반복하고 있다.

경마업계는 단기적으로 온라인 발매를 즉각 도입하고, 장기적으로 세제개편 등 제도개혁에 나설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또한 경마 수익금의 대부분을 국세나 지방세로 납부하는 대신 현재의 복권이나 토토처럼 기금 형태로 운영해 말산업 육성·발전에 직접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농식품부의 의뢰를 받아 혁신방안을 만든 삼일회계법인 유옥동 상무는 "한국마사회법상 마사회의 목적은 축산발전과 국민의 복지증진·여가선용이고 경마는 이를 위한 수단"이라며 "마사회는 경마 시행을 통해 축산발전기금·레저세 등을 납부하지만 그 사용은 정부·지자체 등이 주관해 집행 효과가 떨어졌던 만큼, 이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독예방시민연대 강신성 사무총장은 “온라인 환경은 필수재인 만큼 온라인 발매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다만 장점과 동시에 위험성도 있는 만큼 이용자 보호 법안도 동시에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혁신협의회 외부전문가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준휘 법무·사법개혁연구실장은 "혁신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한 경마관계자 4명과 외부전문가 5명 중 온라인 발매를 반대한 위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합법 온라인 경마도 과몰입 등 부작용이 있으나 이는 불법 온라인 경마와 달리 관리가 가능한 만큼, 수요관리 차원에서 온라인 발매를 통해 불법 온라인 경마 이용자를 합법시장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혁신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했던 고위 관료 출신의 한 외부전문가는 "실제 경마장에 가보면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경마는 분명 스포츠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를 외면하고 도박이라는 한쪽 측면만 보고 경마산업을 방치하지 않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