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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전문가들이 추정하는 美 ‘사상 최다’ 퇴직 사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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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전문가들이 추정하는 美 ‘사상 최다’ 퇴직 사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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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퇴사 사태(Great Resignation)'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경제 회복세로 새로운 일자리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급증하는 현상이 미국 사회에서 잦아들기는커녕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는 지난 8월 현재 미국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사람이 약 430만명으로 집계돼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고 지난 12일(현지시간) 발표해 관련업계를 비롯한 경제계 전체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국 전체 고용인구의 2.9%가 8월 중 퇴사했다는 얘기로 이는 BLS가 지난 2000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 고용시장에서 목격되고 있는 이처럼 유례 없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놓고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교적 크게 공감대를 얻고 있는 대규모 퇴직 사태의 배경은 미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사태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급증한 상황을 이용해 더 나은 처우나 더 나은 근로 조건을 찾아 직장을 옮기려는 사람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여기에 더해 새로운 가설들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노동자의 복수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노동자의 복수’가 본격화된 것이라는 가설을 내놨다.

코로나19 사태가 지난해 봄 터진 뒤 무려 2000만명이 넘는 미국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었는데 이제 경제 회복세로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면서 몸값이 크게 오른 노동자들이 당한대로 되돌려주려는 일종의 복수심이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번아웃 증후군


코로나19 사태라는 미증유의 재난 와중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소진되거나 탈진하는 ‘번아웃 증후군’이 대규모 퇴직 현상의 배경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고용 전문가 로버터 라이시는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등골만 휘고 처우는 형편 없는 저임금 근로 환경에 환멸을 느낀 노동자들이, 정신적으로 탈진한 근로자들이 퇴사 사태의 배경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코로나에 걸릴 위험을 안고 일하는 과정에서 지칠대로 지친 직장인들 사이에서 향후 직장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주장했다.

UC버클리대 교수로 있는 그는 미국 경제계가 현재 겪고 있는 심각한 구인난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내놓으면서 “애초에 인력난 같은 것은 없었다”면서 “마음놓고 자녀를 기를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고 충분한 임금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없었고 유급휴가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없었고 건강보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문제들이 개선되기 전까지 근로자들이 직장으로 되돌아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높아진 근로자 교섭권


무디스애널리틱스의 마크 잰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고용시장의 무게 중심이 사용자에서 근로자로 기울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가설을 내놨다.

그는 “미국의 현재 고용시장은 일자리가 급증하면서 근로자들의 교섭권이 강화된 상황”이라면서 “최소한 최근 20년간 사용자에 휘둘려왔던 근로자들이 고용시장의 수요와 공급 구조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근로자들이 올라간 몸값에 맞춰 집단적으로 세를 과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잰디 이코노미스트는 주정부에서 지급하는 기존 실업수당에다 연방정부까지 특별히 실업수당을 얹어주면서 실직자들이 챙기는 돈이 많아진 것이 퇴사 현상을 부추긴 것이 아니냐는 해석에 대해서도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사실상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퇴직자 규모가 역대 최고를 기록한 것은 연방정부의 특별 실업수당 지급 기한이 지난 9월 만료된 이후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대규모 퇴직사태의 긍정적인 측면


대규모 퇴직 사태가 미국 경제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아울러 제기됐다. 기업들이 근로환경을 개선하는데 팔을 걷어붙이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 집리크루터의 줄리아 폴락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 퇴사 현상은 기업들로 하여금 근로환경과 근로자의 처우을 개선하도록 하는 압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울러 코로나 사태로 이미 널리 확산된 재택근무 문화를 선호하는 근로자들이 크게 늘어난 만큼 기업들도 탄력적인 근무제도를 대폭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폴락은 이같은 현상이 단기적인 현상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런 추세가 길게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기업들이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