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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현의 교육단상] 대학 평가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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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현의 교육단상] 대학 평가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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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현 전 중부대 총장
대학이 정부의 규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져야 하는가? 이 질문은 우리나라 대학정책에 있어 참으로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뜨거운 화두이다. 지난 8월 17일 교육부는 3년마다 반복하고 있는 대학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행정적으로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불리는 이 평가에서 평가 대상 285개 대학 중 52개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기본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이들 대학 중에는 인하대 성신여대 등 전통과 명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립대학들도 있고 군산대와 같은 국립대학들도 있다. 이 평가 결과는 정부의 재정지원과 신입생 모집 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대학가는 충격에 빠졌고 당연히 해당 대학들과 대학협의체들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을 표출하고 있다. 대학을 정부가 행정적인 획일적 잣대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가? 이 해묵은 논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자율성과 책무성은 대학 경영의 핵심적인 동시적 원리이다. 적어도 학교 제도에 있어 대학은 한 사회에서 최고의 지적 활동을 하는 곳으로서 그 전문성에 기초한 대학의 자율적 운영은 필수적이다. 동시에 대학의 사회적 역할 특히 교육 활동은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중추적인 불가결한 요소이다. 대학이 갖는 학생 개인에 대한 책무는 물론 사회적 책무로서의 교육적 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육부의 대학 평가는 대학의 자율성과 책무성이라는 이 두 중요 원리가 서로 충돌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정책이다.

교육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은 대학의 활동 중 연구 활동은 제외되고 교육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역량진단은 기본적으로 대학이 ‘얼마나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있는가’를 평가한다. 평가 내용은 크게 두 영역 정성평가와 정량평가로 나뉜다. 이 두 영역을 간략히 검토해 보자.

정성평가에서는 대학의 교육과정을 어떤 절차를 거쳐 운영 관리하고 있는가를 확인한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는 세부적인 사항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선택한 내용과 방식으로 가르친 결과를 스스로 평가하고 그 평가 결과의 분석을 기초로 교육과정을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느냐에 초점을 두고 평가한다. 실행-평가-결과 환류의 절차는 효율적인 교육과정 운영의 기본적인 요소로서 초중등 교육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이런 절차는 사실상 교육과정의 운영뿐 아니라 세상만사의 과업을 개선하는데 적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일처리 방식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절차를 대학이 실행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교육부가 왜 이 뻔한 것을 평가할까? 사실상 많은 대학들이 교육과정 운영에서 이 절차를 충실히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의 수 많은 전공 학문 분야에서 교육학을 제외하면 어떻게 잘 가르킬 것인가를 연구하고 학습하는 전공은 거의 없다. 교수들이 전공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배웠어도 그 지식을 잘 가르치는 지식과 기술은 별도로 학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의 책무성인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운영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문성도 동시에 갖추어야 하는데 실제로 대학이 그 전문성과 책무성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소수라 하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고 실제 하고 있는 대학은 이 뻔한 것을 왜 평가받아야 하는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며 대학의 교육 전문성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교육부는 이 비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영역인 정량평가에서는 잘 가르치기 위한 조건들을 얼마나 구비하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교육부가 선택한 7가지 여건으로서 예를 들면 학생등록금 이외에 얼마나 많은 부가적인 예산을 교육비로 사용하고 있는지, 교수수는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지, 정원에 비하여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입학하고 재학하고 있는지 등이다. 이런 여건들은 숫자인 %로 계산되기 때문에 정량평가라 칭한다. 이 정량평가가 문제되는 것은 정성평가와 달리 이 7가지 요소들이 교육 결과, 교육의 질을 직접적으로 확인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교육예산이나 교수수가 많다고 학생들의 교육 만족도나 학습의 효과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평가 영역은 대학의 구조를 심각하게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예를 들면 학교 규모가 작고 추가적인 예산 확보는 어렵지만 대학경영자와 교수들의 열의와 전문성으로 교육의 질은 얼마든지 높일 수 있다. 한정된 예산의 범위 내에서 교수수를 늘리기 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수지만 교수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수를 늘린다거나 연수 기회를 많이 제공하거나 행정 직원들의 수를 확대하는 전략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부의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이런 선택은 불가능하다. 이런 평가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대학의 기형화의 예를 보면 교수와 달리 행정직원 수는 평가 항목에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지방 대학들이 예산절감을 목적으로 지속적으로 행정직원을 감축하여 겸직이 늘고 결과적으로 대학 행정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있다. 이것이 부메랑이 되어 교수학습의 질을 추락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의 결과가 아닌 수단을 평가함으로써 대학들을 획일화시키고 결과적으로는 교육의 질을 훼손하고 있다. 교육부의 무지가 아니라면 대학 책무성에 대한 지나친 염려가 무모한 규제가 되어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되는 대표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대학에 대하여 얼마나 자율성을 부여할 것인가, 어떻게 책무성을 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다. 대학은 설립주체별로, 설립목적별로, 지역별로, 규모별로, 성장배경별로, 현재여건별로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한 과정과 방법을 달리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은 교육의 질에 대한 책무성 담보를 위한 전문성 향상을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하고, 교육부는 평가에 좀 더 예민하고 세련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엄상현 전 중부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