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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일본의 상투적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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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일본의 상투적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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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문재인 대통령이 스페인 상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왕국전도’를 보고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보여주는 아주 소중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일본이 반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자민당 내 ‘영토에 관한 특별위원회’의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 위원장이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다른 것”이라며 “이것을 다케시마(竹島)라고 기뻐하는 한국의 상투적 수단”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다케시마’는 일본이 독도가 자기들 것이라며 붙인 이름이다.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본 ‘조선왕국전도’는 18세기 프랑스 지리학자이자 지도 제작자인 장 밥티스트 부르기뇽 당빌이 발간한 ‘신중국지도첩’에 포함된 지도라고 했다. 그랬으니 지도의 제작연대도 18세기쯤이었을 것이다. 일본은 그 지도에 있는 독도를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18세기쯤’에도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을지 따져볼 일이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은 독도를 ‘리양고’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18세기가 아닌 19세기에 그랬다.
독도를 서양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19세기인 1849년이었다.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Liancourt)호’가 독도를 처음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독도에 자기들의 배 이름을 그대로 붙였다. 독도를 ‘리앙쿠르’라고 부른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독도를 ‘리앙쿠르’라고 하자, 일본 사람들도 따라서 부르게 되었다. ‘리양고’ 또는 ‘리랑고’라고 불렀다. ‘리앙쿠르’라는 발음이 일본 사람들에게는 좀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50년 가까이 흐른 1894년에도 일본의 신문은 독도를 여전히 ‘리양고’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독도는 1900년 ‘근대적인 법규’에 의해서 조선의 영토로 재확인되었다.

이 같은 독도의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 독도는 일본의 섬일 수가 없다.

그랬던 일본이 1905년에 독도를 자기들 영토로 ‘슬그머니’ 편입시켰다. 대놓고 편입하지 못한 이유는 뻔했다. 세계 ‘열강’의 눈이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일본은 자기들 외교관마저 ‘독도 편입 사실’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부산 주재 일본영사관은 편입 5개월 후에 자기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서도 여전히 독도를 ‘리양고’로 표기하고 있었다. 20세기 초에도 독도는 ‘리양고’였던 것이다.

이랬던 독도를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라고 우기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이라는 것까지 만들며 해마다 행사까지 벌이고 있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홈페이지 지도에 독도를 자기들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스페인 주재 일본대사관을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겠다고 하고 있다.

신도 요시타카라는 위원장은 “한국의 상투적 수단”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틀렸다. “일본의 상투적 수단”일 뿐이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bellykim@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