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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의 디자인 인사이트(28)] 공공기관의 디자인 지원 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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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의 디자인 인사이트(28)] 공공기관의 디자인 지원 사업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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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발간한 '디자인산업통계 2020'을 보면 국내 디자인 산업 규모는 2019년 기준 18조3000억 원이고 전체 디자인전문업체의 매출액은 약 4조원에 이르며 전문 인력은 33만 명 수준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디자인 산업의 용역 구조가 특히 눈에 띄는데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디자인 용역 비중은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규모였다. 그러나 2020년 현재 전체 용역 구성 대비 10%가 채 안 되는 수준이다. 중견기업 이하 중소기업이 전체 디자인 용역의 반 이상을(62%)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부분이며 공공기관의 비중 또한 전체의 17%를 차지할 정도로 커진 점이 흥미롭다.

이는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로 특히 제품 개발이 절실한 중소기업의 이른바 '제조업의 탈(脫)한국'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ODI) 규모는 최근 4년(2017~2020년)간 눈에 띄게 증가했는데 이 시기 직접투자 순유출액, 즉 ODI와 FDI(외국인직접투자)의 격차는 총 41조에 달하며 직전 4개년보다 2배 이상 크다. 특히 지난 한 해 직접투자 순유출액만 11조6000억 원으로 역대급이다. 최저 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 같은 경직된 노동시장과 대비되는 규제 많은 기업 환경에서 제조업의 엑소더스(Exodus)는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歸結)로 보여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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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붕괴에 따른 피해는 일차적으로는 고용 시장에 큰 한파를 주었고 관련 서비스 분야 역시 한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황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디자인 용역 시장의 17% 수준인 공공기관의 지원 과제는 디자인 전문 업체로서는 필수적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의 디자인 용역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필자가 직접 살펴보니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선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일례로 특정 공공기관의 디자인 지원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모 기관의 전년도 '제품화 사업 제작전문기업 모집' 공고의 경우 디자인 제작 부분의 사업비를 최대 400만 원까지 지원했는데 이조차 디자인 제작, PCB 설계제작, 외형 제작 중 건당 기준이어서 실제 지원비용은 더 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래 도표를 보면 디자인 리서치부터 디자인 방향성, 3D 모델링(Modeling)과 렌더링(Rendering), 최종 결정 디자인의 3D 시뮬레이션 동영상, 디자인 시방서 지원, 디자인출원등록 중에서 지원 내용을 결정한다고 되어 있는데 항목별로 보면 거의 모든 디자인 프로세스가 포함된 구성이지만 시방서와 디자인 출원을 제외한다면 한 개 분야라도 제대로 수행이 가능한 금액인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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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관의 디자인 '지원 내용 및 범위(안)' 도표

디자인이 완료되기까지 다양한 아이디에이션(Ideation, 디자인 구상 등) 과정을 거치고 기본적인 시장 조사와 아이디어 스케치 같은 최소한의 프로세스 없이 어떻게 3D 모델링과 렌더링이 가능하다는 것일까? 도표의 디자인 리서치, 디자인 방향성을 포함하여 최종 디자인을 볼 수 있는 3D 렌더링까지 한다고 가정했을 경우는 더욱 수긍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실제로 디자인 리서치만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기업의 경우, 보고서 1건의 연구 결과물이 업체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개 수천만 원에 이른다.

상기 도표가 안이라고 주장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기관에서 요구하는 디자인 리서치 수준이 설마 대학생들 과제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현실과 매우 동떨어져 있는 안이다.

최종 결정 디자인 3D 시뮬레이션 동영상의 경우도 그렇다. 영상의 경우 프레임(Frame)을 기준으로 대개 1분 단위로 단가를 산정하는데 3D 시뮬레이션의 특성상 제품의 형태와 구조, 성능 등 기본적인 정보만으로 구성해도 영상 기획, 편집, 모션그래픽(Motion Graphic) 등 최소한의 작업이 필요하다. 더구나 해당 사업의 특성상 3D 데이터(Data)가 없으면 모델링까지 추가로 디자인 기업에서 떠맡아야 할 수도 있다.

상기 사례와 같은 저렴한 비용에 과도한 결과물을 요구하는 디자인 지원 과제도 문제지만 공공 기관의 저가 디자인 발주에 대한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디자인 기업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기관인 (사)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KODIA, 연합회장 안장원)의 김태봉 사무총장(부회장)에 따르면 이러한 관행에 맞서 저가 발주 공고에 대하여 지속적인 정정 요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지방의 모 기관에서 공고한 '중소기업 맞춤형 지원사업'에서 기업당 1000만 원의 비용으로 소비자 조사, 모형 제작(Mock up)까지 포함시킨 공고를 정정 요청하여 외형 디자인으로 국한시키고, 차년도에는 산업디자인 대가 기준을 준용하도록 조정한 사례도 있다.

그렇다면 디자인 용역 대가에 대한 국가 기준은 없는 것일까?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2019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에서는 산업디자인 대가 기준을 공표하였다. (사)한국디자인산업연합회는 2016년 산업디자인 대가 기준의 산정 방식을 도출하였고 제품, 시각, 패키지, 서비스디자인 분야의 표준품셈을 개발하여 디자인 대가 기준 종합정보시스템(https://www.dsninfo.or.kr/main/index.do)을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을 지원받는 기업 입장에서야 한 푼이라도 더 지원받는 게 좋겠지만 이런 식의 기준 없는 지원은 결과적으로 디자인 용역의 거래질서를 교란시키고 과당 경쟁으로 덤핑 사례가 빈발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디자인의 질적 수준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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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씽크디자인연구소 대표

시장과 동떨어진 저가 발주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말도 안 되는 과도한 업무 범위는 유능한 디자인 전문가들의 시장 탈피를 가속화할 뿐이다. 이는 곧 국가디자인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을 공공기관의 담당자들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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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한 씽크디자인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