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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원조' 최치원 선생의 '유불선 통합과 풍류도', 후손이 소설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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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원조' 최치원 선생의 '유불선 통합과 풍류도', 후손이 소설로 풀어냈다

최진호씨, 30여 년간 장편소설 '최치원' 전5권(집사재)으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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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선생의 후손 최진호씨가 고운의 유불선 통합 철학과 우주의 본질을 파헤친 소설 「최치원」(도서출판 집사재 펴냄) 전 5권(1권 ‘성인과의 만남’, 2권 ‘통찰의 지혜’, 3권 ‘꿈꾸는 별’ 4권 ‘하늘의 비밀’ 5권 ‘눈으로 볼 수 없는 세계’)을 펴냈다.

최진호씨는 30여 년 동안 최치원 사료 섭렵, 유적지 탐사 등의 사적 물증을 바탕으로 「최치원」을 집필해왔다.

장편소설 「최치원」은 전래하거나 현존(現存)하는 사료들을 바탕으로 개혁적 지성적 목민관의 삶, 유불선(儒佛仙)은 물론 풍류도까지 설파한 종교인, 철학자·대문호로서의 업적과 다정다감한 인간적 면모에 이르기까지 세련된 필치로 정갈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고운의 진면목을 다각적으로 분석, 조명하여 최치원 연구의 새로운 단초를 제공하고 있어, 다양한 장르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역사소설에서 팩트와 픽션의 구분은 애매하다. 일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소설이라 하기 어렵고 상상력이 없으면 소설이 아니다. 소설 「최치원」도 독자의 상상력과 흥미 유발을 위해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고, 최치원의 정신세계가 부각된다. 작가 최진호씨는 최치원의 애국심, 개혁 사상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회 통합을 시대적 화두로 제시한다. 최치원은 1100여 년 전에도 국익과 모두의 올바른 가치관을 위해 몸 바쳐 노력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다.

현존 최치원에 관한 전기나 평전은 없고 소설도 찾기 힘들다. 소설 「최치원」에는 최치원의 복잡다단한 생애가 잘 그려져 있다. 소설은 변화가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는 것이 특성이다. 소설 「최치원」 속에는 최치원과 연관되는 헌강왕, 진성여왕, 김가기, 최승우, 견훤, 선종과 당나라의 장군 고병, 고운, 배찬, 두순학, 황소, 왕선지 등의 인물이 등장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소설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증거는 중국에서 찾아낼 수 있다. 최치원이 종사관으로 봉직했던 중국 장쑤성(江蘇省) 양저우(揚州)시에는 최치원을 기리는 기념관이 서 있고, 10월 15일을 최치원의 날로 지정하고 매년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치원의 업적은 양저우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 그들은 ‘촉규화’(蜀葵花)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같은 문장과 역사를 학습하지만, 위대한 선조에 대한 숭조 사상과 기념관 부재 등 국내 현실은 열악하다.

최치원 사상은 한류 문화의 뿌리이며, 한류 문화의 아이콘이라는 믿음으로 소설 「최치원」은 탄생되었다. 국가와 국민이 태평성대를 구가하도록 언행이 초지일관한 삶을 실천한 지도자를 바로 알림과 동시에 최진호 소설가는 “위대한 선각자 최치원은 천 년 전에 살았던 전설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으면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교훈을 건네주는 큰 스승이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 이 소설을 출간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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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진호씨.


신라에서 건너간 18세 소년이 당나라 희종 황제의 어전시에서 장원 급제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당나라에서 관리가 된 20세의 젊은 최치원은 지금의 남경 근처인 율수현 임지에 근무하면서 당시 힘없고 어려움에 처해 강물에 투신하여 죽은 두 자매의 무덤 앞에서 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시를 써주었을 만큼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를 보여 줌으로써 현실을 어렵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해 정치를 더욱더 잘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다.

당나라 유학생 최치원은 당의 몰락을 목도하고 새 세상의 태동을 예감한다. 당이 전란에 휩싸여 있을 때, 최치원은 붓 한 자루로 적장 황소에게 부당함을 지적하여 그를 패퇴시킨 공로를 당나라 조정에서도 높이 평가했다. 황제는 자금어대를 하사하면서 언제 어느 때나 알현을 허락했다. 신라로 귀국해서 왕족과 호족이 기근 속 농민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것을 보고 신라말 조정을 향해 지속적 개혁을 촉구했다. ‘시무십조’ 개혁안으로 기득권층을 압박했다.

소설 「최치원」은 평화, 애국, 애민에 걸친 최치원의 사상이 작가의 상상력의 도움으로써 생동감 있게 사실화되었다. 복잡한 시대 배경을 거침없이 서술하면서도 작가는 정리된 역사관으로 풀어냄으로써 거대한 최치원 소설이 탄생되었다. 견훤, 왕건, 궁예, 도선국사, 최승우, 최언위 등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등장을 통한 신라 말에서 후삼국, 고려 개국까지의 급변상황을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 풀어냄으로써,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작가의 상상은 진성여왕이 사석에서 최치원을 오라버니라고 부르면서 사랑을 고백하였다거나, 훈장 딸인 첫사랑 보리(菩提)가 역적의 딸로 곤경에 처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당나라에서 도교 수련을 하던 동문들과 구출대를 조직, 신라로 잠입하여 구출한 후 당나라로 탈출시켰으나, 구출된 보리가 종남산 자오곡과 숭산 소림사를 오가며 무술을 연마하다가 복수심을 품고 이후 후백제 견훤의 부인이 되었다는 부분 등 극적 효과를 노린 소설적 요소를 가미시킨다.

소설 「최치원」은 최치원의 풍류도라는 선비정신을 한류 문화의 진정한 시발점으로 그려내었고, 최치원의 애국심 및 개혁 사상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천부경, 계원필경, 시문 등을 통한 최치원의 우주관, 시작과 끝이 하나라는 순환 원리 등 최치원의 사상과 철학 등을 이야기꾼의 능력으로 풀어내었다. 책 곳곳에 최치원의 개혁 정신과 각종 사상의 중요성 등을 형상화한 방랑 식객 임지호 화백의 삽화는 책의 품격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최치원은 유교와 경전, 공맹 사상에 정통했지만, 유교적 틀에 머무르지 않았다. 최치원은 고승들과 끊임없이 교제하며 비문을 써주었고, 사찰에 명문장도 써주었다. 그가 남긴 ‘사산비명’은 천 년을 견뎌 왔지만, 내용이 너무 어려워 많은 학자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최치원은 우주 질서와 하나로 통하는 풍류도를 창안했다. 도(道)와 인(人)을 중시하며 한 가지 도(道)만을 고집하거나 성분이나 국적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경주에서 당나라까지 필명을 드높인 6두품 최치원의 고뇌와 사회 개혁 사상을 담은 소설 「최치원」은 역사를 통한 내적 수양, 숭조사상 함양, 애국정신을 기를 수 있는 소중한 소설이 되었다. 그 당시의 혼탁한 정권 다툼이나 이권 추구를 현재에 대입하면 중첩되는 부분이 부지기 수이다. 구수하면서 영혼을 울리는 소설 「최치원」은 시대가 바뀌어도 존재 가치를 부여받을 것이다. 긴 흐름의 작가가 드문 때에 시대를 간파하는 영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지은이 최진호>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총무처 기획예산담당, 국세청 기획예산담당,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관리과 서기관, 국세청 인사계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탑코리아세무법인 대표이사 회장, 불교아카데미 이사, 한국세무사회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우리말 불교경전』을 펴낸 바 있다. 변화는 많지만 하나로 꿰어 있고 무게가 무겁지만 가라앉지 않은(萬變一貫多重而不沈) 최치원에 대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장석용/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