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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지나온 7년, 부모님의 걱정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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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지나온 7년, 부모님의 걱정이 축복이 되었습니다”

- 낯선 베트남 생활 7년에 깨달은 역설적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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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부총장(전무)
"연주씨! 시간이 많이 지났네. 7년전 처음 봤을 때가 눈에 선하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 지 많이궁금하네. 처음 우리 과정에 입소할 때 누구보다 의지와 확신이 강해 보였고, 연수기간 내내 한 순간도 흐트러진 모습을 못 보았는 데…"라고 첫마디를 떼었다.

"전무님께서 그렇게 기억해 주시니 마음이 짠 합니다. 덕분에 가 족 걱정을 뿌리치고 자신만만하게 도전한 길을 오래간만에 돌이켜 봅니다. 취직 이후 6년의 베트남 생활에서 3년이 지날 때 건강 문제로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도움으로 1년간 휴식하고 재취업해 다시 회복하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의 어려운 경험이 큰 힘이 됐습니다."

배윤주 팀장(가명)은 대우세계경영연구회 글로벌청년사업가(GYBM)양성과정의 베트남 4기로 참가, 2014년 9월부터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2015년 8월부터 의류 제조 회사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 건강에 문제가 생겨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1년을 쉬었다. 그리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 지 3년 지나 자리를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건강이 깨진 3년의 경험이 새로운 도전의 길에 밑천이 됐다고 한다.

전화로 주고받은 대화를 정리해본다.

Q “처음에 취직한 회사는?”

글로벌 유명 브랜드 제품을 주문자제작방식(OEM)방식으로 제조하는 의류 회사에서 샘플과 그래픽을 담당했습니다. 시즌마다 타임라인에 맞춰 수많은 스타일 제품의 출고를 맞춰야 하는 영업관리직업무는 반복되는 야근이 필수였습니다. 피곤함을 참고 이겨내는 것이 경력 완성의 과정이라는 생각한 것이 화근이 됏습니다.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결국 3년 만에 몸의 면역이 무너져 회사 생활을 접었습니다. 그러고 1년을 쉬었습니다.

Q “새로 시작한 회사는? 장애는 없었는지?”

한국 프랜차이즈 키즈 카페를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일종의 서비스업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에 도전했습니다. 호치민(Hochimin)에서 베트남에 맞는 컨텐츠 개발과 입점 공사를 담당했습니다. 31세라는 나이가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 됐고 3년의 경험을 뭉개고 새롭게 도전하니 걱정이 컸습니다. 조리 돌림 같은 경우도 있을 정도였지만 이젠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습니다.

Q “힘들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직원들의 믿음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경험이 없는 매니저이니 '너가 뭘 알겠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특히, 베트남 아이들 성향에 맞는 놀이 컨텐츠를 개발하고 제작하기 위해 놀이문화를 파악하는 것으로 집중하며 극복해 나갔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동종 업계를 탐방하기 위해 전국 17개 매장의 출장을 반복해서 다니며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 나갔습니다. 매장 공사와 보수를 할 때는 입점해 있는 유통회사의 방침에 따라 밤 10시 이후부터 업무가 가능했습니다.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대형 유통 매장에 샵인샵(Shop in Shop)으로 운영됐기 때문입니다. 공사를 관리, 감독하기 위해 앞뒤 안 가리고 새벽 근무를 자처했습니다. 단순히 체력으로만 이겨내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둘째, 현지인들의 직업의식이 문제였습니다. 아마 우리나라도 과거엔 그랬을것 같았습니다. 거래처 작업자들이 약속된 업무나 시간을 지키지 않거나, 요청한 것과 전혀 다른 자재로 아무렇지 않게 작업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거친 공사 현장을 감독하는 외국인 여성에 호기심 많은 눈초리와 농담을 던지거나 나의 지시를 비웃으며 따돌리는 분위기도 있었구요. 유통회사 경비원들은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정에 맞추기 위해 담당자를 만나 설득하고 심지어는 사정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입사 1년이 지나면서 나름의 노하우도 생기고 자신감도 붙었습니다. 베트남 직원들이 고생할 때 함께 고생하며 관리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하나씩 배워나간 것이큰 도움이 됐습니다. 거래처 인부들도 더 이상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요즘은 입접한 유통회사 매장 관계자들과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Q “남편이나 부모님들 걱정이 많으셨겠네”

네, 그래도 남편에 많이 의지했습니다. 그리고, 쉬는 1년 동안 많은 생각이 오갔습니다. 대학 전공도 물리치고 베트남에 올 때는 주위에서 도피로 보는 분도 있었고, 부모님 조차도 '교사가 될 줄 알았는 데 왜 그 어려운 길을 택하며 그것도 베트남이냐'고 하셨습니다. 첫 사회생활이 축복은커녕 걱정만 가득 안겨드린 셈입니다. 해외 경험이라곤 캄보디아 봉사활동이 전부였지만 김우중 회장님과 GYBM이라는 교육 프로그램만 믿고 도전한 것이니까요. 요즘은 많이 응원해 주시는 편입니다. 특히 요즘 한국의 일자리 걱정을 보고 계시니 더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하십니다. 베트남에 한 번 오셔서 살고 있는 삶의 질이나 여유를 보시고 나서는 더 크게 응원해 주십니다.

듣고 있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다. 마지막으로 소감을 물었더니 어김없이 "많은 후배들이 와서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기회의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정신이나 현지어 준비 등만 잘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GYBM과정에 좋은 사람들이오도록 전무님도 애 많이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로 마무리했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