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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2020 윤미라무용단 기획공연…‘젊은 춤 동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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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2020 윤미라무용단 기획공연…‘젊은 춤 동인전’

찬 겨울 뚫고 움터오는 그대/ 노랗게 피어 붉은 열매 매듭지을/ 여명의 몸짓이었다/ 모진 겨울에 꾸는 봄날 화사/ 꾀꼬리 화평을 구가하고/ 생존의 울타리 너머/ 낯설게 다가오는 풍경들/ 삶의 나침반을 두고 나를 찾아간다/ 길게 엮이는 너의 마음/ 내 마음은 낚싯대처럼 떨린다/ 일곱 무사(舞士)의 다부진 출정식/ 능수능란한 디딤과 사위로/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라/ 수계의 엄한 계율이 떨어지는 밤은 길고 길은 멀다/ 떠나는 길에 눈물 보이지 말라

12월 16일(수) 저녁 8시 양재M극장에서 윤미라무용단의 기획공연 ‘젊은 춤 동인전’ 공연이 있었다. 윤미라(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무용단의 신입 단원들이 펼치는 공연은 신선하였다. 윤미라 무용단이 주최·주관한 공연은 이동안진쇠춤보존회, 달구벌입춤보존회, 경희대 무용학부가 후원하고 있었다. 전통무용에서 한국창작무용, 컨템포러리 춤에 이르는 일곱 안무가의 작품은 노련한 대가들의 춤과는 차별화된 저마다의 빛깔로 공연의 한 부분이 되어 있었다.

공연의 일곱 줄기는 이재아 출연의 궁중정재 <춘앵전>, 생존을 위한 삶의 방식을 그린 강수인 안무의 <헌(巘) 터>, 일상의 재발견을 포착한 유다혜 안무의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무속 장단에 맞춘 민속춤인 박세미 출연의 <태평무>,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지민 안무의 <나를 찾아줘>, 마음을 던져 진심을 얻고자 하는 이홍재 안무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행로를 돌아보고 희망찬 미래를 보여준 이화연 안무의 <CAMINAR-W>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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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아 출연의 춘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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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아 출연의 춘앵전

이재아 출연의 <춘앵전>, 옛 춤을 이어간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달리 무척 힘든 일이다. 궁중정재는 층층시하 같이 보는 눈이 많아 조금의 실수도 금방 눈에 띄게 마련이다. 블루와 옐로우로 경계를 친 조명 아래, 빨간 치마에 노란 저고리로 봄 꾀꼬리는 노란 앵삼· 화관· 붉은 띠·오색 한삼의 의상과 상령산·중령산·세령산·자진도드리·타령의 반주에 맞추어 옛 춘앵무의 정신을 이어간다. 우리 전통춤 춘앵무는 개인의 신체조건, 표현 연기력, 무대와 조명에 따른 변화와 역량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재아는 몇 평 남짓한 꽃돗자리 위에서 독무로써 의인화된 춘앵 역을 아름답고 우아하고 격조 있게 훌륭하게 처리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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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 안무의 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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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 안무의 헌 터

강수인 안무의 <헌(巘) 터>, 생존의 터 안에서 ‘헌터’(사냥꾼, hunter)를 표현한다. 차단된 동굴의 소리 같은 갇힌 공간의 물방울 울림을 타고 춤의 진행과 더불어 아쟁·기계음·장단소리로 헌터들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파도 소리는 꿈속으로 들어가는 수면을 표현한다. 도입부에 모자처럼 쓰고 나오는 양파망에는 주제와 관련된 한자가 적혀있다. 망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할 것들, 공간에 갇힌 인간들을 상징한다. 몸에 단 사냥줄은 런 앤 체이스(Run & Chase)의 희열을 상징한다. 의상은 정장 느낌의 검은색의 비단 콘셉트, 옷 안쪽의 다양한 문양은 ‘헌 터’ 각자의 의미를 담는다. 각자의 생존 방식은 다양한 움직임으로 구현된다. 안무가는 그림자와 분위기로 무언의 압박감과 사냥의 긴장감 등을 창출한다. 그림자의 높낮이로 헌터들의 상하관계나 약육강식을 묘사한다. 주황과 노랑 주조의 분위기는 햇빛 사냥의 따스한 열기이다. 마지막 풍선 장면은 안무가의 꿈의 터이자 삶의 방식으로서의 터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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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혜 안무의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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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혜 안무의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유다혜 안무의 <낯익은 것을 낯설게 바라보기>, 칸딘스키 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반복되는 일상을 감싸고 있는 무의식의 흐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은 지속적 삶의 원동력이며 재발견이다. 방역에 나선 모습이거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모습으로 바라본다. 안무가는 접이식 아크릴 거울을 이용하여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고 자기 객관화를 시도한다. 위치와 앵글의 다양한 변화를 표현하는 움직임이 변주된다. ‘낯설다. 낯이 부끄럽다. 더 보니 낯익다. 다시 낯설게 바라본다.’라는 행동과 사고의 접점에서 나오는 서술이다. 주제적 제목은 망각했던 숨 쉬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한 가치를 사유적 명제로 채택한다. 음악은 신비를 끌어내며 피어오르는 새벽 안개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크릴판이 넘어지는 소리로 평정심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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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미 출연의 태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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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미 출연의 태평무

박세미 출연의 <태평무>, 6분 4초에 걸린 박세미의 한영숙류 태평무는 익숙한 리듬으로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대열에 합류한다. 김민주 디자이너의 의상이 빛을 발했고, 조명은 안온한 분위기의 앰버가 강약을 조율했다. 한성준-한영숙-박재희로 이어지며 다듬어진 춤은 전통성을 유지하며 백여 년의 무사(舞史)를 기록한다. 박세미는 익숙한 미소로 다양한 장단에 맞추어 미세한 디딤과 사위, 약속된 호흡으로 전통 움직임의 고귀한 품격을 보여주었다. 민속춤이면서도 왕후 적 품격을 견지한 박세미의 독무는 군무나 나이 지긋한 수련자의 춤과 차별화된 가능성의 춤을 춤으로써 젊은 춤꾼의 싱그런 조춘(早春)의 분위기를 선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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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안무의 나를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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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민 안무의 나를 찾아줘

이지민 안무의 <나를 찾아줘>, 삼십대 중반의 소시민인 현재의 나의 의미를 모색한다. 청춘의 꿈은 증발하였고, 반복되는 일상은 사유의 공간으로 나를 초대한다. 안무가는 초등학교 시절인 90년대를 회상하며 춤을 진행한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시골 소년 소녀의 고전적 모습이 재현된다. 행복한 일상이 담겨있는 일기장을 읽는 소녀가 핀 조명으로 잡히면서 시작된 춤은 희망의 무지갯빛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요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가 흐르면서 답답한 분주한 일상과 대비된다. 미디템포의 음악 ‘We are all astronauts’가 흐르면서 무겁고 좇기고 힘든 상황이 표현된다. 듀엣은 분주한 일상을 다양한 현대적 몸짓으로 연기해내며, 컨템포러리 춤의 한 모습을 보인다. 업 스테이지의 핀 조명이 페이드아웃 되며 춤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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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희 안무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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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희 안무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홍재 안무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긴 낚싯대를 거대한 상상의 도구로 차용한 창의적 작품은 촌철살인의 필살기를 보여주겠다는 심산으로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수상작에 빛나는 최병희의 독무를 보여준다. 낚싯대를 들고 등장한 노신사는 허송세월한 과거를 두고 사색에 잠긴다. 작품은 ‘마음을 던져 진심을 얻고자 함’을 표현해내며, 희망을 포기하고, 되는대로 살아가는 다수의 현대인에게 ‘마음 다집기’를 권유한다. 김재윤의 음악이 관조적 해학을 연출하면 조명은 블루를 주조로 안개 자욱한 가운데 낚싯대를 두고 춤추는 노신사를 영접한다. 동화 같은 조명 아래 꿈은 형상화되고, 노신사는 지난날을 두고 후회와 슬픔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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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연 안무의 CARMI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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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연 안무의 CARMIN-W

이화연 안무의 <CAMINAR-W>, 이현주의 ‘길’을 동인(動因)으로 한 내가 가야 할 ‘길에 관한 한 연구’이다. 한국무용과 탱고 음악이 만난다. 안무가는 소중한 경험이 된 작품을 통해 자신의 과거, 현재적 삶,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풀어낸다. 데뷔작을 대하는 열정은 탱고 느낌의 음악으로 표현되고, 의상으로 탱고의 느낌을 더한다. 푸른색 가슴 천은 신비를 연출한다. 단순한 조명과 풋 조명의 그림자는 자신의 내면을 투시해낸다. 의자는 안무가의 행로를 보여주는 공간의 상징이며 의자에 묶인 노끈은 선물 포장을 연출한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4장의 춤의 결론은 조명알이 박힌 구두의 등장으로 진전, 희망의 의지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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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 및 출연자들

엄동설한의 일곱 동맹 결의는 윤미라무용단의 빛나는 단(壇) 위에 바쳐졌다. 윤미라 춤을 바탕으로 하여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발아, 성장, 숙성의 단계를 거칠 춤의 모내기 의식은 필수 인원만 참가한 가운데 엄숙히 진행되었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들의 미래는 창대할 것이다. 운명이 점지한 춤 길은 외롭고, 정상인과는 괘도를 달리하는 외계인 같은 존재이다. 험난한 세상을 이겨나가기 위해서는 춤 재능과 아울러 예절을 익혀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새로운 길을 떠나는 춤꾼들의 대장정에 햇살이 가득 비치기를 희구하며 나름대로 분주한 수련과 내공의 계절을 거쳐, 윤미라 춤 도량의 인재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젊은 춤 동인전’은 의미 있는 춤 작업의 본보기였다.


장석용/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