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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포기의 유혹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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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이 전하는 글로벌 성장통]포기의 유혹이 제일 무서웠습니다

3번의 이직과 4번째 취업, 두려움에서 자란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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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욱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사부총장(전무)
"전무님! 죄송합니다"는 말이 전화로 흘러나왔다. 그래서 "뭐가?"라고 되물었더니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 잘 적응했어야 하는 데 세 번이나 옮겨 다녔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현수(가명)대리가 늘어놓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 이 사례는 성공담일까? 실패담일까?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따라 다를 것이다. 다르게 보면 신 대리의 미래 행보가 결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글을 받고 보니 답답함이 먼저였지만 깊은 곳에서는 짠한 안타까움이 몰려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하고 대화할 상대라도 있었을까? 그래도 극복해서 고맙구나'라는 독백 같은 말이 입에서 맴돌았다.

■지나 온 시간들

신 대리가 2년 반 동안 세 번을이직하고 네 번째 직장에서 자리잡은 일을 정리해 본다.

그는 2017년 8월에 대우세계경연구회 글로벌청년사업가(GYBM) 양성과정 인도네시아 과정 3기에 참가해 반둥(Bandung)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1년간 연수를 마치고 이듬해 5월 첫 직장생활을 자카르타에서 시작했다.

첫 번째 직장은 GYBM 연수를 마치면서 공식 추천으로 취업한 회사였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물류∙운송회사였다. 처음 연수과정에 지원할 떄 생각한 분야와 너무나 달라 그랬는지 뭔가 답답함만이 이어졌다. 입사 동기들과 어울리는 정도로 시간이 지나갔다. 6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인도네시아 현지의 물류 운송업체였다. 첫 직장 취업 6개월 만에 자리를 옮겼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영업업무를 맡았다. 뭔가 잘못 판단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현지어 실력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인도네시아 기업에 들어간 것이다. 더구나 외부업무를 하다보니 더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 제대로 인정을 받을 기회도 없었다. 결과는 6개월 만에 계약해지. 실제적인 해고가 된 셈이다. 더 없는 패배감과 무력감으로 당장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누구와 의논할 수도 없으니 외로움까지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연수기간을 포함한 2년여 고생한 세월이 아까웠다. 이력서를 쓰고 일자리를 알아보니 그래도 아직은 불러주는 곳이 제법 있었다. 다행이었다.

세 번째 직장에 자리를 잡았다. 한국의 생활용품을 인도네시아로 수입해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을 추진하는 회사였다. 관공서 승인 업무와 통관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영업전략이 바뀌었다며 매장의 직접 진출은 포기하고 온라인으로 집중하겠다는 것이었다. 4개월의 수습기간만 채우고 계약이 해지됐다. '이런 일도 있을수가 있구나'는 마음에 이젠 오기가 붙었다. 이직과 구직도 몇 번 하다 보니 요령도 생겼다. 씁쓸했지만 빨리 다음 직장을 잡는 지혜도 생겼다.

네 번째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로 현지에 진출헤 글로벌 시장에서 생필품을 수입해 사업하는 한국 기업이다. 전체 150여 명의 직원에 한국 직원은 10명선이다. 수입한 상품의 관공서 승인과 수입 통관업무를 담당했다. 앞선 직장에서 조금 경험한 게 힘이 됐다. 공식으로는 정해진 업무를 맡지만 회사의 전체 업무에 관여하면서 폭넓게 경험하는 행운도 따랐다. 신 대리만이 인도네시아 현지어를 제대로 구사하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으로 '1년 어학연수에2년간의 실습이라고 치자'며 스스로를 달랬다. 막 10개월이 지나가니 안착되고 자신감이 붙었다. 작은 성공이자 성취였다.

뒤늦게 알았지만 GYBM과정에서 배운 현지어 수준이 특별한 효과가 있었다. 관공서 등 공식 문서나 대화에 사용되는 격(格)이 다른 언어를 우리가 쓰고 있었는 데 모르고 있었다. 관공서 들어가면 남다르게 대해주는 것으로 뒤늦게 알았다. 현지의 많은 한국인들은 '생존형 현지어'를 구사하는 수준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다.

성장통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이지만 엄밀하게는 성공이야기다. 신대리 사례는 뭐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많은 청년들이 겪는 고통과 비슷했다. 꿈을 가지고 들어간 회사에서 1년이면 30%, 3년이면 절반이 뛰쳐 나오는 현실이 그것이다.

■포기의 유혹, 희망의 디딤돌이 됐다.

덤덤하게 통화는 하지만 만감이 교차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힘든 것을 물어보니 서슴지 않고 "포기의 유혹과 외로움이었다"고 말했다. 3년 전 연수기간 내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들은 '최소 2년은 버텨라'는 말이 먼저 기억이 나니 반가운 통화임에도 먼저 나온말이 '전무님! 죄송합니다'였다.

지금 교육과정에 참가한 20여 명의 후배 연수생들에게 남기고 싶고 들려주고싶은 말을 물었더니 그는 "끈기와 전문성 그리고 현지어 실력에 집중하라"고 권했다. 그 당연한 말을 제대로 실감한 게 지난 2년6개월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한 마디를 더했다. "연수받은 동기들끼리 누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지 내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만큼 걱정도 되고 두려움이 컸습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며 전화통화를 마쳤다.

통화를 마치고 퇴근길에 눈에 들어오는 둥근 보름달이 차가운 날씨와 대조를 이뤘다. 신 대리의 두려움과 희망의 두 얼굴이 겹치며 대조를 이뤘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문 입구에 쓰였다는 글귀가 생각이 났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희망을 버릴지어다"

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어른들의 역할일 것이다는 다짐을 다시 새겼다.


박희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acklond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