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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비움을 위한 철학적 상상…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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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비움을 위한 철학적 상상…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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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동(東)으로만 나돌았다/ 햇살이 눈 부셔 울어도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햇살에 나를 맡겨 성숙을 택했다/ 가을 중턱에 앉자 단풍은 평정을 가져왔다/ 비워 갈수록 또렷해지는 나의 몸체/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나 몇 점 두르고/ 무(無)로 가는 행장이나 차려 불까나/ 허식의 숲에서 빈 웃음을 던지며/ 산속 어부가 되었던가/ 비움은 채움을 위한 것/ 정진은 강요가 없다/ 허공의 땅에 홀로 서서 소금기를 빼고/ 피뢰침 서 있는 나의 의지

2020 신진국악실험무대 제5회 ‘청춘대로 덩더쿵!’에 초대된 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 공연이 10월 15일(목), 16일(금) 저녁 7시 30분, 이틀간 두 차례 방배동 두리춤터 포이어 극장에서 있었다. 그동안 배출된 신진예술가들은 전통에 기반한 새로운 시각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춤 창작 자세를 보이며, 한국 창작춤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왔다. 유효정-박한결의 안무가-음악가 조합은 춤 속에 음악이 용해되는 조화로써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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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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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안무가 유효정은 <공허지지>를 채워짐의 땅으로 달리 해석하고 빈 땅에서 생명체가 태어나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채워짐의 땅으로 일구어가는 모습을 작품에 담는다. 유효정은 심상(心像)의 <공허지지>에 박한결(타악), 이근재(피리), 김수진(아쟁)의 소리를 불러 춤을 춘다. 도반은 선미경, 심재훈, 김상현, 손무경, 정단비이다. <공허지지>는 3장으로 구성된다. 1.공(空)-무(無):아무것도 없고 보이지 않는 무의 상태. 2.허(虛)-무(舞):비어있는, 텅 빈 공간을 하나씩 채우는 춤(최초 인간의 춤, 각각의 인간들이 채워나가는 춤, 하나에서 모두로 이루어진 춤) 3.지지(之地):같은 땅에 존재하며 연결된 자들의 채움의 삶과 땅의 세 가지 개념을 내세운다.

1장; 고르지 않은, 흙이 있는 태초의 땅의 이미지, 무대 바닥에 울퉁불퉁하게 깐 한지를 구겨져 깔려 있다. 한지(땅) 속에는 땅에서 생명체가 태어나듯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높낮이를 한다. 무의 상태는 정적이고, 움직임은 미세하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미완성처럼 보이는 느린 움직임은 아지랑이가 땅을 뚫고 올라오는 분위기이다. 한지(땅)에서 태어나는 생명체의 신비롭고 몽롱한 느낌을 표현하는 파랑, 땅이 올라간 뒤에는 고보를 사용하여 고르지 않은 미개척지의 느낌이 표현된다. 빈 땅에서의 생명체 탄생의 신비, 몽환적 분위기, 땅의 묵직한 느낌을 핸디 팬과 아쟁이 꿈틀대며 꽃을 피워올린다. 고요한 정적 상태와 움직임과 사우드가 조화를 이룬다. 춤이 진공 상태와 같은 느낌을 줄 때 미니 편종과 아쟁, 피리가 분주해진다. 춤이 진행되다가 인간이 땅에 정착하는 중간에 거대한 백색 종이 배경 막이 되어 벽에 달라붙는다. 일어섰다, 오므라졌다 하며 시간이 경과 한다. 순수를 표하는 상징이 백색으로 집중되고, 장(場)의 마지막에 제(祭)를 지내는 느낌의 복선은 종묘제례악 모티브로 재편곡된다. 녹음음악이 가세하면 <공허지지>는 동화 같은 분위기와 서정적 판타지의 이인무로 진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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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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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2장; 진화된 생명체들은 개성 있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전반부는 사랑의 느낌을 생황이 담당하고 아담과 이브의 상상인 이성이 처음 만나 느끼는 감정을 움직임화 한다. 중반부는 인간들이 하나에서 무리로 변하고 서로의 빈 곳과 빈 땅을 채우며 살아가는 모습과 그 감정들이 피리, 타악 등의 악기를 사용하여 연출된다. 후반부는 각자에서 모두가 되어 살아가며 다 같이 축제를 여는 모습이다. 인물 중심의 조명은 풋·탑 조명으로써 최초 인간의 모습을 그림자로 겹쳐 보이게 한다. 조명이 달라지면 인간들의 모습과 감정도 달라진다. 마지막은 엠버톤으로 따뜻하고 밝은 느낌을 받아 모두 함께 축제의 분위기를 즐기는 타악이 흥신을 돋군다. 고요한 정적은 부드러운 미소의 평정 상태를 이어가고, 춤은 남녀 이인무, 남성 독무, 남성 이인무, 남녀 4인무 등의 조합을 만들어 낸다. 심지어 타인의 춤을 관망하다가 춤에 합세하는 모양도 연출한다. 부질없음을 보여주는 경쟁은 남성 이인무나 커플의 에로틱 춤을 통해 나타난다. 출연진 모두가 앉거나 서서 눈 감고 하늘 향한 손으로 기도하는 장면은 거룩한 일면이다. 각자의 개성으로 시적 리듬을 장착한 채 아이 같은 천진함을 보여준 춤은 신비롭다.

3장;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면서 땅에서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이 펼쳐진다. 빈 땅은 채워짐의 땅이며 하나의 인간은 모두로 연결되어 채워짐의 삶을 살아간다. 조명을 최소화하여 군무와 독무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풋 조명을 사용하여 무용수들과 그림자가 겹치는 모습을 통해 인간과 땅이 채워짐을 암시한다. 사람들이 모여 땅에 기원하는 제의 모습은 타악, 아쟁, 피리, 태평소 등의 악기가 동원되고 따뜻하고 채움의 묵직한 땅의 느낌이 전해진다. 의상은 땅, 생명체, 인간의 모든 의미를 부여한다. 아이보리 주조의 상의는 살짝 비치고 바지는 한복 바지의 곡선을 살린 랩스커트 형식으로 덧대어 한국적이면서도 단순한 느낌을 준다. 무늬는 땅의 느낌을 살려 마치 흙이 튀어서 묻은 듯한 느낌이다. 각자의 기도로 내공의 힘을 비축한 사람들이 좌정한 가운데 한 여인이 서 있다. 여인이 넘어질 듯하지만,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는다. 기억 속의 사람들이다. 배경 막을 향해 서는 사람들은 기도의 벽을 연상시킨다. 조명은 극대화되고, 태평소가 피날레를 알린다. 약식 고깔에 대북을 메고 승무의 개념으로 타고(打鼓) 하면 춤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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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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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

의기투합의 주역인 유효정은 국립국악중고교를 거쳐 세종대 무용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제36회 동아무용콩쿠르 동상 수상 경력으로 남성 무용수 셋, 여성 무용수 셋으로 마음 수양의 묘를 보여주며, 교요 속에 이는 환희를 연출했다. 음악감독 박한결은 서울대 국악과 출신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전수자이며 제12회 21C한국음악프로젝트 은상 수상자이다. 마음속에 이는 잔잔한 물결을 미세하게 조율, 배합해 나가는 솜씨가 빼어나다.

유효정 안무의 <공허지지>(空虛之地)는 제목의 묵직함을 담보하는 철학적 명제를 춤과 음악으로 해결한 한국창작 무용이다. 춤은 <공>(空), <허>(虛), <지지>(之地)에 대한 움직임을 리듬에 실어 진지하게 연기해내었다. 상상의 발랄함과 연기적 실현으로 디지털 시대에 부합되는 현대적 감각의 깜찍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자기주장과 태도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사교적 유연성은 늘 필요한 사항임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효정의 춤, 인상 깊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