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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노블리스 오블리주, 세계 명문가의 군 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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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노블리스 오블리주, 세계 명문가의 군 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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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의 왕위 계승 서열 5위인 해리 왕자는 10여 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5년 전역했다.
최근 벨기에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왕립육군사관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는 모습의 사진이 공개됐다.

올해 18세인 엘리자베스 공주는 영국 웨일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브뤼셀에 있는 왕립육군사관학교에서 1년간 교육을 받는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벨기에 왕실의 전통을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이다. 공주의 아버지인 필리프 국왕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바 있다. 다만 공주로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엘리자베스 공주가 처음이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여왕이 되면 벨기에 군 최고사령관 직위도 부여받게 된다.

지난 2014년 즉위한 스페인 펠리페 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카를로스 전 국왕의 유일한 계승자였기 때문에 혹독하게 군복무를 했다. 성인이 되자 스페인 사라고사에 있는 군사종합학교에 입학했고, 육ㆍ해ㆍ공군 교육을 거치며 3군에서 힘들기로 유명한 장교과정을 모두 밟았다. 힘든 군 생활에 따른 늦잠을 피하기 위해 침대에 4, 5개의 알람시계를 켜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네덜란드 국왕 빌럼-알렉산더르는 18살에 해군에 입대했다. 그 후 해양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받고 구축함에도 승선했다. 빌럼-알렌산더르가 속했던 부대는 목숨을 걸고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해적 소탕에도 참여했다. 2005년에는 계급이 준장까지 올라갔다. 국왕 즉위 후, 준장 계급은 내려놨지만 그는 자신이 복무한 해군부대를 자주 찾는다는 전언이다. 이외에도 노르웨이, 덴마크, 리히텐슈타인, 스웨덴 등 유럽 왕실 사람들은 대부분 혹독하게 군복무를 하며 군수통수권자로서 자국민을 지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 왕실이다. 영국 왕실의 왕위 계승 서열 5위인 해리 왕자(Henry Charles Albert David Windsor)가 2015년 10여 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해리 왕자가 군 복무를 마치면서 영국 왕실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가문이라는 칭송이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여왕은 물론 왕실 남성 모두가 군 복무를 했으며, 대부분 최전선에 자원해 전투에 참가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여왕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송보급장교로 근무하며 직접 군용트럭을 운전했고, 아들인 찰스 왕세자(Prince of Wales) 역시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해 6년간 해군장교로 복무했다. 찰스 왕세자의 동생인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Andrew Albert Christian Edward) 역시 1979년 소위로 임관해 2001년 해군중령으로 전역했고, 복무기간 중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해 최전선에서 헬기 조종사로 활약했으며, 해리 왕자의 형인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William Windsor) 역시 영국 공군에서 근무하고 전역했다.

왕실 인사 대부분이 국민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군 복무를 했다면, 해리 왕자는 진심으로 군대가 좋아서 군복을 입었던 특이한 경우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군복을 입고 장난감 총을 들고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으며, 유난히 군대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최고의 사립 명문 이튼 칼리지(Eton College)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Royal Military College, Sandhurst)에 입학했다. 그는 사관학교 입학 전에는 누드파티 파문과 대마초 흡연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샌드허스트 입학 이후에도 파키스탄에서 유학 온 교환생도에게 ‘파키'(Paki)라는 비하 표현을 사용해 징계를 받기도 하는 등 잦은 구설에 시달렸다.

그러나 사관학교 졸업 후 육군소위로 임관하면서부터는 철이 든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는 자대 배치를 영국 육군 내에서도 최정예 부대로 손꼽히는 근위대, 그 중에서도 400년 전통의 블루스 앤 로열스(Blues and Royals) 근위기병연대에 배치받았다. 그는 부대에 짐을 풀자마자 지휘관을 찾아가 이라크 파병 부대에 차출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왕실이 극구 반대하면서 해리 왕자의 이라크 파병은 좌절되었지만, 그는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자원했고 할머니와 아버지를 설득해 아프가니스탄 남부 헬만드(Helmand) 지역으로 파병됐다. 탈레반 거점이었던 이 지역에서 해리 왕자는 적진 한복판에 침투해 전투기나 공격헬기의 공중 공격을 유도하는 합동최종공격통제관(JTAC : Joint Terminal Attack Controller)으로 활약하며 실전을 경험했다.

해리 왕자가 이 부대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비밀이었으나, 미국의 한 폭로 전문지가 해리 왕자의 임무수행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하면서 탈레반은 눈에 불을 켜고 해리 왕자를 찾아 나섰고, 결국 당시 왕위계승 서열 3위의 왕세손의 안전을 우려한 국방부는 해리 왕자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본토에 있는 부대로 전출 명령을 내렸다.

그는 본토 복귀 이후 지휘관과 국방부에 “전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끈질기게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전장에 파병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와중에 헬기 조종사가 되면 파병이 가능할 것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항공장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대위로 진급한 그는 2011년 공격용 헬기인 아파치 AH Mk.I(AH-64D)의 조종사(Pilot) 및 사수(Co-pilot gunner) 자격을 취득했는데, 그는 교육 수료식에서 최우수 특등 사수(Best co-pilot gunner) 상을 수상하고 곧바로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지원했다.

그는 2012년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되어 실전에 투입됐는데, 실제 전투에 나가 적지 않은 탈레반 병사들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에 아프가니스탄 파병 임무를 마치고 영국에 복귀했을 때 “사람을 사살한 일이 있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빼앗았다”면서 아프가니스탄군과 NATO 치안유지군 부상자 구출 작전에 투입되어 상당한 수의 탈레반을 사살한 사실을 시인했다.

해리 왕자는 2013년 영국 본토로 돌아온 뒤 제3항공연대에서 지휘관 및 참모로 근무했으며, 2015년 1월 영관장교 자격시험에 통과, 소령 진급 대상자가 되었다. 그는 자격시험 통과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징적인 계급이 아닌, 진짜 군 복무를 통해 장군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나, 결국 5개월 만에 군복을 벗었다.

그가 전역을 결심한 배경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생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와 더불어 위험한 전장을 선호하는 해리 왕자를 걱정한 찰스 왕세자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리 왕자는 전역 후 3개월 일정으로 아프리카를 찾아 환경보전 활동에 나섰으며, 추후 상이군경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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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송보급장교로 근무하며 직접 군용트럭을 운전했다.

영국 왕실 인사들은 모두 명예계급을 가지고 있다. 여왕의 남편이자 윌리엄·해리 왕자의 할아버지인 에든버러 공작 필립(The Duke of Edinburgh, Philip Mountbatten)은 영국 육·해·공군 명예원수 계급을, 대위로 전역한 윌리엄 왕세자 역시 육·해·공군 명예원수 계급을 가지고 있으며, 중령으로 전역한 앤드루 왕자 역시 명예 해군소장 계급을 가지고 있다. 비록 의전을 위한 상징적인 명예계급이지만, 이들은 모두 실제 군에서 복무했고, 실전에 참가하기도 한 경험이 있다.

영국 왕실이 병역에 엄격한 것은 지도층으로서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다. 해리 왕자의 가문인 윈저(Windsor) 왕가는 해리 왕자의 고조할아버지인 조지 5세(George V)부터 병역 명문가였다. 조지 5세는 12세라는 어린 나이에 당시 영국 해군 최강의 전함이었던 1급 전열함(1st rate ship of the line) HMS 브리타니아(Britannia)에서 견습 생도로 해군 생활을 했으며, 그의 아들인 조지 6세(George VI) 역시 해군장교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포술장교로 활약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런던 대공습 작전을 벌여 런던 곳곳이 초토화 되었을 때 조지 6세는 아내인 메리 왕비와 함께 폐허가 된 런던 시내를 누비며 장병과 시민들을 격려하고 구조 및 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했으며, 딸인 엘리자베스 2세를 군에 입대시키며 솔선수범을 마다하지 않았다.

입헌군주제인 영국에서 영국인들이 적지 않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60~70% 이상의 지지율로 군주제 유지를 지지하는 것은 그동안 영국 왕실이 보여준 노블리스 오블리주 덕분이다. 다이애나비 사건부터 앤드루 왕자 불륜 사건,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의 마약 및 퇴폐 파티 사건 등 온갖 추문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던 왕실이지만, 왕실 구성원들은 스스로 군복을 입고 자청해서 전장에 나가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전장을 누볐고, 이러한 모습 때문에 영국 국민들은 왕실 인사들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부와 권력, 명예를 가진 자에게는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공동체 구성원들의 화합과 단결, 이를 통한 공동체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군복을 입고 전장에 나가는 자에게만 시민의 자격을 부여했고, 공화정 당시 로마에서는 의회를 구성하는 귀족들은 물론 귀족들 가운데 선거를 통해 선출된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Consul)들 사이에서 자신의 재산을 털어 공공시설이나 도로를 신축하거나 보수하는 일은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일로 여겼으며, 전쟁이 벌어지면 이들은 앞다투어 로마군의 선봉에 서서 싸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당시 16년간의 전쟁에서 사망한 집정관의 수는 무려 13명에 달했다.

사회 지도층이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목숨과 재산, 명예를 기꺼이 내놓는 전통이 있는 나라는 혼란이 있더라도 빠르게 사회통합을 이루어 위기를 극복했고, 대개의 경우 강대국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부정부패와 사회분열을 거듭하다가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망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불문율이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