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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우리춤의 정수를 보여준 고품격 공연…임수정의 열아홉 번째 전통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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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우리춤의 정수를 보여준 고품격 공연…임수정의 열아홉 번째 전통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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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방류 승무(임수정)
연분홍 저고리 쪽빛 치마 봄길 나서면/ 모퉁이 돌아 한참 더 가도 아득한/ 수양버들로 늘어져 벗하던 왕벚꽃/ 가쁜 걸음으로 따라온 세월이 춤길 앞에 서 있다/ 청노루보다 맑은 아이의 눈망울에 눈물이 고인다/ 자작나무 위로 붉은 달이 떠오를 때마다/ 고로쇠는 안으로 튼실해져 가고/ 야윈 춤이 꺾이고 펴지고 뿌려지며 대지를 장악한다/ 아, 아득한 꽃등불이 청사초롱을 대신한 나날들/ 장단과 소리에 익어가는 밤이여/ 미풍에 간지럼 타는 춤이여

2020년 8월 13일(목) 오후 7시 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한국전통춤예술원 주최·주관,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재단, 한국전통춤협회, 박병천류 전통춤보존회, 우봉이매방춤 보존회,진주검무보존회, Arts Korea TV 후원의 2020년 ‘이수자 지원사업(공연부문)’ 공모 선정작인 임수정(국립경상대학교 민속무용학과 교수, 무용학 박사)의 열아홉 번째 전통춤판 <춤길>이 공연되었다. 춤꾼이 되어가는 과정은 고행이고, 즐기지 않으면 예술가가 될 수 없다.

우리 춤의 핵심 레퍼토리를 주조로 한 임수정의 공연은 품격이었고, 공연이 끝나고도 에너지가 남아돌았다. 이번 <춤길>에서 임수정은 <승무>, <교방굿거리춤>, <살풀이춤>을 독무로 선보였고, 한국전통춤예술원 회원들과 <진도북춤> 군무를 마무리 춤으로 선정했다. <춤길>은 사계를 춤의 축으로 삼아 겨울-구도자의 길(도입 영상, 승무), 봄-풍류의 길(진주검무, 교방굿거리춤), 여름-해원의 길(판소리, 살풀이춤), 가을-신명의 길(한량무, 진도북춤)로 틀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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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정의 <춤길>은 박정경(국립남도국악원 장악과장)의 해설로 <승무>에서 출발하여<진주검무>(진주검무보존회), <교방굿거리춤>, <선비학춤>(이종호), <판소리>(최진숙), <살풀이춤>, <한량무>(김호동), <진도북춤>(임수정, 한국전통춤예술원)에 이르는 8개의 무장(舞場)으로 구성되었다. 전통음악그릅 ‘판’(음악감독 장구 유인상, 타악 김연수, 구음 박종훈, 아쟁 이관웅, 대금 이성준, 피리 이정훈, 피리와 타악 고령우)이 라이브 연주를 담당했고, 구음과 판소리가 <춤길>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는데 한 축을 담당했다.

을해년(1995년) 첫 공연부터 역동적 몸짓과 거침없는 행보로 무애(無碍)의 춤 세계 지향해온 임수정의 개인 공연은 19회를 기록한다. 그녀의 춤은 현대인들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으며 치유의 기능을 해왔다. 임수정은 전통춤의 본질을 꿰뚫고 개성과 정체성을 부각한다. 그녀는 스승들의 춤을 숭상하고 존중하며 원형 보존에 힘써온 춤꾼이다. 그녀는 민속과 무속, 교방의 예술가들이 보여주셨던 악가무의 통달의 다양한 영역의 춤을 연구하고 소화해낸 무용가이다.

춤은 겨울 이미지를 깔고 시작된다. 그 무슨 화사가 비단처럼 깔린 것도 아닌데 구도의 길에 나선 여인은 눈 덮인 산사를 찾아 나선다. 아리지만 아름답다. 추운 겨울이 있어야만 동백과 매화가 피어난다는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낙관적 소제(小題)로 단 출발의 장(場)은 「동(冬)-구도」이다. 도입부는 <Intro, 춤길> 영상으로 1995년 제1회 개인공연~2020년까지 임수정이 걸어온 춤길을 보여준다. 에피소드로 짜인 포맷이지만 이미지 영상은 차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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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방류 승무(임수정)

<승무>; 이매방류 승무는 조형적 춤선, 고고하고 단아한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의 세계를 다채롭게 보여준다. 임수정의 <승무>는 선이 굵지만 섬세하고, 명쾌하게 고민을 풀어내며 시원하다. 굽히고 돌리는 연풍대와 장삼놀음, 경건함을 보여주는 발디딤, 속세와의 연을 끊겠다는 자세로 가슴을 울리고 영혼마저 뒤엎어버릴 듯 세찬 북가락은 관객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신명과 격조의 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상징이 된 단자(單子)를 찾는 기쁨을 선사한다.

「춘(春)-풍류」로 넘어오면 겨울을 털어내는 의식으로 바쁘다. 봄의 미토스는 희극이다. 감흥과 신명에 이를 수 있는 계절을 만드는 한 축은 예인들의 움직임이다. 예인들은 스승을 찾아다니며 철학과 예절, 예술의 기교를 배웠다. 생동감 있는 춤을 위해 악가무의 기본인 장단과 음악을 알아야 했다. 임수정은 전국 각지를 돌며 궁금증을 해소하고, 유파(流派)를 가리지 않고 가르침을 겸허히 수용했다. 이제 그녀는 대접받아 마땅한 전통춤의 훌륭한 후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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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검무(진주검무보존회)

<숭무>의 집중을 넘어가면 군무 <진주검무>가 임수정의 전통춤 공연을 축하한다. <진주검무>;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는 교방의 예기들이 널리 추던 교방청 계열의 춤이다. <진주검무>는 <밀양검무>, <경기검무>, <평양검무>, <해주검무>와는 다른 독특한 춤사위가 존재하며 독창적 전통성을 지니며 보존되고 있다. 진주검무는 정재와 민속이 합친 것으로 격조가 있으며, 칼 모양이 비교적 크며, 춤사위는 ‘한삼평사위’에서 ‘대열풀기’까지로 이어진다. (출연: 정명숙, 임미향, 강연아, 김경임, 백봉선, 송선숙, 송임숙, 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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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악류 교방굿거리춤(임수정 재구성)

<교방굿거리춤>; 애교 섞인 인화(人花)의 절정, 진주교방 계열의 김수악류 교방굿거리춤을 재구성하여 풍류의 심성과 정재적 몸 자세, 발디딤 등 모든 춤의 기본이자 마지막 정점의 즉흥춤이다. 이 춤의 백미는 자유로운 손목사위이며 덧붙여지는 소고춤은 자유분방한 흥의 세계를 표현한다. 임수정의 <교방굿거리춤>은 시각적 화려함 못지않게 우아한 기품의 춤 자세 견지와 내면적 심상의 표현연기가 조화와 절도를 이루고 있어 전통춤의 연희성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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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학춤(이종호)

<선비학춤>; 도도한 선비의 곧은 절개와 선조의 정신문화유산을 이해해야 하는 춤이다. 학이 날고 선비가 춤추는 것은 동일시되며 증첩적 의미를 지닌다. 학의 맑고 깨끗한 느낌과 선비 정신이 동시에 몸짓으로 표현된다. 학은 고귀한 것을 상징하며 선비가 평상시에 입던 학창의는 학의 흰 몸통과 검정 머리 모양을 본 떠 만든 옷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고고하고 호방한 선비의 격조를 보여준다. <선비학춤>은 자유인의 여유와 지성인의 신비감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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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춘향가 증 이별가(최진숙)

서양에서 여름의 미토스는 로망스이다. 임수정은 우리네의 여름을 원을 푸는 계절, 「하(夏)-해원」으로 잡는다. 세계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중 ‘이별가’가 애절한 슬픔을 노래한다. 이별 후, 춘향이가 이 도령을 절절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장면이 계면조로 표현된다. 당의 '백거이'의 시 ‘장한가’의 한 구절이기도 한데 운율적 표현이 소리적 어법이나 감정 등을 잘 살리며 여름 장(場)을 연다. 전통의 전승, 보존을 같이해야 하는 연대적 유대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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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풀이춤

<살풀이춤>; 임수정 춤의 핵심은 <승무>, <살풀이춤>, <교방굿거리춤>, <진도북춤>이다. 임수정의 개인기를 살필 수 있는 <살풀이춤>, 그녀는 심오한 철학적 경지를 오가며 춤을 미학적으로 승화시킨다. 임수정은 애절한 구음에 맞추어 해원(解寃)의 이매방류 살풀이춤(이매방류)을 춘다. 한과 신명의 신비 춤, 임수정 <살풀이춤>은 맺고 풀어냄을 기본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대삼소삼(大杉小杉)의 뚜렷한 구분, 그 강약의 흐름 속에서 맺고 푸는 품격을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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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무(김호동)

임수정은 우리네의 정서대로 가을을 신명으로 읽는다. 가을은 애절함을 낳는 비극적 산물은 아니다. 「추(秋)-신명」의 마지막 장(場)에 이르면 한량이 풍류를 앞장선다. <한량무>; 선비춤(허튼춤, 흥춤, 즉흥무) 계열의 춤으로서 선비의 의연한 기품과 내적 자유로움을 암시하는 절제된 춤사위를 바탕으로 멋과 흥이 잘 표현되어 춤의 품격과 정신을 보여주는 남성춤의 걸작이다. 김호동류 한량무는 경상도 덧뵈기춤, 최 현의 춤, 이매방의 춤인 ‘사풍정감’을 규범으로 삼아 잡고, 풀고, 맺고, 어르는 특유의 호흡과 춤사위로 관객을 흡인하며 재구성된 작품이다.

임수정은 자신의 춤 공연에서 그림의 낙관처럼 <진도북춤>을 마지막 장(場)에 포진시키기를 좋아한다. <진도북춤>; 박병천류 진도북춤은 화려한 북장단과 춤사위에 양손에 북채를 들고 자유로이 장단을 구사하며 현란한 춤사위와 신명으로 춤을 이끈다. 독수리와 물줄기의 기세 같은 웅장함과 공감과 흥을 부르는 춤사위는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강렬한 북가락과 유연한 장구가락은 남성적 역동성과 여성적 섬세함이 어우러져 임수정 특유의 흥과 멋을 보여준다. (출연: 임수정, 김선미, 고유미, 최고은, 박수은, 김지현)

국립무형유산원과 한국문화재재단에서 공모한 ‘2020년 이수자 지원사업(공연부문)’에 선정된 작품 2020 임수정의 전통 춤판 <춤길>은 ‘디딤에 고인 시간의 무게, 그 오묘한 춤세계’란 부제의 과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임수정, 악가무의 이론과 실제적 공연에 정통한 전통춤꾼이다. 장단의 자유로움과 춤이 조화를 이룬 이번 공연은 코로나로 위축된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전통춤의 개성과 정체성을 아름답게 보여주면서 본질적 의미에 접근한 매력적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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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천류 진도북춤(임수정외 한국전통춤에술원)

○ 임수정 예술감독

국립경상대학교 교수(무용학 박사)

한국전통춤예술원 대표

박병천류 전통춤보존회 초대 회장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이매방류) 이수자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이매방류) 이수자

제15회 한밭국악전국대회 명무부 대통령상 수상

2018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전통부문)’ 선정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