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짙어지는 오월의 숲에 들면 아카시아를 비롯하여 찔레꽃, 산딸나무, 때죽나무, 쪽동백 등 유난히 흰 꽃들이 많이 눈에 띈다. 꽃의 색은 꽃의 생김새, 향기, 무늬 등과 함께 상리공생(相利共生)하는 곤충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다. 그런 면에서 흰색은 그리 매력적인 색은 아니다. 대신 흰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꽃의 색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이는 대신 꿀이나 꽃가루를 만들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곤충들에게 충분히 보상해준다. 곤충들에겐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쪽동백나무는 때죽나무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가을이 되면 커다란 잎사귀는 노란빛의 단풍이 든다. 5~6월에 새로 난 가지 끝에 기다란 꽃대 양쪽으로 순백의 작은 꽃들이 지면을 향해 가지런히 피어난다. 수피도 아름답고 꽃 또한 아름다워서 요즘은 관상수로도 많이 심어 조금만 눈여겨보면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도시의 공원 같은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꽃이다. 사람들은 곧잘 쪽동백과 때죽나무꽃을 혼동하기도 한다. 꽃의 생김새도 비슷하고 피는 시기도 같으니 그럴 만도 하다.
때죽나무 꽃을 볼 때면 나는 악양에 홀로 사는 박남준 시인이 떠오르곤 한다. 오래전 시인의 집에 초대받아 함께 차를 타고 구례에서 악양까지 가는 동안 뒤따라오던 섬진강의 은빛 물결은 지금도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 있다. 악양에 이르러 시인이 사는 마을 쪽으로 차 머리를 막 돌렸을 때였다. 시인은 차창을 내리고 길가 산자락 끝에 서 있는 나무 하나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나지막한 언덕에 때죽나무 한 그루가 흰 꽃송이를 가득 피워달고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때죽나무 꽃도 아름다웠지만 그 꽃의 아름다움에 감격한 듯한 시인의 소년 같은 표정에 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신록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요즘, 순백의 꽃송이들을 가득 달고 선 쪽동백나무나 때죽나무 꽃그늘 속을 걸어보는 일처럼 근사한 일도 없다. 바람이 지날 때마다 맑은 꽃향기를 흩으며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발등으로 내려앉는 꽃송이들의 군무도 아름답지만 꿈속처럼 따라오는 수천수만의 은종 소리를 듣다보면 이 좋은 봄날이 순간에 지나가 버릴 것만 같아 눈 한 번 깜빡이는 일도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