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28 13:23
인왕산을 올랐다. 요 며칠, 냉랭해진 외기에 지레 겁을 먹고 채비를 단단히 하고 집을 나섰는데 햇볕은 따사롭고 바람마저 없어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등짝에 땀이 배어 나왔다. 독립문에서 출발하여 안산 자락길을 따라 걷다가 무악재 하늘다리를 건너 인왕산(338.2m)을 올랐다. 인왕산이란 지명은 이 산에 있는 인왕사란 절 이름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불가에서 인왕(仁王)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인왕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산이라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많아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하늘다리를 건너 제일 먼저 마주치는 바위는 해골바위다. 누가 이름을 일러주지 않아도 형상만 보면 그 이름을 너끈히 짐작할 만2023.11.20 12:01
바닷바람이 제법 차다. 가을도 막바지인 11월은 햇빛이 정수리를 쪼아대는 한낮을 제외하면 바람 끝이 서릿발처럼 맵고 차다. 신두리 해안사구를 찾은 것은 근 20여 년 만이다. 스무 해 전,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와는 풍경이 많이 달라져서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빼곡히 들어찬 펜션 촌과 새로 세워진 사구센터, 그리고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사구 탐방로에 설치된 나무데크까지 예전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단 하나, 변하였으나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세찬 바닷바람과 그 바람이 세월을 두고 날라 쌓아 올린 모래 언덕이다. 신두리 해안사구는 세계 최대의 모래 언덕이자 슬로시티로 지정된 태안의 가장 독특한 생2023.11.16 13:43
“…떨어지기 위해 시들기 위해 / 아슬하게 저를 매달고 있는 것들은/ 그 무게의 눈물겨움으로 하여/저리도 눈부신가요/ 몹시 앓을 듯한 이 예감은/ 시들기 직전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 같은 것인가요/ 그러나 당신이 힘드실까 봐/ 저는 마음껏 향기로울 수도 없습니다.” - 나희덕의 시 ‘찬비 내리고’ 일부 찬비 내리고 화려한 색의 향연이 끝난 거리는 관객이 떠난 야외공연장 모습처럼 한껏 어수선하다. 쓰레기를 치우듯 미화원들이 부지런히 낙엽을 쓸고, 도로변엔 낙엽을 담아 놓은 자루들이 즐비하다. 숲에 지는 낙엽과 달리 도심의 낙엽들은 바닥으로 내려앉는 순간 숱한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으스러져 미화원들을 힘들게 하는 한낱2023.11.07 13:10
창 너머로 보이는 도봉산에도 가을이 깊다. 울긋불긋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 산은 멀리서 바라만 봐도 황홀하다. 단풍을 제대로 즐기려면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곱기만 한 단풍도 바짝 다가가 보면 벌레 먹은 자국이나 상처가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여도 이 황홀한 색의 향연을 멀리서 바라만 보기엔 너무 아쉬워 북한산을 찾았다. 인간도 동물인지라 진짜 삶은 움직임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간밤에 비바람 사납게 불어댄 뒤라서인지 하늘은 맑고 공기는 서늘하고도 상쾌하다. 카뮈는 가을을 두고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2023.10.26 10:02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을 읊조리며 창밖 풍경을 우두망찰 바라본다. 초등학교 운동장 가에 여름내 초록 그늘을 드리우던 대왕참나무가 불붙듯 타오르고, 담장 옆의 벚나무와 느티나무도 시나브로 물든 이파리를 내려놓고 있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는 것을 알아차린 시인의 통찰력이 새삼 놀랍다. 사람과 달리 나무들은 허투루 힘을 쓰는 법이 없다. 나무가 때를 알아차리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2023.10.18 12:46
‘간송옛집’은 내가 자주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도봉구 방학동으로 이사 온 뒤로 지척에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지근거리에 있는 이유도 있지만, 산 들머리에 있어 산을 오르거나 숲을 찾아갈 때면 으레 한 번씩 들르는 최애의 장소가 되었다. 간송옛집은 조선 최고 부호였던 간송 부친이 전국 물산을 관리하고 보관하던 창고로 지었는데, 간송이 부친의 제사를 지낼 때 부속 시설로 사용하다 한국전쟁 때 훼손되어 한동안 폐가처럼 방치되기도 했다. 간송이 세상을 뜬 뒤 종로4가의 본가를 철거하면서 나온 자재로 도봉구와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전통 한옥으로 복원·단장해 2012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21호 ‘서울 방학2023.10.11 13:21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의 ‘멀리서 빈다’ 전문가을이 깊어지는가 싶으면 습관처럼 나는 이 시를 읊조린다. 그중에도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당부하는 마지막 연은 절창이다. 매번 화살촉처럼 날카롭게 가슴에 와 꽂히며 부르르 떠는 화살의 진동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전율을 일으킨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서늘해진 기온 탓일까. 바람에 떨어진 낙엽처럼 불2023.10.04 12:55
시월이 왔다. 설악산의 단풍 소식과 함께 시월이 온 것이다. 추석 성묫길에 보았던 보랏빛 쑥부쟁이와 분홍 며느리밥풀꽃, 물이 잦아든 천변에 다보록이 피어 있던 자잘한 고마리꽃들과 바람을 타는 코스모스의 춤사위가 조금씩 경쾌해지는 사이, 누구나 살고 싶은 시월이 온 것이다. 쨍한 갈맷빛 하늘가로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흰 뭉게구름만 보아도 가을은 이미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지만, 진정 가을을 가을답게 해 주는 것은 단풍이 아닐까 싶다. 옛 시인은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라 하여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안다고 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온산을 붉게 물들일 때 가을은 절정에 이른다. 누군가의 말2023.09.27 13:19
안산자락길을 걸었다. 세상 끝까지 갈 것만 같던 늦더위도 한풀 꺾이고 대지의 기운이 서늘해진 요즘이 걷기엔 더없이 좋은 때다.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자락길은 전국 최초의 순환형 무장애 자락길로 숲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서대문구의 관광명소다. 총 7㎞의 숲길은 한 바퀴를 도는 데 천천히 걸으면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경사도 9% 미만으로 조성하여 휠체어나 유모차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바닥을 평평한 나무 데크나 친환경 마사토, 굵은 모래 등으로 조성하여 휠체어와 유모차는 물론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보행 약자도 쉽게 숲을 볼 수 있다. 인왕산 줄기인 무악(毋岳)은 높이가 296m로 서울 남산보다 약간 높다. 총 7㎞ 길이2023.09.20 13:14
밤새 비가 내렸다. 창문을 여니 습하고 선득한 바람이 꾸역꾸역 방 안으로 밀려든다. 좀처럼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늦더위 덕분에 9월이 된 뒤에도 선풍기를 끼고 살았는데 창을 넘어오는 한 줄기 바람에서 문득 가을이 묻어난다. 가장 먼저 가을의 징후를 보이는 것은 바람이다. 어제 불던 바람과 오늘 부는 바람결이 확연히 다르다. 후텁지근하고 끈적거리며 몸에 와 감기는 바람이 아닌, 솜털을 간질이며 스치는 실크처럼 부드럽고 청량한 바람이라고나 할까. 바람이 좋아 거리로 나서면 햇볕은 따가워도 그늘 쪽은 어느새 스산하다. 여름내 반짝이던 싱싱한 나뭇잎들도 큰 병치레를 한 사람처럼 윤기를 잃고 꺼칠해져 있다. 일찍이2023.08.31 15:36
여름내 수돗가에서 그윽한 향기를 풀어놓던 치자꽃이 시들면서 더위도 한풀 꺾인 듯하다. 일찍이 ‘양화소록’을 쓴 강희안은 치자에겐 네 가지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다. 꽃 색깔이 희고 윤택한 꽃과 맑고 부드러운 향기,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잎과 노란색을 물들이는 열매를 지닌 치자를 귀하게 여겼다. 치자나무는 꼭두서닛과에 속하는 상록 관목으로 중국이 원산지다. 치자꽃의 우윳빛 흰색의 꽃잎이 점점 노랗게 색이 변하며 시드는 사이 하늘은 한 뼘이나 높아져 있다. 어느새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는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아직 가을을 입 밖에 내긴 이른 감도 없지 않으나 청명한 하늘을 따라 아득해 보이던2023.08.16 10:36
“큰비 지나간 개천은 가리워진 곳 없어서 마름풀들은 얽히었다/ 작은 소에서 놀던 물고기들은 소식 없이 흩어졌다/ 들길에는 띠풀이 다보록해졌다/ 무너진 고랑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맛살에 주름이 들었다/ 젖은 집으로 어물어물 돌아가는 저녁 거위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큰물이 나가셨다, 했다.” -문태준의 ‘큰물이 나가셨다’ 전문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하던 태풍 ‘카눈’이 지나갔다. 구름 사이로 조각난 파란 하늘이 보였다. 기상 관측 이래 최초로 한반도를 종단한 특이한 이동 경로를 가진 '카눈'은 느린 이동 속도와 많은 비구름을 품고 있어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기상예보가 있었다. 태풍 이전엔 한 차례 물난리를 겪은 뒤2023.08.09 09:20
배롱나무꽃이 핀 걸 보니 여름도 절정에 다다른 듯하다. 염천의 땡볕 아래 화사하게 피어난 붉은 꽃송이들이 눈부시다. 유례없는 가마솥더위로 세상이 온통 한증막 같건만 배롱나무꽃은 아랑곳하지 않고 햇빛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다. 사람들은 무더위에 비지땀을 흘려도 꽃들은 조금도 지친 기색도 없다. 여름에 피기 시작하여 가을까지 꽃을 달고 있는 배롱나무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에 피는 모든 꽃이 그러하다. 그들이 날씨를 탓하지 않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환경에 적응하며 가장 꽃 피우기 좋은 때에 맞춰 피니 날씨를 탓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봄에2023.08.02 08:58
폭우와 폭서의 나날이 지속되는 중이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비지땀이 흐른다. 에어컨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열대야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체질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유엔의 발표대로 이제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게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비와 더위 때문에 숲을 찾기도 쉽지 않은 요즘 다시 꺼내 읽는 책 중에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있다.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 그 능력은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찬사를 받지도 못하며, 돈도 들지 않는다. 고개를 높2023.07.26 08:48
“저의 시선은 성정각 동쪽 담장 아래 서 있는 살구나무 주변을 맴돌다 자연스럽게 발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아!' 하는 짧은 탄성이 나왔습니다. 성정각 기와지붕을 타고 떨어지던 빗물이 만든 웅덩이들의 행렬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비가 내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홈이 꽤 파여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어요. 빗방울은 연신 똑똑 소리를 내며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중이었고요. 동시에 웅덩이 수면에 동그랗고 작은 물결도 생겼죠." -이시우의 '궁궐 걷는 법' 중에서 오랜만에 고궁 산책을 했다. 집중호우와 산사태 위험을 알리는 경고 문자가 수시로 날아들고, 전국이 물난리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라서 산행 약속이 고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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