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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한화손해보험, 자동차사고 소송 초등학생과의 전쟁 …여의도 63빌딩 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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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분석] 한화손해보험, 자동차사고 소송 초등학생과의 전쟁 …여의도 63빌딩 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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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손해보험 주주명단 자료=금융감독원
고아가 된 초등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한 손해보험사를 밝혀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와 주목을 끌고 있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가 초등학생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일파만파이다. 올해 11세인 A군의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자 사망금으로 1억 5000만원 중 6000만원은 A군에 지급됐다. 보험사 측은 상대 차량 동승자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약 2700만원을 갚으라며 A군에게 소송을 걸었다. 이 보험사는 사망금 중 9000만원은 고향 베트남으로 떠난 A군 어머니의 몫이라며 지급하지 않고 있다.

교통사고 전문변호사인 한문철 변호사는 한 방송에서 "보험사 측에서 뉴스를 통해 '유가족 대표와 합의했다. 법적인 소멸시효 문제가 있어 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더라"라고 설명했다. 한문철 변호사는 "나중에 또 이럴 가능성이 있다"라며 "소멸시효가 10년이다. 10년 지나기 전에 또 소송이 들어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0년 지나기 전까지에 안 죽고 살아있겠다"라며 A군을 도울 것을 밝혔다.

이 보험사가 한화손해보험사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확인 되지는 않고있다.

한화손해보험은 1946년 세워진 신동아화재보험(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서울신문의 공동 창업자였던 조중환 씨와 김동준 씨가 공동으로 창업했다. 이들은 1945년 서울신문을 창간한 뒤 이듬해 4월 국내 최초 손해보험회사인 신동아화재보험을 세웠다. 처음 신청했던 이름은 ‘서울화재’였다. 당시 미국 군정청은 ‘서울’이 너무 스케일이 작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미 군정청은 ‘무대를 적어도 아시아까지는 넓혀야 한다’는 의미로 신동아(New Orient)를 추천했고 이것이 정식 회사 이름이 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자금난에 몰린 두 창업자는 회사를 남선무역을 이끌던 김동준 씨에게 넘겼다. 1956년 남선무역은 다시 신동아손해보험을 조선제분의 윤석준 씨에게 팔았다. 1960년대 조선제분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신동아화재보험 주식을 담보로 상업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기 시작해 부실이 됐다. 1964년 정부는 신동아화재보험을 직접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1968년 신동아그룹 창업자인 최성모 씨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도 신동아화재해상보험(주)으로 바뀌었다. 한화화재보험은 1974년부터 장기보험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5년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83년 자동차보험 영업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직후 신동아그룹의 모기업인 대한생명이 경영난에 빠지며 신동아화재보험도 매각 대상에 올랐다. 2002년 한화그룹은 대한생명과 63빌딩, 신동아화재보험을 모두 인수했다. 사무실은 63 빌딩에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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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손해보험 주주명단 자료=금융감독원

고아가 된 초등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한 손해보험사를 밝혀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와 주목을 끌고 있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가 초등학생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 일파만파이다. 올해 11세인 A군의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자 사망금으로 1억 5000만원 중 6000만원은 A군에 지급됐다. 보험사 측은 상대 차량 동승자 치료비와 합의금으로 약 2700만원을 갚으라며 A군에게 소송을 걸었다. 이 보험사는 사망금 중 9000만원은 고향 베트남으로 떠난 A군 어머니의 몫이라며 지급하지 않고 있다.

교통사고 전문변호사인 한문철 변호사는 한 방송에서 "보험사 측에서 뉴스를 통해 '유가족 대표와 합의했다. 법적인 소멸시효 문제가 있어 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말했다더라"라고 설명했다. 한문철 변호사는 "나중에 또 이럴 가능성이 있다"라며 "소멸시효가 10년이다. 10년 지나기 전에 또 소송이 들어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0년 지나기 전까지에 안 죽고 살아있겠다"라며 A군을 도울 것을 밝혔다.

이 보험사가 한화손해보험사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으나 확인 되지는 않고있다.

한화손해보험은 1946년 세워진 신동아화재보험(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서울신문의 공동 창업자였던 조중환 씨와 김동준 씨가 공동으로 창업했다. 이들은 1945년 서울신문을 창간한 뒤 이듬해 4월 국내 최초 손해보험회사인 신동아화재보험을 세웠다. 처음 신청했던 이름은 ‘서울화재’였다. 당시 미국 군정청은 ‘서울’이 너무 스케일이 작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미 군정청은 ‘무대를 적어도 아시아까지는 넓혀야 한다’는 의미로 신동아(New Orient)를 추천했고 이것이 정식 회사 이름이 됐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자금난에 몰린 두 창업자는 회사를 남선무역을 이끌던 김동준 씨에게 넘겼다. 1956년 남선무역은 다시 신동아손해보험을 조선제분의 윤석준 씨에게 팔았다. 1960년대 조선제분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신동아화재보험 주식을 담보로 상업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기 시작해 부실이 됐다. 1964년 정부는 신동아화재보험을 직접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1968년 신동아그룹 창업자인 최성모 씨가 회사를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도 신동아화재해상보험(주)으로 바뀌었다. 한화화재보험은 1974년부터 장기보험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1975년 주식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83년 자동차보험 영업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직후 신동아그룹의 모기업인 대한생명이 경영난에 빠지며 신동아화재보험도 매각 대상에 올랐다. 2002년 한화그룹은 대한생명과 63빌딩, 신동아화재보험을 모두 인수했다. 사무실은 63 빌딩에 자리잡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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