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실 좋은 노부부가 계셨다. 두 분의 사랑은 애드거 앨런 포의 시 '애너벨 리'처럼 천사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두 분은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셨는데, 어느 날 부인께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한평생 둘이 사랑하다가 갑자기 남겨진 남편에게는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냥 손을 잡아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슬픈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남편분을 다시 만나 뵐 기회가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으로 이야기를 하셨지만 왠지 외로워 보였고, 간혹 돌아가신 부인 이야기가 나오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화제를 돌렸다. 그러다가 그분이 "입맛이 없는데다가 혼자 밥 먹는 게 너무 힘드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냥 "네, 그러시겠지요."하고 말씀을 받아들였으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먹을거리 전공자의 알량한 의협심과 위아래 가리지 않고 가르치려는 선생 기질이 발동했다.
"그럴 때일수록 자신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지어 드셔야 해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야 말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을 칠 정도로 후회되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정성껏 '황혼의 혼밥'을 지어 먹을 수 있겠는가? 나 스스로 못할 일을 그렇게 무책임하게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분은 "아, 그렇게 해야 하는데…"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셨다.
우리나라의 1인 가구의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에는 미혼이나 비혼에 기인한 청년 1인 가구, 이혼이나 별거에 따른 중년 1인 가구, 사별로 인한 노인 1인 가구가 있다. 이 가운데 노인 1인 가구, 즉 독거노인 가구가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독거노인 가구의 가장 큰 걱정은 아픈 것과 경제력 부족이지만, 외롭고 끼니를 챙겨먹기 어려운 황혼의 혼밥 문제도 본질적이면서 실제적인 어려움이다. 그렇다. 언젠가 황혼의 혼밥 대신 따뜻한 집밥을 준비해 그분을 찾아뵙고 죄송했다고 말씀드려야겠다.
김석신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