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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온수동 재건축 '겉핥기 조합 동의' 절차상 중대하자...주민 피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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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온수동 재건축 '겉핥기 조합 동의' 절차상 중대하자...주민 피해는?

구로구청 "송전탑·선로 이전비용 주민협의 전제" 사업인가에 한전 공식협의 없이 동의처리
전문가들 "예비타당성 조사·보증보험 가입 등 사전조치 없이 동의서 발급 납득 안되는 처사"

서울 온수동 성원대흥동진빌라 재건축 정비사업 지구내 송전선로 지중화(안). 출처=대흥·성원·동진빌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이미지 확대보기
서울 온수동 성원대흥동진빌라 재건축 정비사업 지구내 송전선로 지중화(안). 출처=대흥·성원·동진빌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글로벌이코노믹 김철훈 기자] 서울 구로구 온수동 일대 재건축사업에서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석연찮은 조합설립 동의를 해 주는 '절차상 중대하자'를 저질러 놓고도 책임 회피로 일관, 자칫 재건축 조합 주민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4일온수동 재건축사업 조합과 한전, 구로구청 등에 따르면, 온수동 재건축 부지 위로 송전철탑과 송전선로가 지나가 이를 지하화하거나 우회하는 공사를 선행해야 하는데 한전이 그 비용 마련을 위한 아무런 조치 없이 조합설립 동의를 해 준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전직 한전 직원이나 법조계·주택건설업계 관계자는 공기업인 한전이 120억 원대에 이르는 공사비용에 대해 사전 예비타당성 조사나 비용분담에 관한 조합원의 동의도 없이 조합설립에 동의해 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중대한 절차상의 하자로 조합설립이 취소될 수도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서울시내 몇 안 되는 1000가구 규모 재건축사업...주민들 기대 높아


문제의 온수동 재건축 사업은 구로구 온수동 45-32번지 일대 대지면적 5만6323㎡, 건축 연면적 15만1805㎡ 규모로 ▲대흥빌라 246가구 ▲성원빌라 251가구 ▲동진빌라 246가구 등 3개 빌라를 재건축하는 사업이다.

정부의 소규모정비사업 규제 완화에 따라 구로구청이 추진하는 사업으로 총공사비 2240억 원이 투입돼 지하 2층~지상 25층 아파트 12개동 988세대를 신축한다는 계획이다.

이 곳은 2009년 지구단위계획 특별계획구역으로 결정돼 재건축 절차에 들어간 뒤 6년간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2014년 정비구역으로 변경 지정된 이후 급물살을 타면서 같은 해 말 3개 빌라 통합추진위원회가 설립됐다.

2015년 10월 대흥·성원·동진빌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94.38%의 높은 동의를 얻으며 창립총회를 개최했고, 2016년 2월 17일 구로구청으로부터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9일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받았다.

곧이어 조합은 시공사 현장설명회를 마련, 상위 10위권 건설사 다수를 포함해 총 13개 건설사들이 참여하는 등 큰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조합은 이달 6일 입찰을 마감한 뒤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조합원들은 1000가구에 이르는 중대형 단지인데다 서울지하철 1호선과 7호선 환승역인 온수역이 가까워 대형 건설사들의 관심이 높다며 재건축 추진에 높은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조합설립 과정에서 한전의 납득하기 어려운 조합설립 동의 사실이 제기되면서 재건축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재건축 부지 북쪽 한복판에 한전의 전기공급설비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동진빌라와 성원빌라 사이에 송전철탑이 서 있으며 전기공급설비와 송전철탑에 연결된 송전선로가 재건축 부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지나가고 있다. 지상 25층 아파트를 짓기 위해선 송전탑 및 송전선로의 지하화나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한전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온수동 45-8, 9, 11, 16, 24 토지 중 일부와 지상건물도 소유하고 있다. 사업부지로 편입되는 대지면적은 3570㎡다.

구로구청은 이 재건축사업 인가조건으로 한전과 재건축조합간에 송전탑 지중화 관련 협의가 선행될 것을 제시했다. 해당구간을 지나가는 15만4000볼트(154kV)의 송전선로를 지중화하기 위한 용지확보, 사업비부담, 공사기간 확보 등 조건이 충족되야 지중화 사업이 가능하고 따라서 조합설립도 가능해지므로 이를 당사자 간에 협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전 남서울지역본부(현 남서울본부)는 아무런 공식협의 없이 2015년 10월 조합설립에 동의했다. 2쪽짜리 동의서엔 조합설립 및 재건축사업에 동의한다는 내용만 기재되어 있다.

문제는 한전이 재건축사업에 필수불가결한 송전선로 지중화사업을 동의서에도 기재하지 않고 동의서 발급 전후에도 아무런 공식협의를 거치지 않은 채 발급해 줬다는 점이다.

한전 남서울본부에서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을 담당하는 실무부서 A씨는 "조합 측 사람이 몇 차례 지중화사업 관련 문의를 해 와서 사업비용을 부담하면 지중화사업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해줬다"고 말했다. 전기사업법 제72조(설비의 이설 등)에 따르면 원인제공자(조합)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면 송전선로 지중화가 가능하다.

이같은 답변 확인을 구로구청에서 인가조건으로 제시한 협의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전 A씨 역시 단순 문의에 대한 단순 답변이며 공식 합의가 아니라고 인정했다.

또한 A씨는 "전기사업법에 따라 사업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지중화 사업이 가능하다고 답변해 주는 것과 조합설립에 동의해 주는 것은 전혀 별개"라며 "동의서 발급은 관리부서에서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송전탑 이전비용 확보 없이 조합설립 동의 "납득할 수 없는 이례적인 일"


반면에 조합설립 동의서를 작성해 준 한전의 관리부서 B씨는 "실무부서에서 가능하다고 답변해서 동의서를 써준 것으로 보인다"며 "2015년 당시 동의서를 작성해 준 담당자는 전기사업법에 이미 규정이 있기 때문에 굳이 예비타당성 조사나 사전 협의 및 동의, 공사자금 유치 등은 필요 없다고 여긴 것 같다"고 주장했다.

법에 규정만 있으면 아무런 사전조사나 공사비 확보조치가 없어도 조합설립을 동의해 줄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B씨는 "재건축조합 설립동의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보니 이에 관한 규정이나 매뉴얼이 없는 것 같다"며 애초의 주장과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더 명백한 과실은 조합원이 아닌 인근 다른 아파트 및 빌라 주민과의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이 송전선로를 지중화하기 위해서는 재건축 부지에서 남쪽으로 약 800m(7개 송전탑 경유) 떨어져 있는 송전탑에서부터 송전선을 지하에 묻어야 한다. 그러려면 송전선 통과지역 아래에 있던 아파트 단지 및 빌라 주민들과 지중화 공사에 관해 협의해야 하는데 한전은 이들과의 협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구로구청도 이에 관한 확인절차를 하지 않았고 조합 측도 이 주민들에게 이러한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한전 출신 C씨는 "송전선로 지중화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지중화가 가능한지를 판단하고 정확한 공사비를 산출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산출된 공사비를 원인제공자(조합)에게 청구해 자금을 유치해야 하고 안 되면 보증보험이라도 든 후에 조합설립 동의서를 발급해야 한다"면서 "공기업인 한전이 이런 사전 담보조치 없이 동의서를 써준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C씨는 "전력공급은 중단되면 안 되기 때문에 송전철탑의 대체설비가 확보된 후 비로소 송전철탑 철거가 가능하다. 사전 담보조치가 더욱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한전 관계자 D씨도 지금까지 이 재건축사업과 관련하여 조합 측의 지중화사업 공식요청도 없었고 한전도 해당구간 송전선로에 대한 지중화 용지 및 공사비 확보 계획이 없다고 확인했다.

한편, 온수동 재건축 조합의 한 조합원에 따르면, 조합에 추가 비용부담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조합원의 동의 또는 총회의 결의가 있어야 하는데 조합 설립 이후 송전선로 지중화 사업비에 관한 총회 의결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구로구청이 한전과 조합간에 협의하도록 한 문건을 보면 이 송전선로 지중화사업 공사비는 127억 원, 공사기간은 64개월로 되어 있다. 이는 표준적인 비용과 기간으로 실제 지질조사 등을 거치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이 재건축 사업의 경우, 한전은 지중화사업 비용을 재건축조합 측이 부담한다는 조건 하에 조합설립에 동의해 준 이른바 '조건부 동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전은 조합 측이 공사비를 부담한다는 어떠한 약속이나 담보도 받은 바 없고 구로구청이 제시한 사전 협의도 없었던 것으로 보여 이 재건축조합설립은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총 사업비 2240억 원 규모인 사업에 추가로 127억 원의 송전선로 이전비용이 발생한다면 선뜻 재건축 수주에 참여할 건설사가 있을 지는 미지수다. 조합원이 마련하기에도 큰 돈이다. 지중화사업에만 5년 4개월이 걸린다는 점도 조합원들에게 부담이다.

주택건축업계에선 이번 온수동 재건축 추진식으로 흐지부지 무산되어 버리는 재건축사업이 부지기수였음을 상기시키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한전의 태도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재건축조합원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철훈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