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로널드 레이건 정책과 궤를 같이 하며 경제 정책을 펼쳐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유세 당시 냉전시대를 살았던 레이건 전 대통령을 롤 모델로 내세워 유권자들을 끌어 모았다. 당시 트럼프의 슬로건인 '위대한 미국'은 사실 레이건의 것을 모방했던 것이다. 또 지금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무역전쟁 또한 과거 레이건이 그린 비전과 결부된다.
트럼프의 정책을 풀이하면, 1980년대 레이건의 전술을 내세우며 관세를 통해 중국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과거 레이건 대통령도 일본의 반도체와 컴퓨터, 텔레비전의 수입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레이건은 동시에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로 이어진 글로벌 통상 대화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트럼프와는 차이가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에 이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까지 흔들고, 중국을 타깃으로 한다지만 정작 가장 큰 타격은 우방국을 강타하는 트럼프의 정책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오래 전부터 트럼프는 레이건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레이건이 대통령직에 있었던 당시 트럼프는 뉴욕의 부동산 업계에서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내는 신흥 세력이었고, 당시 레이건의 정책에 의해 수많은 수혜를 입은 트럼프로 하여금 레이건을 숭배하도록 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정권은 레이건 시대의 통상 전술인 1974년에 제정된 미국 통상법 301조를 즐겨 쓰고 있다. 이 법은 국가 간 통상관련 합의 위반과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해 대통령이 일방적인 관세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트럼프는 이를 선봉에 내세워 중국의 지적재산권 절도 행위와 강제적인 기술 이전을 처벌하기로 결심했다.
이어 미국 정부는 1987년 일본 측이 이 협정을 어겼다고 우기며 일본산 PC나 TV, 전동 공구에 대해 100%의 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미국 통상 당국자는 "양보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에는 일본과 너무 큰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미 무역대표부(USTR)의 차석 대표를 맡은 경험이 있는 라이트 하이저 통상 대표는 지금 중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당시 중국과 북한에 대한 방위를 오로지 미국에만 의존했던 일본은 결국 미국의 요구에 일부나마 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군사적으로 미국에 도전하고 있으며, 쌍방의 무역전쟁에서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은 받은 만큼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전술을 펼치겠다고 선포했다.
차이는 그 뿐만이 아니다. 일본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 레이건 행정부는 1986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인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개시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다각적인 무역 협상을 거쳐 1994년 드디어 일방적인 무역 조치의 필요성을 줄이기 위한 분쟁 처리 메커니즘을 갖춘 'WTO'가 탄생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이 잉태시킨 "WTO는 대 실패"라고 멸시하며 관세를 강화하고 있다. 레이건을 숭배한다는 트럼프의 말이 이 하나의 행동으로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방적인 무역전쟁이 과녘인 중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을 향한 보복 조치는 불가피해졌다. 미국의 대두 농가나 자동차 제조업체, 버번 생산자들은 이미 통증을 느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평행이론을 내세우지만 말로만 레이건을 따라할 뿐, 당근없는 채찍만을 휘두르는 바람에 결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의 수출 산업을 위해 어떤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피해는 갈수록 크고 넓게 전염되고 있다. 무역전쟁의 결과가 점점 더 드러날수록 트럼프는 더 이상 레이건 카드를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김길수 기자 gski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