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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투자 경제학(27)] [베트남 투자(4)] 베트남, 교육열 높고 근면·성실…싸고 질 좋은 노동력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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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투자 경제학(27)] [베트남 투자(4)] 베트남, 교육열 높고 근면·성실…싸고 질 좋은 노동력 풍부

인구 9444만명 세계 14위
전후세대가 35% 젊은층 많아
도시인구 비율 34.1% 차지

매년 6% 이상 실질적 성장
젊은 세대 직업 찾아 도시로
주택·교통문제 잘 살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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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찌민시의 오토바이 출근행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전쟁(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1946~1954)에 승리하면서 독립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남북으로 분단되고 월남 판 남북전쟁(제2차 인도차이나전쟁, 1960~1975)이 일어났다. 1975년 미군이 사이공을 철수하면서 남북으로 갈라졌던 베트남이 통일이 되었다. 그것도 잠시, 1975년부터 1978년까지 캄보디아와 전쟁을 벌이면서 이번에는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캄보디아 침공에 반대하는 중국과 1978년 2월 국경지대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6•25전쟁은 3년간(1950~1953)의 전쟁이었다. 모든 강산이 잿더미로 변했다. 베트남은 약 32년간 전쟁을 지속하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희생되었다. 우리나라는 1954년부터 전후세대가 된다. 통상 1955년부터 1963년까지를 사회적으로 베이비붐 세대라고 한다. 베트남의 경우 모든 전쟁이 종식된 1979년 이후 출생한 세대가 전후세대가 된다. 당연히 1980년대 생과 1990년대 생이 인구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30대 이하의 젊은 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www.worldometers.info’ 및 ‘베트남가이드(www.vietnamguide.co.kr)’에 따르면, 2016년 현재 베트남은 전체 인구 9444만 명으로 세계 14위다. 평균연령은 30.8세, 15~34세가 전체의 35%로 전후세대인 젊은 층이 주축을 이룬다. 도시인구 비율은 2016년 현재 34.1%이며 2000년 24.6%보다 약 10% 가까이 증가했다. 베트남 경제가 발전할수록 도시화율은 점점 높아지게 된다. 베트남 최대인구 도시는 호찌민으로 2015년 현재 822만 명이며 그 다음으로 하노이가 644만 명이다. 호찌민의 경우 지금 같은 추세라면 머지않아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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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은 세대들이 도시로 몰리고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게 되면 도시의 주택문제, 교통문제, 상하수도 문제, 교육 문제 등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투자자라면 베트남의 주택문제와 교통문제를 잘 살펴 보아야 한다.

개발도상국에서 젊은 층 비율이 높은 이 한 가지 내용만 가지고 그 나라 경제 전체를 전망할 수는 없다. 개발도상국은 평균수명이 OECD 선진국보다 짧다. 따라서 노년층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젊은 층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젊은 층이라고 모두 양질의 노동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노동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캐디의 예를 들어보자. 동남아는 1인 1캐디지만 서비스는 한국의 4인 1캐디보다 못함을 느낀다. 하지만 인건비는 캐디 4명의 인건비를 합(약 4만~6만원)해도 한국의 1인 캐디 인건비(12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인건비와 노동생산성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노동생산성에는 교육과 훈련뿐만 아니라 기후의 영향이 크다. 한국의 겨울철에는 건축공사를 할 수 없다. 동남아는 우기 철에 외부공사를 하기 어렵다. 우선 매일 비가 내리므로 토목공사나 콘크리트 타설이 어렵다. 그리고 매우 덥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오르지 못한다. 인건비가 싸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노동생산성이 높으면서 인건비가 싸야 한다. 다른 동남아 국가에 비해 베트남이 여기에 해당된다.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교육열이 높고 근면 성실하기 때문이다.

노동력이 풍부하면 젊은 층의 구매력이 높다는 건 지나친 낙관이다. 노동력이 풍부함은 이면에 실업률이 넘쳐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취업과 급여가 바탕이 되어야 구매력이 높아지게 된다. 그 나라의 산업(제조업, 서비스업, 농업 등)이 얼마나 확장 성장해 주느냐에 따라 젊은 층의 노동력이 흡수되면서 구매력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베트남은 매년 6% 이상의 실질적 성장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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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어디를 가든 일본제 오토바이가 대중교통 수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베트남이라고 다르지 않다. 혼다, 스즈끼 등 일본제 오토바이 천국이다. 호찌민시 출퇴근 길, 도로에 차량보다 오토바이 물결이 더 거세다. 자동차는 오토바이 물결에 밀려 감히 속력을 내지 못한다. 따라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도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오토바이에 밀려 제 시간에 정류장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디든 기다리지 않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오토바이의 편리함에 젖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비가 억수같이 내려도 우의(판초)를 입고 달리는 오토바이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선 감기에 걸릴까 봐 또는 도로가 미끄러워 감히 빗속에 오토바이를 달리지 못한다. 베트남인의 용감성과 저돌성을 느낀다. 베트남 부유층이 자동차를 사기 시작했다. 지하철공사도 진행 중이다. 중국의 대도시에서 자전거의 물결이 사라졌다. 자동차와 지하철로 대체되었다. 베트남은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이제 자동차와 지하철이 머지 않았다.

호찌민시는 신도시개발이 한창이다. ‘호찌민은 공사 중’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구시가지(1군)를 벗어나면 공사용 팬스(울타리)와 타워크레인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롯데와 GS건설 등이 호찌민시의 도시개발계획에 홍콩, 싱가포르계 업체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다. 벌판이었던 지역이 2군, 7군, 9군 등으로 불리며 도시가 확장되고 있다. 구시가지는 도로가 협소하여 교통이 복잡하지만 신도시는 우리의 신도시와 다를 바 없다. 확 트인 대로가 뚫리고 순환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80년대 서울이 강남 등 외곽으로 도시가 확장되는 1차 시기와 비슷하다.

호찌민시의 구시가지에서 사이공 강 건너편, 사이공 강이 항아리처럼 감싸고 있는 지역이 2군이다. 2군은 새로운 신도시 개발이 시작되고 있다. ‘상하이의 푸둥지구’처럼 새로운 금융도시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호찌민의 푸둥지구’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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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 때 적국에까지 문호 개방

한국, 전체 투자 16%로 1위 차지
추석을 지내고 베트남 호찌민시로 향했다. ‘Let it be’가 호찌민시 길거리의 한 업소에서 울려 나온다. 영국의 전설적인 그룹 ‘비틀즈’의 노래다. 존 레논은 폴 메카트니와 함께 비틀즈의 멤버였다. 반전을 주장했던 가수로 기억되고 있다. 베트남은 미국과 전쟁을 끝낸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반전가수 존 레논을 기억하고 있다. ‘전쟁유물기념관’을 관람했다. 비록 사진이지만 전쟁의 참상이 끔찍하여 고개가 돌려진다.

전쟁기념관 방문객은 의외로 덩치 큰 백인들이 대부분이다. 무리를 지어 베트남인 가이드의 영어 설명을 열심히 듣고 있다. 그네들 중 일부의 부모 세대들이 참전한 전쟁일 수 있다. 우월한 무기로 월남 땅에서 벌인 전쟁의 참상을 보고 있다. 그때의 영광을 그리워할까, 아니면 참담함과 부끄러움과 전쟁의 공포를 느꼈을까?

기념관 3층에는 연도별 ‘국가별 참전군인수’ 도표가 전시되어 있다. 한국은 미군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둘러 내려왔다. 월남전이 한창일 때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월남으로 가는 군인들과 전과를 올렸다는 월남전 뉴스가 단골 메뉴였다. 초등학교 시절 ‘백마부대•맹호부대•청룡부대가’를 씩씩하게 따라 불렀던 기억이 선하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에 실패하고 철수했다. 월맹(지금의 베트남)은 승리와 통일을 얻었다. 하지만 15년간(1960~1975)의 전쟁으로 입은 베트남 국민들의 고통과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음을 전시하고 있다.

그 당시 월남이 통일(공산화)되자 북한 김일성이 한껏 고무되었다. 우리는 남침과 공산화 위협을 느꼈다. 공산화되면 우리는 죽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 불안감을 동력으로 삼아서 ‘자주국방과 산업화’에 매진하여 북한과 경제력 격차를 벌렸다. 월남전은 우리의 실전 전투력을 높이고 경제개발의 시드머니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통일과정에서 하노이(월맹)가 사이공(현 호찌민, 월남)을 점령했다. 하노이는 정치와 군사력을 가진 권력의 도시이고 호찌민은 경제중심 도시가 되었다. 피점령 지역이 된 남부 베트남의 많은 사람들이 보트피플이 되어 외국으로 흩어졌다. 이제 중장년이 되고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전쟁에 휩싸인 중국을 떠나 동남아로 흩어졌던 화교들이 모국인 중국에 투자하여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된 것과 다름이 없다. 지금 베트남은 비록 우리보다 경제발전이 늦었지만 통일된 국가로서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는 경제는 발전하였지만 아직 통일을 보지 못하고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공산 베트남으로 통일된 이후 우리와 적국이 되었다. 그러나 1986년 ‘도이모이 정책’과 더불어 과거의 적국인 미국과 한국 등에 과감히 문호를 개방했다. 지금은 베트남에 한국인의 투자가 가장 활발하다. 외국투자 중 한국의 투자가 전체의 16%로 1위다. 2위는 일본이다. 2016년 7월 말 현재 우리나라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의 투자승인 액 기준 23억6900만 달러, 투자비중 20.11%로 베트남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인 방글라데시는 8.74%에 불과하다. 2015년 7월 투자법, 기업법, 주택법 등을 개정하여 외국인에게 어서 와서 많이 투자하라고 손짓하고 있다. 베트남 방문객중 한국인은 중국에 이은 2위이며 일본은 3위이다. 어딜 가든 한글간판, 한국기업이 지은 건물, 대형마트가 보이고 도로위엔 한국산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황상석 전 NH농협증권 PI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