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모건는 유럽 각국에서 돈을 들여와 그 자금으로 미국의 철도와 철강 그리고 전신, 자동차 전화 등에 투자했다.
모건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미국의 산업화는 지금보다 훨씬 지체되었을 것이다.
그 공로로 근대 산업의 아버지라고 까지 불리고 있다.
모건이 세상을 재창조했다는 평가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 아들 대인 잭 모건 대에 와서는 더 번성했다.
아들 잭 모건은 세계 1차 대전이 터지자 영국과 프랑스를 도왔다.
이 돈이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자금으로 들어갔다.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모건의 입지는 세졌다.
전후 최고의 채권은행으로 부상한 것.
이는 유럽의 금융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공황 때도 모건은 크게 활약했다.
미리 확보해 둔으로 망해가는 기업들을 헐값에 마구 사들인 것이다.
공황이 끝나가던 1930년 대 초 모건은 산하에 100겨개의 기업을 거느린 공룡그룹으로 성장했다.
당시 월가의 상장기업 총 자산 중 40%이상이 모건의 소유였다.
잘나가던 모건은 1933년 금융독점을 금지한 글래스 스티걸 (Glass-Steagle)법이 시행되면서 시련을 맞는다.
너무 커진 모건을 겨냥한 법이었다.
결국 모건은 쪼개졌다.
우선 증권이 분리됐다.
모건스탠리가 그때 만들어진 증권사다.
또 수많은 기업에 투자되어있던 지분도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각국에 퍼져있던 해외사업부 또한 별도 회사로 떨어져 나갔다.
기업분할로 모건의 영향력은 급속하게 약화됐다.
[계속]
김대호 경제연구소 소장 겸 대기자/ 경제학 박사 tiger8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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