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해외 외신보도에 따르면 미국을 비롯한 EU, 일본, 대만 등이 반도체 생산라인 유치를 위해 대규모 지원금 경쟁에 나서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코로나19 사태 당시 글로벌 공급망 대란을 겪은 국가들이 자국 위주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 중"이라고 평가했다. 1990년대 이후 기술개발은 북미·EU에서, 생산은 한·중·일로 굳어졌던 공급망 대신 자국 위주 생산체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미 상무부는 칩스법 세부지침을 통해 향후 5년간 530억 달러의 지원금 중 390억 달러(약 51조원)를 반도체 공장 설립 및 생산 보조금으로 지원하며, 130억 달러(약 18조원)는 연구개발(R&D)·인재양성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또한 10년간 설비투자 비용의 25%에 해당되는 세액공제 혜택도 제공한다. 세제혜택 규모는 240억 달러(약 32조원)에 달한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반도체 생산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는 칩스법 세부지침도 공개했다. 늦어도 3월 말까지는 기업들이 보조금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신청 절차도 개시할 예정이다.
EU 역시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2월 '반도체지원법'을 마련한 후 지난해 11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 내 공공·민간 반도체 생산시설에 총 430억 유로(약 60조원)를 지원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EU는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현재 10% 수준인 유럽산 반도체 점유율을 오는 2030년까지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일본과 대만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반도체 공장 확보에 나섰다. 특히 일본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일본에서 반도체를 10년간 생산하기만 하면 설비투자 금액의 최대 3분의 1을 지원하겠다는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놨다. 이를 위해 올해 배정한 예산만 3700억 엔(약 3조5000억원)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이에 일본을 대표하는 토요타와 소니 등 8개 기업은 신설 반도체 업체인 '라피더스'를 설립하고 홋카이도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대만 TSMC도 일본 구마모토현에 제2 공장 착공을 결정했다.
대만의 경우 공격적인 세제지원을 통해 반도체 기업 유치에 나섰다. 대만 국회는 최근 '산업혁신조례수정안'을 통과시켰는데, 해당 법안에는 반도체를 포함해 첨단 기업의 R&D 비용 중 25%를 세액공제해 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반면 국내 상황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최대 25%까지 세액공제를 제공해주는 정부의 'K-칩스법'이 국회 안에서 논의 중이지만, 법안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업계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의 반도체 기업 유치전에 대해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지원금에 파격적인 세액공제까지 제공되는 만큼 국내 반도체 기업들 입장에서는 해외 진출이 유리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곧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의 한 임원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첨단 반도체 생산기반 확보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것은 결국 첨단 산업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본 명제이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생산설비가 해외로 나가는 게 우려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인력 유출에 이어 산업 기반이 모두 해외로 나가는 상황이 올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