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을 총칭하는 '공공기관'은 정부 정책에 따른 국가와 국민을 위한 업무와 서비스를 집행하는 곳으로, 정부와 국민 간 '정책 접점'의 기능과 역할을 한다.
일부 공공기관은 기후변화·고령화·코로나19 등 글로벌 위기 시대에 에너지전환·한국판뉴딜 등 정부의 핵심 대응정책들을 앞장서 집행하면서 기관의 존재와 역할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후 '탄소발생 없는 무한한 에너지원'인 핵융합 에너지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받았다.
실제로 문 대통령 선언 다음달인 11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부설연구기관인 국가핵융합연구소가 독립연구기관인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으로 승격돼 새로 출범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핵융합연의 승격과 출범은 인류 미래 에너지원으로 기대되는 핵융합에너지 기술이 '기초원천기술' 단계를 넘어 '실증기술' 단계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할뿐 아니라, 인류 최대 국제 프로젝트라 불리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사업에서 대한민국이 더욱 주도자 역할을 맡기 위한 동력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제사회에서도 핵융합에너지 개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우리나라 국회는 지난해 5월 핵융합연 출범 근거가 되는 법령을 마련했고, 정부도 지난 3월 '2050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탄소중립 연구개발 투자전략'에서 재생에너지·수소경제·친환경자동차·탄소포집저장과 함께 핵융합을 '10대 핵심투자분야'로 선정했다.
핵융합연 유석재 초대 원장은 "글로벌 탄소중립에 따른 에너지 전환정책과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위한 한국판 뉴딜정책에 부합하는 청정하고 안전한 미래 에너지원인 핵융합에너지 개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핵융합연은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연료 무한한 핵융합발전, 폭발 위험·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없어
핵융합은 초고온의 플라즈마(고에너지로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상태) 상태에서 원자핵들이 융합돼 더 무거운 원자핵으로 변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이다. 이때 발생한 열로 증기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핵융합발전이다.
핵융합발전은 연료인 수소를 사실상 무한정 공급할 수 있고, 진공용기가 깨져도 1억℃의 플라즈마가 공기에 접촉하는 순간 빠르게 에너지를 잃기 때문에 폭발 위험이 없다. 방사능 방출량도 현재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정도이고, 핵융합 결과 생성물인 헬륨은 풍선에 사용할만큼 안전물질이라는 점에서 미래 청정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잠재성을 간파한 선진국들은 일찍부터 핵융합 기술을 연구해 왔다.
지난 1988년 미국·소련·유럽(EU)·일본은 서로 독자수행하던 핵융합 연구를 공동으로 수행하기로 합의하고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ITER는 50메가와트(㎿)의 에너지를 투입해 500㎿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핵융합실험로를 건설·운영해 핵융합에너지의 실현 가능성을 최종 검증하는 사업으로, 2007년 건설부터 오는 2042년 해체까지 총 132억 유로(약 18조 원)를 투입하는 인류 역사상 최대 국제공동프로젝트이다.
4개 원회원국 외에 우리나라와 중국·인도가 합류해 7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프로젝트가 됐으며, 현재 프랑스 남부 카다라쉬 지방에 핵융합실험로가 2025년 시운전을 목표로 부품 조립 단계에 돌입했다.
핵융합에너지 개발은 기후위기에 가장 먼저 대응하고 있는 유럽에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영국은 '녹색산업혁명을 위한 10대 중점계획'을 발표하고, 오는 2040년대에 세계 최초로 핵융합발전을 상용화하겠다는 '핵융합로(STEP) 건설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도 한국의 그린 뉴딜에 해당하는 '유럽 그린딜' 프로그램에 ITER 사업을 포함시켰다.
◇핵융합연, 핵융합 후발주자 한국을 ITER 프로젝트 중심국가로 이끌어
핵융합기술 후발주자였던 한국을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 회원국 반열에 올렸을 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선도하는 핵심국가로 만든 데에는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역할이 컸다.
핵융합연은 1996년부터 한국형 핵융합실험로인 'KSTAR' 설계를 시작, 2002년 세계 최초로 완전 초전도 토카막(초전도자석으로 초고온 플라즈마를 가두는 밀폐용기) 방식의 KSTAR 제작을 시작했다.
핵융합연의 KSTAR 제작 과정과 기술력을 지켜본 ITER 원회원국들은 한국에게 ITER 가입을 권유했고, 한국은 2003년 ITER 회원국으로 정식 가입했다.
이후에도 핵융합연은 KSTAR를 가동해 다양한 핵융합기술을 실험·검증하며 끊임없이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선보였다.
2018년 세계 최초로 플라즈마 온도 1억도를 신현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세계 최초로 1억도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20초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핵융합연이 KSTAR에 최초로 사용한 신소재 초전도체가 ITER에 적용되는 등 KSTAR에 사용한 기술들이 다수 ITER에 적용됐다.
핵융합연의 전신인 국가핵융합연구소 소장을 지낸 이경수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2015년 ITER 국제기구 부총장을 역임했고, 현재 ITER 국제기구에도 ITER 건설부문장을 비롯해 다수의 한국인이 요직을 맡고 있을만큼 우리나라는 ITER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핵융합연은 ITER 사업 국내전담기관인 'ITER 한국사업단'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ITER 한국사업단은 대전 핵융합연 본원에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토카막(진공용기) 본체, 전원공급장치, 초전도 도체 등 우리나라가 맡은 부품을 차질없이 제작·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한국전력기술, 현대중공업 등 우리 대기업·공기업들도 국내 중소기업들과 함께 다양한 ITER 부품을 제작·공급하고 있다.
◇핵융합발전 2040년대 시운전·2050년부터 상용화...태양광·풍력과 함께 탄소중립 기여
최근 발표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핵융합 관련 예산은 ▲핵융합발전 41억 원 ▲ITER 사업 659억 원으로 책정됐다.
우리나라는 ITER 회원국으로 가입한 덕분에 ITER 제작·건설비용 71억 유로(약 9조 8000억 원) 중 9.1%만 분담하는 대신 프로젝트 성과물을 100% 활용할 수 있다.
ITER 회원국 7개국은 ITER 제작에 필요한 기술·부품 등을 공동으로 분담해 제작·공급하는 대신 향후 ITER 실험 결과 데이터와 원천기술을 제공받아 자국 내에 핵융합실증로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이다.
핵융합연은 오는 2040년대 국내에 핵융합발전소 시연(DEMO) 버전을 건설해 시운전을 시작하고, 2050년부터 핵융합발전소 상업운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0)나 마이너스(-)로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목표이나 이는 매우 도전적인 목표로, 그 비용 규모는 물론 실현 가능성 자체도 아직 불확실한 만큼, 핵융합발전은 현재의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병행해 투자·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유석재 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은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은 21세기 중반 핵융합에너지 시대를 열기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의 중심에 있다"며 "핵융합에너지는 인류의 풍요로운 미래를 위한 가장 이상적인 에너지 대안인 만큼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철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ch005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