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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매장량 세계 1위 베네수엘라, 차에 넣을 기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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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매장량 세계 1위 베네수엘라, 차에 넣을 기름이 없다?

석유기업 부패·국가 에너지 정책 실기 등 주요 원인
일부 농민, 운송 못한 과일 폐기, 현행범으로 체포

화물차에 넣을 기름이 없어 운송하지 못한 토마토를 무단 폐기한 베네수엘라 농부. 사진=타레크 윌리엄 사브 베네수엘라 법무부 장관 트위터 캡처·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화물차에 넣을 기름이 없어 운송하지 못한 토마토를 무단 폐기한 베네수엘라 농부. 사진=타레크 윌리엄 사브 베네수엘라 법무부 장관 트위터 캡처·연합뉴스
남미 베네수엘라가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은 국가임에도 고질적인 연료난 문제를 겪고 있다. 농민들이 차량에 넣을 기름이 없어 운송하지 못한 농작물을 폐기했던 한 농민이 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22일(현지 시간) 베네수엘라 법무부와 주요 시민사회단체인 ‘에스파시오 푸블리코’에 따르면 휘발유 부족에 항의하는 농부 2명이 최근 잇따라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정부가 연료난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9일 서부 메리다주 푸에블로야노에서는 한 농부가 당근을 내다 버렸다가 공정가격법 위반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화물차에 넣을 기름이 부족해서 유통업자에게 보내지 못한 당근이 썩자 어쩔 수 없이 폐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에는 트루히요주 카라체에 사는 농부 역시 운송하지 못한 토마토를 강물에 대량으로 던져넣은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이 농부가 토마토를 강에 쏟아내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공유되면서, 전역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타레크 윌리엄 사브 법무부 장관은 사회적 논란을 의식한 듯 자신의 트위터에 두 사람의 얼굴 사진과 신원을 공개하며 "공정가격법을 위반한 자들은 재판에 넘겨질 것"이라고 엄벌 의지를 밝혔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법에 따른 처벌’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두 의견이 맞서며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두 농부를 법정에 서게 한 베네수엘라의 연료난은 사실 최근의 일이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확인된 원유 매장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고질적인 휘발유·경유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앞에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은 익숙한 풍경이라고 시민단체는 강조한다.
연료난을 촉발한 가장 큰 원인은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인 PDVSA의 부실 경영과 국가 에너지정책 실패 등을 꼽을 수 있다.

1976년 설립된 PDVSA는 한때 매출액 기준 세계 27대 업체(2009년)에 들 정도로 성장했지만, 대규모 비위 의혹으로 최근 사정의 표적이 됐다.

경찰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용인한 것으로 알려진 강도 높은 수사를 통해 임직원과 관계 공무원을 수조원대의 석유 판매금 횡령 등 혐의로 줄줄이 체포했다. 베네수엘라에서 부정부패 사건으로 공직자들이 수사를 받는 게 이례적으로 알려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네수엘라 제2의 도시인 마라카이보에서는 이번 주에 석유가 호수로 대량 유출돼 환경오염 우려까지 야기하는 등 주민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실기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제 설비 투자 등을 제때 하지 않으면서 한때 최대 일 300만 배럴에 달했던 석유 생산량은 급전직하했다.

이에 대해 마두로 정권은 줄곧 미국 정부의 제재 탓에 자국 석유산업이 쇠퇴했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베네수엘라 시민단체는 3년 전인 2020년 격렬한 시위를 벌일 정도로 극심했던 연료난 사태를 상기시키며 "체포와 검열 패턴을 반복했던 당시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남상인 글로벌이코노믹 선임기자 baunamu@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