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미국이 이 법 시행을 통해 ‘반도체 엑소더스’를 막을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서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법 제정을 계기로 미국과 삼성전자를 비롯한 해외 반도체 기업들이 앞다퉈 미국에서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한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미국의 인텔, 마이크론,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가 모두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도 텍사스에 173억 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증설한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서 2024년 말 신규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그러나 WSJ은 미국 내에서 반도체 지원법이 현재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이 직면한 도전을 해결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1990년 37%에서 최근 10%로 줄었다. 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전 세계 생산량의 75%를 차지한다. WSJ은 현재 미국이 5㎚(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첨단 반도체를 대량으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첨단 반도체는 TSMC가 85%, 삼성전자가 나머지 15%를 점유하고 있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골드만 삭스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시행으로 미국의 글로벌 반도체 점유율이 1% 미만으로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나 반도체 생산 단가가 44%가량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 이외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키려고 인센티브 제공 경쟁을 하고 있다고 이 매체가 강조했다. 골드만 삭스는 작년 말 공개한 보고서에서 “반도체 공급망 내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을 대체하려는 노력보다는 미래의 위기, 주요 공급망 혼란에 미리 헤지하는, 지정학적 전략의 입장에서 반도체 지원법을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 정부의 지원금이 여러 업체에 광범위하게 분산돼 제공될 가능성이 커졌고, 미국이 신설되는 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 반도체 업계가 우려한다고 WSJ이 전했다.
특히 이 법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세액 공제나 보조금을 지원받는 미국과 외국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을 비롯한 우려 국가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추가로 투자하지 못하도록 한 ‘가드레일’ (guardrail, 방어망)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중국에 반도체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면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공장 신설·증설·장비 교체 등 추가 투자에 전면적인 제한을 받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라인 유지를 위한 필수 설비들을 예외로 인정하고, 이 법 시행에 앞서 유예기간을 충분히 보장해달라고 한국 정부를 통해 미국 측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미국 내 첨단패키징 공장 신설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 등에 공장을 두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으나 중국에 대한 추가 투자가 제한될 수 있어 반도체 지원법의 시행 세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