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지난달 고용지표, 즉 새해 첫 고용지표가 시장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국 경제의 향배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이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1월 기준 비농업부문 신규 일자리 수는 51만7000개로 집계돼 전달의 26만명을 크게 웃돌았다. 이에 따라 실업률도 3.4%를 기록, 지난 1969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CNN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이번 발표가 향후 미국 경제에 시사하는 바를 몇가지로 압축했다.
◇충격 빠진 월가 전문가들
우선 미국 정부가 1월 고용지표를 발표하자 충격에 빠진 사람들은 월가의 경제전문가들이다.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경기 침체 조짐으로 1월 실업률이 전달보다 소폭 오를 것으로 대체로 예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전달의 3.5%보다 더 낮아진 3.4%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의 실업률은 1969년 5월 이후 무려 5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임금 상승률 전망도 어긋난 것으로 드러났다. 1월 임금 상승률은 4.4%를 기록해 월가 전문가들이 예상한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전달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기 대비 6.5% 오른 것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최근 6개월 연속 CPI가 하락세를 보인 것을 근거로 임금 상승세가 꺾일 것으로 예상한 전문가들의 판단이 틀린 것으로 판명된 셈이다.
◇점점 어긋나고 있는 경기 침체 전망
경기 침체 도래 가능성을 대체로 점쳐온 전문가들도 이번 발표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자리가 예상을 크게 벗어나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면서 그동안 예상해왔던 경기 침체 전망이 과도했던 것 아니냐는 자성이 일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애널리틱스의 마크 잰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CNN과 인터뷰에서 “이번에 확인된 고용지표는 미국 경제가 이미 침체기에 들어섰다거나 침체 단계에 근접했다고 전망해온 전문가들이 그간의 입장을 폐기해야 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밝혔다.
저스틴 울퍼스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 교수도 “미국 중앙은행이 애초부터 고강도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이 종래의 경제학 법칙에 따르면 경기 침체를 촉발할 위험성을 알면서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면서 “그러나 지난해 미국 경제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전문가들의 전망이 이처럼 크게 어긋난 적도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실물 경기 지표와는 다르게 전문가들이 경기 침체와 관련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 오히려 경기 침체 우려 자체를 키운 측면도 있는 것 같다”면서 “고용지표의 흐름을 전문가들이 결과적으로 잘못 읽은 측면이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울퍼스 교수는 “이같은 오판은 상당수 이코노미스트들이 낙관론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탄탄한 고용지표, 금리 인상발 경기침체 가능성 낮출까
미국의 고용 지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정책 기조에 직접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주요 지표에 속한다.
1월 고용지표가 나오기 전까지 연준의 공식 입장은 당초 목표한대로 물가 상승률이 2% 선까지 충분히 내려가기 전까지는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
특히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잇따라 기준 금리를 인상해온 미국 중앙은행 입장에서 지난달 임금 상승률이 오른 것은 고물가와 고임금의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금리 인상 기조를 지속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반대로 연준의 잇단 금리 인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고용지표가 오히려 탄탄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경기 침체를 촉발할 것이라는 부담감을 덜고 금리 인상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여유가 연준 입장에서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웰스파고 수석부행장 출신의 손성원 미국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경제학 교수는 “한 영역의 부실이 다른 영역의 부실로 이어져 전체 경제가 부진에 빠지는 형태의 침체를 말하는 순차 경기 침체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구인대란 여전히 이어져…구직자 한명당 일자리 두개
미국의 최근 고용지표는 미국 근로자들의 사용자 대비 교섭력이 아직도 건재함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CNN은 전했다.
노동부가 발표한 구인 및 노동 회전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가용 일자리는 1100만개 수준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증가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같은 달 직장을 그만둔 미국인읜 420만명에 그쳤다.
CNN은 “쉽게 말해서 구직자 한명당 두 개의 일자리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이는 결국 사용자 입장에서 사람 구하기가 여전히 어려운 국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 것이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직장을 골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