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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증기선으로 가득찬 美 메인주 무스헤드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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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한 증기선으로 가득찬 美 메인주 무스헤드 호수

프리실라는 무스헤드 호수에 침몰된 여러 증기선 중 하나다. 사진=라이언 로빈스이미지 확대보기
프리실라는 무스헤드 호수에 침몰된 여러 증기선 중 하나다. 사진=라이언 로빈스
무스헤드 호수(Moosehead Lake)는 미국 메인 주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산 정상에 위치한 호수로는 미 동부에서 가장 크다. 롱펠루우 산맥(Longfellow Mountains)에 위치한 무스헤드 호수는 케네벡 강(Kennebec River)의 근원이다. 호수에는 80개가 넘는 섬이 있고 섬 중에서 슈가섬(Sugar Island)이 가장 크다.

호수는 해발 312m 높이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311㎢이다. 호수변의 길이는 640㎞에 달한다. 현재 이 지역에서는 1000개 정도의 별장과 2개의 리조트를 짓는 대규모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무스헤드 호수에서는 대형 증기선이 마지막 운항을 마치고 고철로 팔리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됐다. 외신에 소개된 무스헤드의 ‘침몰한 증기선으로 가득한 메인 호수’ 이야기를 정리한다. <편집자주>

증기선은 한때 무스 헤드 호수에서 여름을 보내는 관광객들에게 매력적인 교통수단이었다. 화려한 시대가 저물자 선주들은 한때 사랑했던 선박을 가차 없이 침몰시켰다.

이 지역을 관광하고 있는 노신사는 "백 년 전에 여기에는 수십 척의 증기선이 순항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노신사의 말은 관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무스 헤드 호수를 가로질러 춤을 추는 바다의 반짝임과 카타 딘 산을 향해 이륙하는 수상 비행기 사이를 더듬고 있었다.

역사적인 증기선 카타 딘(Katahdin)에 탑승한 승객들은 안내 팸플릿을 읽어 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카타 딘 증기선은 여름휴가를 위해 인근 지역의 고급 리조트에서 잘 차려 입은 엘리트 무리를 페리로 데려오는 데 사용되었던 수많은 함대 중 마지막 증기선이었다.

호수는 311㎢에 달한다. 메인 주에서 가장 큰 호수이다. 호수가 넓기는 했지만 증기선이 50척이나 순항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증기선들은 대략 183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북부의 이 호수와 주변의 숲을 오갔다. 그리고 오늘날 햄튼이나 케이프타운을 방문하는 것만큼 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미국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이 수백만 에이커의 삼림 지대에 매료되었다. 1864년 그의 저서 《메인 우즈》에서 소로는 카타 딘 산꼭대기에 서 있던 장면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볼 수 있었다...그리고 무한한 숲과 호수와 시냇물이 햇볕에 반짝이고 있었다."

벌목 산업은 이 지역을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무스헤드 호수의 주변에서는 지금 여름 관광이 피어나고 있는 중이다.

주요 동부해안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계절마다 떼를 지어 호수의 남쪽 해안에 있는 그린빌 정션(Greenville Junction) 마을로 온다. 기차나 코치를 타고 외딴 지역에 도착한 다음 벌목 장비와 우편과 소를 운반하는 데 사용되는 수십 개의 증기선 중 하나에 탑승해 그랜드 호텔로 이동해 오는 것이다.

유명한 500개의 객실 마운트 키네오 하우스처럼.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호텔 중 하나인 이 호텔은 볼링장, 전화, 전기, 세 개의 증기 요트 및 자체 야구팀을 자랑할 만큼 규모가 컸다.
호수 기슭에서 성장했다는 관광객, 라이언 로빈슨이라는 사람은 "나는 많은 사람들이 무스 헤드 호수 지역이 세기의 전환기에 얼마나 많은 관광을 가졌는지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

증기선이 운행 중이던 183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이 호수는 오늘날 햄튼만큼 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사진=무스 헤드 해양 박물관이미지 확대보기
증기선이 운행 중이던 183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이 호수는 오늘날 햄튼만큼 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사진=무스 헤드 해양 박물관

관광이 늘어나는 것은 천연자원과 외딴 곳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증기선은 많은 일들이 일어나게 만드는 중심에 자라하고 있다. 당시 이 지역은 미국 전역으로 알려졌으며 스포츠 잡지와 디렉토리도 게재되었다.

그러나 호수 주변의 주요 도시 사이에 도로가 건설되고 벌목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때, 이 증기선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리조트가 닫히기 시작했고 관광은 감소했다.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무스헤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그린빌 마을(35년 동안 학교 교사로 일했던 곳)에 사는 키스 카터는 증기선 시대의 보트 선장이자 건축가인 스틸먼 소이어(Stillman Sawyer)의 손녀이다.

스틸먼의 아내 버티는 그 당시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일기에 썼다. 1935년 4월 8일, 버티는 이렇게 썼다. "스틸먼은 우편 계약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고 더 이상 배를 타지 않았다. 나는 그것에 대해 슬퍼했다."

스틸먼의 삶과 가족의 삶은 무스헤드 호수에서 보트를 달리는 사업과 관련이 있었다. 그들은 우편계약 사업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록우드로 가는 길이 완성되었으니 사람들은 여객선이나 보급품을 호수 위로 운반하기 위해 여전히 여객선의 서비스가 필요할까? 라는 의문이 일었다.

194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증기선은 실제로 그들의 일에 끝을 만났다. 일부 선박은 부품을 회수했다. 한 척은 실수로 난파되었지만 많은 선박은 무스헤드 호수에서 절단되었다. 소유자는 가치가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공간과 돈을 소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1915년에 승객을 태우기 시작한 스팀보트는 카다 딘이었다. 1975년 미국의 마지막 통나무 운전은 미국 벌목 시대를 폐쇄했다. 무스헤드 호수에서 케네벡 강으로 목재를 운반했다.

2019년 카타 딘에 탑승한 특별한 가족 크루즈에서 98세의 지니 이모는 선장인 록키(Rocky)에게 순항 채널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바위를 조심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리즈 맥케일이라는 사람은 10대의 어느 여름에, 무스헤드 해양박물관에서 자원 봉사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오늘날 그녀는 박물관의 전무이사가 되었다. 2013년에 취직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의 바인더에는 무스헤드 호수의 다이빙 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맥케일은 이미 호수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90년대에 현지 다이버 크리스 휴고(Chris Hugo)가 작성한 수중지도를 본 적이 없으며 5척의 잘린 증기선의 위치를 자세히 설명했다.

로빈스이란 인물은 휴고의 다이빙 문서에 익숙했다. 호수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난파선에 대해 궁금해 했다. 그는 태양이 물에 부딪쳤을 때 가끔 침수된 증기선을 엿볼 수 있는 것 이상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스쿠버 인증을 받아 표면 아래를 탐험할 수 있었다.

증기선 카타 딘은 1915년에 승객을 태우기 시작했다. 사진=라이언 로빈슨이미지 확대보기
증기선 카타 딘은 1915년에 승객을 태우기 시작했다. 사진=라이언 로빈슨

로빈슨은 2015년 모스헤드 레이크 드라이브 클럽을 발견하고 다이빙에 대한 짧은 비디오를 만들었다. 지금 현재 물 밑에는 9척의 온전한 증기선이 침몰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친구가 로빈스에게 맥케일을 소개했고, 두 사람은 침몰한 증기선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영광스러운 시절의 이야기를 보존하기 위한 구술 역사 노력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를 꿈꿨다.

전 증기선 노동자와 호수의 휴가 시대의 꼬리 끝을 기억하는 주민들을 포함한 많은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최근 무스 헤드 호수의 침몰한 증기선을 완성했으며, 현재 영화제에 출품하고 있다.

맥케일은 증기선이야말로 이 지역이 번영하고 활동이 분주했던 때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지역 인구는 오늘날의 거의 두 배였다. 가족은 관광객을 환대하고 목재 산업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여 번창했다고 회고한다.

오늘날 이 지역에는 500개의 객실이 딸린 리조트가 없을 수도 있지만 관광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요즘 사람들은 ‘캠프’에 가는 단순함을 즐기기 위해 오고 있다.

그들은 역사적인 여관 중 하나에 체크인하고 아마도 사슴을 발견하는 여행이나 수상 비행기 타기를 예약하거나 크루즈를 타기 위해 케이트에 탑승할 것이다.

그들은 물 위와 아래에서 이 지역의 풍부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역 주민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마지막 남은 증기선인 카타 딘은 우리가 공동체로서 누구인지를 상기시켜 줄 것이다.


김종대 글로벌철강문화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