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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거문오름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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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거문오름에 오르다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난 화산활동이 빚어낸 크고 작은 360여 개의 제주의 오름(작은 화산체)들이 제주의 대표적인 경관을 이루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서 나고 자라서,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제주 출신 강요배 화가는 “오름에 올라가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들판이나 바닷가, 마을 뒤편에 유순하게 솟아 제주의 자연 풍광을 이룬 오름을 올라야만 제주의 속살을 볼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오름은 제주 사람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요, 기원을 위한 성소이자 놀이공간이기도 했다.

제주 여행 3일째 되던 날, 거문오름을 올랐다.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거문오름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자연이 남긴 보물이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있는 거문오름을 오르기 위해서는 사전 예약이 필수다. 예약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여 입장권을 끊고 출입증을 받은 후 같은 시간대에 탐방하는 사람들과 함께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탐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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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이나 음료를 가져가도 안 되고, 정해진 탐방로를 벗어나서도 안 된다. 무단출입하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처벌도 받는다. 오름 트레킹의 매력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오르내리며 한가로움을 즐기는 데 있는데 모두에게 소중하고 귀한 자연유산이니 이 정도의 불편은 감수하는 게 당연하다.

거문오름은 해발 456m, 둘레 4551m의 오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 용암동굴계’의 모체로 알려져 있다. 분화구에는 깊게 파인 화구가 있으며 그 안에 작은 봉우리가 솟아 있다. 북동쪽 산 사면이 말굽형 분석구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다양한 화산 지형들이 잘 발달해 있다. 거문오름 입구에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탐방로에 들어서자 울울창창,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 우리를 반겼다. 야자 매트가 깔린 경사진 길을 따라 오르다 가파른 나무 데크 계단을 숨 가쁘게 오르니 사방이 탁 트인 정상 전망대에 다다랐다. 거문오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무척 웅장하고 신령스럽기도 하다. 따라비오름, 성불오름, 백약이오름 등 오름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한라산 정상까지 바라볼 수 있다는데 아쉽게도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려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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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울창한 삼림지대로 이루어진 분화구 내부를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5.5㎞의 분화구 코스를 택해 탐방했다. 대부분의 오름은 분화구 둘레 능선에서 분화구를 내려다볼 순 있어도 그 안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은 데 반해 거문오름은 분화구 안쪽까지 탐방로가 잘 정비돼 있어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분화구 내의 생태계와 숯가마 터, 화산탄, 풍혈, 용암 함몰구, 일본군 갱도 진지 등 거문오름의 속살을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다. 거문오름의 특징이자 매력은 곶자왈이다. 숲을 뜻하는 '곶'과 덤불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쳐진 곶자왈엔 남방계·북방계 식물이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막 꽃을 피운 붓순나무 군락지와 식나무 군락지와 함께 굴피나무, 개서어나무, 산뽕나무, 왕초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바닥에는 노란 세복수초와 흰 노루귀, 분홍 노루귀꽃 같은 작은 풀꽃들도 피어서 탐방로엔 봄기운이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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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오름은 숲이 우거져 검게 보여 검은오름, 거문오름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로 거문오름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제주 사람들이 ‘쑥쑥 크는 나무’라는 뜻으로 ‘쑥대낭’이라고 부르는 삼나무 숲을 벗어나면서 비록 탐방은 끝이 났지만, 삼나무 숲에 불던 바람과 바람을 타고 흐르던 숲 내음, 들꽃 향기는 거문오름을 오래 기억하게 할 것만 같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