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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가치 차별과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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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칼럼] 가치 차별과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
까를로 까레또가 쓴 『사막에서의 편지』를 읽으면, 까를로와 이슬람 아이 '압다라만'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압다라만이 울음을 터뜨렸다. "압다라만, 왜 울지?" "당신이 이슬람교도가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 이슬람교도가 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처럼 지옥에 가는 거에요. (…) 나는 당신을 지옥에 보내고 싶지 않아요." 여기서 우리는 압다라만이 지닌 가치 차별과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본다. 도대체 왜 아이에게까지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세상에는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는데, 우리는 흔히 익숙한 것을 안전하게, 익숙하지 않은 것을 불안하게 느낀다. 학교에 입학할 때,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달라질 때, 직장에 처음 들어갈 때, 전학하거나 직장을 옮길 때, 결혼해서 시댁이나 처가가 생길 때, 유학이나 이민 갈 때, 심지어 해외여행 할 때 등… 어쩌면 사람의 삶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 익숙해질 때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그런 여정일는지도 모르겠다.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저서 『호모 데우스: 미래의 역사』에서, "인간사회는 '가치(value)'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위의 여정은 가치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가치는 인간사회에서 행위의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한다. 즉 가치는 행위의 방향을, 윤리‧법‧관습과 같은 규범은 행위의 지침을 제공한다. 때때로 인간은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가치를 달리 매긴다. 한 예로서 익숙한 것에는 '좋아함(like)'을 넘어, '좋음(good)' 혹은 '옳음(right)'의 가치를, 반면에 익숙하지 않은 것에는 '싫어함(dislike)'을 넘어, '나쁨(bad)' 혹은 '그름(right)'의 가치를 매긴다. 여기서 가치 차별이 비롯된다.

이러한 가치 차별은 음식문화에도 버젓이 존재한다. 미국 시민권자인 어떤 한국인은 미국 여성과 결혼해 아이들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종종 김치 때문에 가족 안에서 외로웠다고 한다. 부인과 아이들이 김치를 싫어했기에, 그분은 김치를 사서 부엌 바깥의 마당에 두고, 식구들이 없을 때만 혼자 김치를 먹었으며, 환기를 철저히 하는 등 피곤하게 살았다. 요즘처럼 한국문화의 위상이 높지 않았기에, 김치에 대한 가치 차별의 벽은 높았다. 부부는 여러 이유로 이혼했고, 남편은 한국 여성과 재혼한 다음 눈치 안 보고 김치를 먹었다. 김치가 이혼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겠지만, 음식과 관련된 가치 차별이 이혼의 원인인 것은 틀림없다. 나머지 가족들은 김치에 대해 '싫어함'을 넘어, '나쁨' 혹은 '그름'으로 가치 차별을 했다.

이런 가치 차별로 인해 세상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끊임없이 생기게 된다. 인종차별, 성차별, 혐오 등의 근원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에 대해, 싫어함을 넘어, 나쁘거나 그르다는 가치를 둔다면, 합리적 이유도 없이 혐오하고 차별하게 되며, 이런 행위가 집단으로 이루어지면 상상할 수 없이 큰 사건이 발생한다. 특히 이것이 종교와 결합하면, 1995년 보스니아에서 발생한 무슬림 학살사건처럼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한다. 한마디로 가치 차별은 인간 또는 인간사회가 넘기 어려운 한계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행복을 위해 극복해야 할 한계다.

최선의 방안은 차별적인 가치를 갖지 않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겠는가? 『사막에서의 편지』에서 압다라만도, "우리는 같은 신을 믿고, 같은 천국에 가는 거야"라고 설득해도 설득되지 않았다. 따라서 감기의 대증요법과 같은 차선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차선책은 간단명료하다. 단지 극단적인 적대적 태도로 몰아가지 않는 것이다. 언감생심, 우호적 태도는 바라지 않더라도, 적어도 적대적 태도 만큼은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예기치 않은 사건 발생이나 연쇄적 발생을 예방하는 지혜로운 길 아니겠는가?


김석신 가톨릭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