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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가을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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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가을 예감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뜨겁던 여름이 끝나간다. 한낮에 내리쬐는 햇볕이 제아무리 뜨거워도 아침저녁으로는 이미 서늘해진 공기를 느낄 수도 있다. 이번 여름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에 갇혀 숨 한 번 크게 쉬어보지 못하는 폭염의 나날 속에 기습적으로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곳곳에서 속수무책으로 산사태와 물난리를 겪어야 했던 기이하고도 격렬한 여름이었다. 이제 말복도 지났고,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가 코앞이니 그 별난 여름도 끝이 멀지 않은 것이다.

일찍이 헤르만 헤세는 “인간만이 자연의 순환에서 벗어난 것처럼 살아간다”고 일갈한 바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일수록 편의성, 경제적인 이유로 자연과 어긋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가 살이에 부대끼느라 미처 주위를 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게 사는 동안에도 계절은 조금씩 조금씩 가을 쪽으로 기울고 있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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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 먹구름에 가려져 있던 먼 산이 너무도 명료한 자태를 드러내고, 쪽빛 하늘을 배경으로 전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엷은 새털구름은 은빛 햇살을 받아 더욱 눈부시게 빛난다. 아침이면 들판은 다시 촉촉한 기운을 띠고, 천변의 노란 달맞이꽃도 함초롬히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다. 조금만 눈여겨보면 꽃과 나무, 풀 모두가 가을을 예감하는 기운을 머금고 있을 뿐 아직 본격적인 현란하고도 강렬한 환희에 찬 색들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아름다운 색채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명료한 아름다운 빛을 간직한 이맘때의 숲을 보는 것은 소소하지만 각별한 즐거움이다.

“아름다움을 보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늙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 프란츠 카프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동네의 소공원이나 가로변의 화단이나 가까운 숲을 찾아 꽃과 나무와 풀들을 보는 일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뉴스를 보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 부정적인 뉴스를 많이 보면 마음속에 쓸데없는 두려움과 절망감만 커지게 마련이다. 염려(念慮)의 사전적 의미는 ‘앞일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걱정함. 또는 그런 걱정.’을 이르는 것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몸과 마음이 따로 떨어져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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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는 일은 단순히 꽃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한곳에 머물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화려한 꽃의 색과 향기에 취하다 보면 마음을 무겁게 하던 근심 걱정도 사라지고 이대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들과 더불어 살고 싶은 마음마저 들기도 한다. 지금 천변에 나가 산책을 하면 일 년 중 가장 찬란하게 피어 있는 꽃들을 볼 수가 있다. 담벼락을 타고 올라 여름내 꽃등을 밝히던 능소화, 붉고 흰 배롱나무꽃과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무궁화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가을 향기를 느끼게 하는 쑥부쟁이와 벌개미취도 매력적인 보라색을 뽐내고 주홍빛의 유홍초와 분홍 메꽃, 다양한 색깔의 백일홍과 부용화, 진보라의 나팔꽃까지 다채로운 색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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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정원을 가꾸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헤르만 헤세는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란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하루 중 단 한 번이라도 하늘을 쳐다보지 않거나 활기에 가득 찬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만약 슬픔에 잠겨 당신이 가진 것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이따금 좋은 구절을, 한 편의 시를 읽어보라. 아름다운 음악을 기억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의 삶에서 느꼈던 가장 순수하고 좋았던 순간을 기억해보라. 만약 그 것이 당신에게 진지해진다면 그 시간은 더 밝아지고, 미래는 더 위안이 되며 삶은 더 사랑할 가치가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

지금은 모든 자연이 격렬하고 자극적인 색채를 띠는 여름의 끝자락, 가을이 멀지 않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