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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서울창포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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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서울창포원에서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신록을 지나 초록으로 치닫는 오월, 숲해설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창포원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도봉산역과 잇닿아 있는 창포원은 붓꽃이 피어나는 오월에 가장 아름다운 생태공원이다. 붓꽃원·습지원·늘푸름원 등 12개의 테마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중에도 가장 유명한 것은 붓꽃이다. 붓꽃은 우리에게 아이리스(iris)라는 이름으로도 친숙하다.

세계적으로 희귀하다는 붓꽃이 서울창포원에 130여 종 30만 본이나 식재돼 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돌면 약 5,000평 규모의 붓꽃원이 드러난다. 붓꽃원 중앙으로 유려한 곡선의 연못이 펼쳐져 있다. 붓꽃은 꽃 한 송이는 청초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한 걸음 물러나 군락을 한눈에 담으면 보라색 비단을 펼쳐놓은 듯 화려하기 그지없다. 특히나 활짝 핀 붓꽃 뒤로 우뚝 솟은 도봉산 선인봉은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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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처럼 숲해설을 하기 위해서는 현장답사는 필수다. 창포원은 틈날 때마다 자주 왔던 곳인데도 숲해설을 염두에 두고 바라보니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저마다 새롭게 보인다. 숲해설가는 단순한 숲에 관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을 숲으로 안내하고 자연스럽게 숲과 이어주는 역할이다. 학습 강의가 아닌 해설은 지식의 나열보다 함축된 느낌을 받아 좋은 에너지를 얻게끔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숲과 멀어진 사람들에게 숲을 안내하고 숲과 친해지게 함으로써 숲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숲과 하나 되게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붓꽃정원엔 타래붓꽃이 한창이다. 지난주에 왔을 때만 해도 드물게 눈에 띄던 노랑꽃창포와 보랏빛 창포꽃도 눈에 띈다. 붓꽃은 꽃봉오리가 붓 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지만 영어명인 아이리스(iris)는 그리스 신화 속 무지개 여신이다. 여신 헤라의 예의가 바른 시녀였는데 제우스가 집요하게 사랑을 요구하자 자신의 주인을 배반할 수 없어 무지개로 변하여 헤라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붓꽃은 이슬비가 내릴 때나, 아침 이슬을 머금고 함초롬히 피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붓꽃의 꽃말은 비 온 뒤에 뜨는 무지개처럼 '기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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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꽃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색을 지닌 독일붓꽃을 보면 빈센트 반 고흐가 생각난다. 꽃 그림 중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그의 '붓꽃'은 1987년 11월 소더비경매장에서 5,390만 달러(약 635억 원)에 팔려 최고가를 기록했다. 생전에는 팔린 그림으로는 '붉은 포도나무들'이 유일했던 그의 그림은 닭장의 문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그가 죽은 뒤 생활고에 찌들었던 그이 운명을 비웃기라도 하듯 세계 그림 경매시장에서 사상 최고가를 잇따라 경신한 것이다.

붓꽃정원을 끼고 연못 위의 수련을 완상하고 나무 그늘로 들어서며 나무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느릅나무, 팽나무, 산수유, 자작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등 수많은 나무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무들은 저마다 간직한 이야기를 이파리처럼 달고 서서 푸르게 빛나고 있다. 굳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이 초록 그늘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헤르만 헤세가 '나무들'에 다음과 같이 썼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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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다. 나무들이 크고 작은 숲에서 종족이나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면 나는 경배심이 든다. 그들이 홀로 서 있으면 더 큰 경배심이 생긴다. 그들은 고독한 사람들 같다. 어떤 약점 때문에 슬그머니 도망친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스스로를 고립시킨 위대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