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식품칼럼] 요구르트로 건강 지키는 불가리아의 장수노인들

공유
2

[식품칼럼] 요구르트로 건강 지키는 불가리아의 장수노인들

이원종 강릉원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이원종 강릉원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불가리아는 남한만한 크기에 인구 800만의 작은 나라이다. 1988년 불가리아의 장수전문가인 하지리스티브 박사는 불가리아 남부에 위치한 로도피산맥에 살고 있는 100세 이상 노인 54명과 90대 노인 361명 등 415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했다. 100세 이상 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스몰리얀 (61.4%), 마단스키 (25.8%), 데빈스키 (16.3%) 등으로 주로 로도피산맥의 산악지역에 많이 산다고 보고했다. 81%가 농업에 종사하고 11%는 목축업에 종사하여 97% 이상이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기르고 있으며, 노인들은 주로 산악지역에 살다보니 활동량이 많다고 보고했다. 장수인들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 100세 이상 노인의 8% 정도만이 술을 소량 마시는 것으로 보고했다. 그는 스몰리얀 지역의 장수 요인으로 개인위생, 규칙적인 식사에 기초를 둔 적당한 음식, 적절한 수면, 성생활, 일, 여가, 휴식과 운동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보고했다.

스몰리얀의 여기저기 산속에는 100세가 넘은 노인이 아직도 많이 살고 있다. 몬취로브치에서 북쪽으로 20여㎞ 떨어진 쥬르코브(Djurkovo)라는 곳에 108세의 할머니가 살고 있다고 하여 할머니를 찾아 나섰다. 108세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으나 할머니는 잠시 산책을 나갔다고 한다. 할머니의 이름은 규르카(Gyulka). 할머니의 남편은 40세에 세상을 떠났고, 아들 세 명과 딸 두 명을 두었으나 아들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큰 딸은 78세로 따로 살고 있으며, 지금은 막내딸인 데밀리얀(74)과 함께 살고 있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음식은 감자와 요구르트라고 한다. 그 외에도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를 가리지 않고 먹는다고 한다. 담배는 피워본 적이 없으며 와인도 마셔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아무 음식이나 잘 먹었지만 요즘에는 치아가 없어 단 음식과 부드러운 수프를 좋아한다고 한다. 소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산간 마을에는 먹을 것이 풍부해 보이지 않는다. 집 앞의 조그마한 텃밭에 채소가 자라고 마을에 가끔 산양이 보일 뿐이다. 할머니가 가리지 않고 아무 것이나 잘 먹는다고 하나 이곳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이다. 할머니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감자와 요구르트 등 몇 가지 음식뿐이라고 한다. 감자와 요구르트가 할머니의 건강을 지켜준 장수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불가리아는 요구르트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노벨상을 받은 러시아의 세균학자 메치니코프가 이미 1908년에 ‘인간의 장수’라는 논문에서 그가 불가리아를 방문하고 나서 요구르트가 불가리아 사람들의 장수의 원인이라고 보고했다. 불가리아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요구르트를 많이 마신다. 불가리아에서는 요구르트를 ‘키셀로 물라코(Kiselo mlyako)’라고 한다. 물라코는 우유, 키셀로는 신맛이라는 뜻으로 ‘키셀로 물라코’는 ‘신 우유’라는 뜻이다. ‘키셀로 물라코’는 신맛이 강한 불가리아의 전통 요구르트이다.

불가리아에서는 요구르트만 먹는 것이 아니라 요구르트를 이용한 음식이 다양하다. ‘아이라안 (Arjan)’은 걸쭉한 요구르트에 물을 타서 먹는 음료이다. 불가리아 사람들이 별미로 많이 먹는 수프는 ‘타라토르(Tarator)’라는 수프이다. 이는 요구르트 수프로 요구르트에 오이, 토마토, 향채, 식물성 기름을 넣어 만든다. 우선 오이의 껍질을 벗겨 소금을 뿌려둔다. 요구르트에 식물성 기름을 넣고 저어 준 다음 오이와 토마토, 향채 다진 것을 넣고 마늘도 조금 다져 넣는다. ‘물라추나’ 샐러드는 오이 샐러드에 요구르트를 뿌리고 마늘과 같은 향신료를 약간 가미하여 만든 요구르트 오이 샐러드이다.

‘쓰르미’는 쌀이나 다진 고기를 양념을 해서 포도잎으로 싸서 찌거나 오븐에서 구운 것인데 이것에 요구르트 소스를 끼얹어 장식을 했다. 포도잎 대신에 장미잎이나 양배추잎을 이용할 수도 있다. 밥을 잎으로 싸서 요구르트를 뿌려 먹는 음식이다. 쌀밥이 들어 있어 우리 입맛에도 맞는다. ‘바니차 (Banitsa)’는 종이처럼 얇게 민 반죽 사이에 요구르트, 계란, 치즈를 넣어 구워 낸 전통음식으로 어느 가정에서나 많이 먹는 빵이다.

스몰리얀은 지역적으로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산간지역이어서 지역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먹어왔다. 가축을 많이 키우기 때문에 가축으로부터 나오는 우유나 요구르트, 치즈 등 유제품을 많이 먹는다. 그러나 스몰리안의 노인들은 유제품만 많이 먹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나오는 채소도 많이 먹는다.

하지리스티브 박사는 스몰리얀 지역의 노인들은 다양한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노인들은 주로 스몰리얀 지역에서 생산된 음식만을 먹는다. 사과, 야생과일, 베리 등의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는다. 콩과 감자가 주식이다. 유제품과 고기, 계란을 먹는다. 100세 이상 노인들 중 52%는 골고루 먹고 있으며 46%는 유제품을 많이 먹고 있으며 채식만 하는 사람은 1.9%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스몰리안의 100세 이상 노인들의 약 36%는 과일을 아주 많이 먹으며, 60%는 적당량 먹는다고 대답하여 96% 이상이 과일을 즐겨 먹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몰리얀에는 사과, 체리, 배, 복숭아, 자두, 살구, 산딸기, 산수유 등 각종 과일나무가 많았다. 노인들의 66%가 적당량의 계란을 먹으며, 26%가 많이 먹는다고 대답하여 92%가 계란을 먹는다. 장수노인들은 모두 고기를 먹으나 자주 먹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먹지 않는다고 보고했다.
스몰리얀 사람들은 깊은 산속에서 살다보니 산속에서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만 했다. 양을 치는 목동 노릇을 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매일 자신의 밭에 나가 일을 한다.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나무 장작을 패서 겨울철용 땔감을 마련한다. 산 속에 살다보니 큰 근심거리는 없었다. 양이나 염소를 치다보니 우유와 우유로 만든 요구르트와 치즈를 많이 먹을 수밖에 없었다. 요구르트를 많이 먹지만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식사를 즐겁게 하며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는다. 노인들 중에는 살찐 사람들이 거의 없다. 욕심을 내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란 좋은 먹거리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장수의 한 요인으로 보인다.
이원종 강릉원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