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일부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는 미 정부의 보조금 지급 신청을 포기하고 북미지역에서 추진하던 사업을 종료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당장 31일부터 시작되는 보조금 신청 역시 상당수의 기업들이 유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부지침을 살펴보면 먼저 생산라인과 관련해서는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웨이퍼별 수율 △가동률 △연도별 생산량 △판매단가 등이 제출서류에 포함됐다.
소재와 관련해서는 △사용되는 소재·소모품·화학품 △소재별 비용 등이 포함됐으며, 공장운영과 관련해서는 △인건비 △공공요금 △연구개발비 △유형별 고용인원 등도 제출해야 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미 상무부가 반도체지원법 세부지침에 반발하는 모습이다. 미 정부가 보조금을 미끼로 반도체기업들의 영업기밀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올 정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도 "상무부가 선을 넘은 것 아니냐"며 과도한 요구에 대해 성토하는 분위기다.
먼저 수율의 경우 반도체 기업들의 핵심지표로 전 세계 어떤 반도체기업들도 공식적인 수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과 소재, 소모품 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미 상무부에 제출한 영업기밀이 글로벌 경쟁사에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미 상무부는 "(반도체보조금을 받기 위한) 세부지침은 말 그대로 지침일 뿐, 신청기업들이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실제 미 상무부는 지난 2021년 자동차 반도체 대란 당시 대만 TSMC를 비롯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재고량과 고객사 정보 등 26개 항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했지만, 기업들은 기밀에 해당된다며 관련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바 있다.
게다가 미 정부는 이번 반도체지원법 세부지침과 더불어 다음달 중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 조치와 관련한 새로운 규정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장비 수출제한 조치는 지난해 10월 발동한 행정명령으로, 적성우려국가에 첨단 반도체 장비의 수출을 제한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 상무부가 과도한 영업기밀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장 무조건적인 자료제출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면서 "향후 보조금 신청 및 심사과정에서 기업들의 내부기준에 맞춰 제출서류의 수위를 협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