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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조태용 실장과 이재용·최태원 회장의 3자대화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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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조태용 실장과 이재용·최태원 회장의 3자대화 급하다

조태용 실장(왼쪽), 이재용 회장(가운데), 최태원 회장(오른쪽).
조태용 실장(왼쪽), 이재용 회장(가운데), 최태원 회장(오른쪽).
최근 미·중 간에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일본까지 미국에 이어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유치에 본격 착수하는 등 첨단기술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요동치고 있어 중국 내 반도체 공장들의 향후 전략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와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등 첨단기술 전반에 관한 윤석열 정부와 주요 첨단 기업 간 전략대화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지난 5월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주요 선진 7개국) 정상회의가 공동 성명을 통해 미국이 추진해 오고 있는 대중 첨단기술 봉쇄를 위한 동맹 전략인 ‘재세계화’와 중·러에 의한 지정학적 군사 도발을 견제하기 위한 ‘이중 봉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폐회하자 중국은 폐회 당일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지난해 중국에서 4조원 매출을 기록한 미 마이크론의 반도체 제품에 대한 조사 착수 7일 만에 “안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중국 내 판매를 전격 금지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마이크론 제품에서 비교적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존재해 중국의 핵심 정보 인프라 공급망에 중대한 안보 위험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중국의 사상 첫 제재로서 중국의 화웨이·ZTE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이루어진 지 4년 만에 중국이 반격에 나선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이 같은 반격은 한국에도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는 의미가 있는 만큼 주목해야 한다. 한국이 지난 4월 26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재세계화 참여를 약속한 만큼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반도체 공장들과 한국에서 생산된 반도체 제품도 재세계화 참여 수준에 따라 언제든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중국이 마이크론 제품의 부적격 판정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앞서 기시다 일본 총리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개회를 하루 앞둔 5월 18일 도쿄 관저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미국의 IBM·인텔·마이크론 테크놀로지·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MAT), 종합반도체 연구소인 벨기에 IMEC(아이멕)의 대표 등 7개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 대표들을 만나 대일 투자를 요청했다. 이날 면담에서 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몇 년간 일본에 최대 5000억 엔(약 5조원)을 투자해 히로시마 공장에서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도입해 2026년부터 차세대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이 이 같은 대규모 대일 투자를 공개한 지 3일 만에 중국의 제재를 받자 마치 이번 G7 정상회의를 개최해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과 안보 봉쇄 전략에 대한 정상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주도한 일본에 대한 미움까지 대신 뒤집어쓴 것이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고 일본의 반도체 투자 유치 노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 부문의 주요 기업들은 윤석열 정부와 전략대화를 갖고 급변하는 글로벌 첨단기술 정세를 주도면밀하게 읽고 대처하는 노력이 요청된다.

이번 G7 정상회의가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를 전폭 지지한 것에 맞서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로 반격했다는 것은 지난 5월 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외사판공실 주임 간 전략대화를 계기로 잠시 주춤하던 양국 간 긴장이 다시금 고조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이 바이든 행정부가 첨단기술 패권이 중국과의 2차 냉전 승패를 결정짓는 최대 전선이라는 인식에 따라 미국 내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동맹들과의 첨단기술 협력을 강화해 중국과의 첨단기술 경쟁에서 앞설 때 자유주의 진영이 2차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의제를 G7 정상회의에서 확산시킨 결과다. 왕이에게 미·중은 경쟁 관계에 있으나 그것이 갈등이나 충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 당사자인 설리번이 가장 앞장서 그 같은 담론을 주도하는 설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첨단기술들과 주요 자원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하기 위한 동맹 구축 또는 통합 전략인 재세계화가 바이든 행정부의 최고의 패권 전략으로 확고해졌음을 뜻한다. 미국은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에서 강국인 동맹들과의 통합을 심화해 나갈 것이고, 동맹들로서는 갈수록 대중 첨단기술 협력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점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운영해오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공장들의 운명은 바이든 행정부가 재세계화 전략을 어느 수위에서 추진해 나가느냐에 따라 크게 바뀔 개연성이 적지 않다.

현재까지 미국이 한국의 중국 반도체 공장들에 요구하고 있는 규제는 첨단 공정을 위한 고가의 첨단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게 하는 데 머물러 있다. 미국이 이 같은 규제를 통해 노리는 목표는 이들 중국 공장에서 첨단 공정의 칩이 생산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첨단 공정 칩 제조 기술이 중국에 이전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의 이들 중국 공장이 주력하는 성숙 공정 메모리 칩 생산은 규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성숙 공정 메모리 칩의 50% 이상을 소비하고 있으며 PC, 노트북, 스마트폰(특히 애플폰)에 사용되는 성숙 공정 메모리 칩의 80% 이상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한국의 이들 중국 공장이 성숙 공정 칩 생산을 중단하면 전 세계 메모리 칩 품귀 현상이 초래되고 이 정도의 성숙 공정 칩 기술은 중국도 갖고 있어 미국은 규제하지 않는다.

중국은 현재 10~20% 정도인 성숙 공정 메모리 칩 자급률을 앞으로 3년 뒤에는 80% 이상으로 높인 뒤 전체 메모리 칩 시장의 25~30%로 평가되는 첨단 공정 시장에 도전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첨단 공정 칩 생산은 미국의 규제로 인해 장비 도입이 원천 봉쇄돼 당분간 어려운 만큼 성숙 공정 칩 시장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뒤 이를 지렛대로 미국과 협상해 첨단 공정 칩 시장을 노린다는 것이 중국의 전략인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이 같은 전략에 따라 성숙 공정 칩 시장의 헤게모니를 잡은 뒤 성숙 공정 칩 시장을 볼모로 삼아 미국에 첨단 공정 칩 시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하는 데 필요한 첨단 공정용 첨단 장비의 도입에 대한 허용을 이끌어내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이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이 성숙 공정 메모리 칩 시장의 헤게모니를 확보해 첨단 공정 칩 시장을 노리는 것을 저지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 같은 가능성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의 우시와 다롄 공장에 큰 변곡점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더구나 이들 중국 공장은 현재 생산 중인 상대적으로 노후된 칩에서 첨단 공정 칩 생산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서 128단 낸드플래시를, SK는 우시 공장과 다롄 공장에서 각각 10나노 중후반대 D램과 96·144단 낸드플래시를 만들고 있다. 최첨단인 230단 낸드플래시와 10나노 초반대의 D램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노후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낸드플래시는 단수가 클수록, D램은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성능이 좋다.

만약 이들 공장이 미국의 규제로 인해 첨단 공정으로 전환하지 못할 경우 삼성과 SK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반도체가 내년부터 20%가량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예상이다. 더구나 그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향후 수년 안에 줄어든 중국 생산 물량을 대체할 대규모 신규 생산시설을 지어야 하는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4·26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상무부 등 관련 부처들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재세계화의 성공을 위한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을 중심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경영진과 이들 두 기업의 중국 공장 운영 방향은 물론 향후 메모리와 로직(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전략과 관련한 전략대화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재세계화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하는 반도체 산업 전략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을 만나 이들 회사의 중국 공장들의 생산 전략과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 사업 전략을 협의해야 한다. 이창양 산업자원부 장관이 함께하는 것도 필요하다.

조태용-이재용-최태원 3자 전략회의가 요청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차세대 핵심·신흥 기술 대화의 성공을 위해 정부와 대기업 간 협력 방안이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더군다나 이 대화의 책임자가 조태용 실장이다. 만약 가까운 시일 내에 조태용 실장의 대화 요청이 없다면 이 회장이나 최 회장이 먼저 대화를 갖자고 제안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은 첨단기술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한 미·중 2차 냉전의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서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 점에서 윤석열 정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의 지속적인 전략대화를 갖고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도록 관여해 나가야 한다. 역사상 반도체 이상으로 한국의 미래 운명에 큰 영향력을 가진 산업이나 기술은 없었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