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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日에 반도체·군사적 반격 능력 지원…韓, 日에 추월 장벽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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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日에 반도체·군사적 반격 능력 지원…韓, 日에 추월 장벽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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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은 반도체 우위 등에 힘입어 곧 일본을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돼 왔다. 하지만 새해 들어 윤석열 정부가 기시다 정권과 달리 미국의 대중 전략에 따른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에 실패하면서 이 전망의 운명은 알 수 없게 됐다. 반도체 등에서 다시 일본에 추월당할 수 있고 군사적 위협까지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이 같은 우려의 진앙지는 지난 1월11일과 13일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일 외교+국방 장관회담과 정상회담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까닭은 이들 두 회담과 관련한 윤석열 정부의 신속한 대응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언론과 학계 등 국내 담론 시장도 관련 담론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지는 앞의 두 미·일 회담의 결과와 한국의 대응 부재를 통해 확인되는 세 가지 결과를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미국의 대중 대전략과 이를 위한 봉쇄와 동맹 전략은 무엇이고 일본이 이들 전략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얻는 이득과 기회는 무엇이며 그리고 한국이 미·일 합의에서 소외된 결과 직면할 위기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미 봉쇄전략' 결정적 기여
재세계화 구심적 역할 기대

첫 번째는 1면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추구하고 있는 봉쇄 전략은 권위주의 강국들인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봉쇄하는 ‘이중 봉쇄’이고 이의 성공을 위해 채택한 동맹 전략은 일본을 대러 봉쇄에도 동원하고 나토 동맹국들을 대중 봉쇄에도 참여시키는 ‘교차 관여’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앞서의 두 미·일 최고위급 회담을 통해 미국의 대중 대전략인데 이는 반도체와 인공지능, 양자 컴퓨팅 등 첨단 분야의 최첨단 기술들이 중국으로 이전되는 것을 철저하게 막는 ‘기술 봉쇄’로서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위해 주요 동맹국들과의 비공식 경제 동맹의 구축을 통한 ‘재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경제적 강압과 비시장 정책들과 관행들 같은 위협들에 맞서 생각이 맞는 파트너들 간에 반도체 등 결정적이고 부상하는 기술들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공급망을 구축한다”고 합의한 데서 확인된다. 주요 동맹들과의 비공식 경제 동맹을 통한 재세계화로 대중 첨단 기술 봉쇄에 나섰음이 천명된 것이다.

두 번째는 일본이 미국의 재세계화를 위한 핵심 동맹으로 부상한 결과 얻는 기회들인데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반도체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됨에 따라 반도체 강국 등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일본에 반격 능력 제고를 허용함에 따라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국가’에 성큼 다가섰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일 첨단 반도체 기술 지원은 이미 시작됐다. 1월6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산업부 장관 회담에서 양국은 차세대 반도체 개발과 함께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분야 협력도 확대한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총력 지원하는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는 미국의 IBM과 협력해 2나노 반도체 칩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강국 등 꿈 현실화
전쟁할 수 있는 국가 성큼

일본의 반도체 산업 부흥 사명을 띠고 도요타와 소니 등 대기업들이 출자해 만든 라피더스는 지난해 2나노 칩 개발에 성공한 미 IBM의 지원을 받아 2027년부터 일본에서 2나노 칩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미국이 재세계화에 대한 일본의 적극 참여를 첨단 반도체 기술 지원으로 보답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의 반격 능력 제고를 위한 미국의 지원도 시작됐다. 예정됐던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보류시킨 것이다. 이는 대중 군사적 봉쇄를 위한 일본의 지원에 대한 보답이다. 일본은 1월11일 2+2 회담에서 국방비를 GDP 대비 1%에서 2%로 올리고 미·일 군사력 통합 운영을 위한 영구 공동 본부 설립과 항구들의 유연한 사용 등을 약속했다.

세 번째는 한국이 미국의 대중 봉쇄망 참여에서 일본에 뒤처짐으로 인해 직면할 위기인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이 대일 첨단 기술 지원에 집중함에 따라 한국의 첨단 기술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보다 늦은 만큼 재세계화에 대한 선도적 참여를 지렛대로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본지는 지난 1월11일자 신문 1면 커버스토리를 통해 윤석열 정부를 향해 미국의 재세계화에 대한 선도적 참여를 내걸고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날 열린 미․일 외교+국방 장관회담에 참여한 일본 대표단은 마치 본지의 촉구를 견제라도 하는 듯한 기세로 재세계화에 대한 선도적 참여를 약속했다.

우리가 한발 늦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은 우리처럼 글로벌이코노믹이라는 언론 매체가 아닌 국가 전략을 떠맡고 있는 기시다 정권 중심으로 바이든 미 행정부가 재세계화를 통한 대중 기술 봉쇄를 대중 대전략으로 추진하기로 한 것을 더 먼저 인식하고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물론 주류 언론과 학계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 첨단 기술력 약화 가능
전술핵 배치 요구 어려워져

문제는 윤 정부와 담론 시장이 선제적 대응엔 실패했더라도 어떻게 이런 상황 자체조차 인지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1면에선 두 미·일 회담 내용이 중국을 자극 않기 위해 모호하게 발표된 데다 미국의 대중 전략 연구가 게을렀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한국 사회 전반의 역내 및 글로벌 의제 수준이 너무 낮다는 데 있다.

왜 그런 것인가. 한국 보수와 진보 모두 2050년을 목표로 한국을 미·중과 더불어 경제와 군사 부문을 중심으로 글로벌 3대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의제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북한의 핵 위협에 절절매고 일본과는 강제 징용 배상 문제와 독도 문제로 갈등만 반복하고 중국에 대해서는 수출 증대만 궁리하는 수준을 못 벗어난다.
미 앤소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에서 세 번째)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지난 1월11일 일본 오시마사 하야시 외상(왼쪽에서 두 번째)과 야스카즈 하마다 방위상과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2023년 미일 안보협력회의를 가진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 앤소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에서 세 번째)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지난 1월11일 일본 오시마사 하야시 외상(왼쪽에서 두 번째)과 야스카즈 하마다 방위상과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2023년 미일 안보협력회의를 가진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로이터


한국 보수가 앞의 의제와 같은 국가 대전략을 갖고 있다면 현 미·중 패권 경쟁 구도를 면밀하게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한국이 2050년을 목표로 경제와 군사 부문에서 글로벌 3대 강국으로의 도약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현 미·중 패권 경쟁의 결과를 미리 읽어내고 그에 부합한 대전략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랬다면 한국은 미국을 믿고 일본에 앞서 재세계화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과 주요 동맹국들의 파워가 세계총생산의 절반이 넘는 반면 중․러는 2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2030년대 들어서 급격한 노동력 감소, 막대한 차관 환수 실패, 리더십 위기 등 3대 위기로 쇠퇴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정부는 ‘미국과의 전략동맹 관계 구축을 통한 2050년 3대 강국 도약’ 같은 대전략이 없다. 그 결과 미․중 양쪽 다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윤대통령은 최근 해외 일정 중에 중국 방문을 예고했다. 전술핵 재배치와 재세계화 등 바이든과 전략 대화를 가져야 할 의제가 넘치는 데 베이징부터 가겠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어느 나라든 간에 대전략이 없으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역내외 지정학적 변화들과 관련된 모든 지점의 진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19세기 프러시아 전략가 클라우제비츠가 고전 ‘전쟁론’에서 “모든 지점에서 진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직관의 힘을 소유해야 하는데 그것은 전략을 상상에 연계할 때 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점에서 윤 정부가 앞의 두 미·일 회담이 끝난 지 한참 됐는데도 미국의 대중 대전략과 동맹 전략이 합의된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도 미국과의 전략동맹 구축을 통한 글로벌 3대 강국 도약 같은 대전략의 부재로 인한 것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과 외교부가 두 회담 발표문을 봤을 텐데도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결과 국가안보실과 외교부는 윤대통령을 기업들의 수출과 해외자본의 유치에 앞장서는 ‘영업 사원’으로 만들어가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이는 참모들이 대통령이 대전략을 지정학적 변화들에 대한 상상에 연계하여 얻어지는 직관의 힘으로 모든 지점의 진실을 알아차림으로써 국가의 생존을 책임지는 총괄 전략가임을 모르는 데서 말미암는다.

일본이 이번에 미국과 앞의 두 최고위급 회담을 갖고 이중 봉쇄, 교차 관여, 재세계화 등 미국의 대중 전략을 적극 지원하기로 한 데는 그 대가로서 미국의 기술 지원으로 반도체 강국으로 재기해 미국이 언젠가 동아시아·서태평양에서 철수할 때 그 자리를 물려받아 역내 패권을 잡겠다는 오랜 대전략이 큰 영향을 미쳤다.

韓, 3대 강국 도약 의제 부재
윤 정부, 사태 심각성 느껴야

이는 기시다가 21세기 대동아 공영권 구상으로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했던 아베의 유산을 이어받았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바이든에게 일본만이 중국의 패권 도전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필사적으로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바이든이 기시다의 어깨를 다독이며 ‘우리가 어쩜 이렇게 다른 점이 없느냐’며 기뻐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법이다. 윤 정부는 다음 두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신속한 대미 설득에 나서야 한다. 하나는 대중 기술 봉쇄와 군사적 봉쇄 모두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더 전략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최종 목표가 중·러에 못지않게 동아시아를 권위주의화할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상이 1월23일 일본 의회에서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망언을 한 데서 확인된다. 앞의 미·일 외교·국방 장관회담에서 서태평양에서의 중국의 불법적인 영토 점유를 비판한 그가 엄연한 한국 영토인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불법적인 주장을 한 것부터가 일본이 미국의 대중 봉쇄에 적합한 파트너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은 이번에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국과 합의한 전략 내에서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는 기시다가 미국과 합의한 이중 봉쇄와 교차 관여에 따라 대러 봉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2월24일 뉴욕 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첨단 기술이 곧 패권인 시대다. 패권국과의 친소(親疎)에 따라 당대의 첨단 기술과 한정된 자원에 대한 접근 정도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한국이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일본에 다시 역전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건 윤대통령이 총괄 전략가로서 미국의 대중 전략들을 기시다보다 잘 뒷받침할 수 있는 전략을 갖고 워싱턴에 가는 것이다.


이교관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