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S 보고서의 의미와 한계: 전술핵 재배치 너무 늦어서는 안 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온 미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이 마침내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 하나를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3대 싱크탱크 중 하나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의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하는 방안에 대해 한·미가 관련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는 제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것이다.
최근 한국 내에서 지지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과 관련해 미국의 대외전략에 큰 영향력을 가진 유력 싱크탱크가 한국의 핵무장에는 반대하지만 전술핵 재배치의 경우 당장은 아니더라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CSIS 보고서를 계기로 올해 브루킹스 등 다른 미 유력 싱크탱크들은 물론 서유럽의 유력 싱크탱크들도 한국의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전향적인 제안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CSIS는 이날 발표한 ‘대북정책과 확장억제에 대한 제언’이라는 제하의 보고서에서 “동맹국들(한·미)은 미국의 저위력(low-yield) 핵무기(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준비 작업과 관련한 운용 연습(TTX)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존 햄리 CSIS 소장,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 등 미국의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한반도 전문가 등 14명으로 구성된 CSIS 한반도위원회가 작성했다.

그러나 CSIS는 “지금 당장 미국이 전술핵을 한반도에 재배치하거나 한국의 핵무기 획득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한국이 직면한 북한의 핵 위협이 전술핵을 당장 배치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북핵 위협이 심화할 경우를 대비해 주요 대응책의 하나로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북핵 위협을 성공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나토 핵기획그룹(NPG)과 유사한 핵 공동 기획협의체를 신설해서 여기에 서유럽의 핵보유 국가들인 영국과 프랑스 등도 참여시킴으로써 ‘다자 핵 우산’ 확장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모든 핵 보유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협력체를 만드는 방안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보고서는 “북한의 증가하는 핵능력 및 위협, 그리고 북한의 독자적 (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에 대한 미국의 MD(미사일 방어) 요격의 취약성을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인들로 하여금 미국의 확장 억제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했다”며 “(북한의 핵 위협 고조는) 동맹국들로 하여금 북한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자국의 도시 중 하나를 위험에 빠뜨릴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한국에 대한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환경 영향 연구와 평가, 핵무기 저장 시설 위치 파악, 핵안보 관련 합동 훈련, 주한미군 F-16 전투기의 핵 임무 수행 인증 작업 등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래야만 북한의 핵 위협 도발 수위에 따라 언제든 미국의 전술핵이 한국에 실전 배치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어 핵잠수함과 전략폭격기 등을 한국에 상시 전개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으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추가 배치와 한국형 아이언돔의 조기 배치도 제안했다.

CSIS의 이들 제안은 지난해 말부터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어 오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언젠가 전술핵이 재배치될 수 있도록 준비하자는 제안은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재래식 전략자산 중심의 확장억제만을 고집하는 미 국방부에게 큰 자극이 될 것이다.

하지만 CSIS의 이번 보고서는 한계도 드러냈다. 미국의 유력 싱크탱크들조차 한반도와 동아시아 안보 질서가 중국의 핵 위협에 더해 북한의 핵 위협까지 고조됨에 따라 비핵 국가들인 한국과 일본, 대만이 직면한 중핵과 북핵의 인질 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이 드러난 것이다. 북핵도 큰 위협이지만 한반도를 겨냥해 해안선을 따라 배치해 놓은 둥펑 21, 17, 14 등 중단거리 탄도미사일로 대표되는 중핵 위협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술핵을 즉각 한국에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어야만 맞다.

우리에게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맥아더 장군은 “역사적으로 모든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는 요인은 ‘너무 늦은(too late)’이라는 두 마디로 요약된다”고 했다. CSIS가 맥아더 장군의 이 교훈을 배웠더라도 이 보고서에서 전술핵 재배치 시점을 지금이 아닌 미래 어느 시점으로 늦춰놓았을 것인지가 궁금하다. 한국이 지금 당장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자체 핵무장을 하면 북핵과 중핵을 성공적으로 억제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을 미국이 못하게 하는 바람에 훗날 너무 늦었다고 후회해서는 안 된다.


이교관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