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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의 핵무장론, 北 비핵화·통일 주도 겨냥한 '이중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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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의 핵무장론, 北 비핵화·통일 주도 겨냥한 '이중 결정'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이미지 확대보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미 MIT대 국제정치학자 배리 포젠, 이스라엘,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 그리고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 답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을 제기하는 데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윤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20일 미 월스트리트저널과 가진 회견에서 "현재로서는 NPT(핵비확산조약)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윤대통령이 11일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에서 물러섰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회견에서 NPT 체제 존중과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강한 신뢰를 강조한 것은 윤대통령이 11일 발언을 취소했다기보다는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언급한 데 따른 불필요한 오해나 외교적 파장을 해소하려는 원칙적인 입장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평가일 것이다. 따라서 앞의 세 인물과 하나의 국가가 어떻게 윤대통령의 전술핵과 핵무장론에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 그런지 하나하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지와 함께 이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는지도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는 윤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론을 제기하기 전까지 어떤 관련 고뇌를 해왔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 결과 윤 대통령이 11일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고 난 뒤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긴 했으나 역대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북한의 핵위협 억제 전략과 관련한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인식 변화라고 보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 확장억제정책 시대 뒤져…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지난 2일 조선일보와의 신년 회견에서 이미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에 상당히 근접한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왜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인가.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물리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전술핵의 기획과 운용을 한·미가 공동으로 하는 중간 수준의 핵공유 체제 구축을 핵탄두 없이 운반수단만 참여하는 연합훈련 중심의 확장억제 체제 대안으로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핵공유라는 표현을 꺼려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그가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고 싶지만 미국이 공감하지 않는 만큼 당장 현 확장억제 체제를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높은 수준의 핵공유 체제로까지 높이기 어렵다고 보고 전술핵운용협의권만 갖는 중간 수준의 핵공유 체제를 추진키로 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 점에서 그는 이미 조선일보 회견 때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미국이 거부하면 자체 핵무장 외엔 방법이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이 현 확장억제 체제를 중간 수준의 핵공유 체제로 강화해 나가야겠다고 판단하는 데 밑받침이 된 논리적 근거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현 확장억제는 냉전 때 미국이 소련의 핵위협으로부터 동맹국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었던 만큼 오늘날 북핵 억제 전략으로서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을 촉구하는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국가안보실과 국방부는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은 미국의 북핵 전략에 배치되는 만큼 현 확장억제를 유지해 나가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강화해 나간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이는 현 확장억제가 부적합한 북핵 위협 대응 전략이라는 대통령의 지적이 국가안보실이 주도적으로 준비해서 제공한 것이라기보다는 윤 대통령이 직접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 담론들을 공부한 결과일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한 정치권 인사는 작년 말 대통령실 정무 분야로 확인해보니 전술핵과 자체 핵무장론에 대한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해 온 바 있는데, 이는 결국 대통령의 인식이 지난해 말부터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핵위협 억제 넘어 중국 핵위협 차단 목적


확장억제가 북한의 핵공격 위협에 맞선 전략으로 맞지 않는다는 윤 대통령의 언급은 지난해 10월 초 주간조선에 ‘자체 핵무장론의 재소환’이라는 제하에 커버스토리로 실린 글에서 필자가 인용한 미 MIT대 교수 포젠의 주장이다. 포젠이 저서 ‘절제’에서 제기한 논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오늘날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와 동시에 드잡이하고 있어 미 본토에 대한 이들 권위주의 강국의 공격 위협을 방어하기 위한 직접 억제에 주력해야 할 뿐만 아니라 중·러와의 갈등 고조로 인해 동맹국들의 안보를 위한 확장억제는 갈수록 위험하고 어렵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만큼 미 동맹국들에게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아랍국들로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자체 핵무장의 길을 걸어간 이스라엘의 정신을 주목하라는 것이다. 포젠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환상(fantasy)’이라고까지 했다. 따라서 NPT만 믿고 있다가는 미래가 없을 수 있으니 대미 관계 악화를 우려한 나머지 나라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들지 말고 이스라엘처럼 자체 핵무장에 나서는 것이 올바른 전략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전술핵과 핵무장론은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 총리의 ‘이중 결정(double-track decision)’을 닮았다. 슈미트 총리는 1979년 12월 소련이 동독에 서유럽 전역을 겨냥한 중거리 핵미사일 SS-20을 배치해온 데 따른 전략적 균형 상실에 맞서 미국에 SS-20보다 정확도가 15배 높고 10분 이내에 모스크바를 때릴 수 있는 중거리 핵미사일 퍼싱-II의 배치를 전격 요구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슈미트의 이 결단은 이중 결정으로 평가받는데 그 까닭은 소련의 핵공격 위협에 대한 확실한 억제와 동독에 배치된 SS-20의 철거라는 두 개의 목적을 동시에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전술핵과 핵무장론도 두 개의 목적을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 그의 목표가 북한의 핵공격 위협을 억제하는 데만 있다면 전술핵 재배치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그는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전술핵 재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자체 핵무장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외교적 논란을 무릅쓰면서까지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의 필요성을 동시에 언급했다는 것은 북한의 핵공격 위협 억제를 넘어서는 더 큰 목표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체 핵무장은 북한의 비핵화 실현과 함께 둥펑 21과 17 등 해안선을 따라 한반도를 겨냥해 배치된 중국의 중단거리 핵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는 물론 중국이 북한 붕괴 시 핵무기 관리 명분으로 개입하는 것을 막는 데 큰 도움이 돼 한국 주도의 통일을 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점에서 윤 대통령의 시선은 북한의 핵공격 위협 억제를 넘어서 북한의 비핵화와 중국의 핵위협 억제, 북한 붕괴 시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 실현 대비에까지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론 역시 슈미트와 같이 ‘이중 결정’인 것은 이 때문이다. 물론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면’이라는 전제 조건이 달려 있고 미국도 당장 두 의제 모두 수용할 태세는 아니지만 그가 대통령으로서 언젠가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고 더 나아가 자체 핵무장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한 이상 그의 말은 공식 발표나 같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슈미트의 이중 결정은 4년 뒤인 1983년 당시 레이건 미 행정부가 서독에 퍼싱-II를 전격 배치함으로써 열매를 맺는다. 그 결과 동·서독 간에 공포의 핵 균형이 실현된 데 이어 1987년 미·소 중거리핵미사일제한협정(INF) 체결에 따라 동독에서 소련의 SS-20이 철거되기에 이르면서 이중 결정은 냉전 종식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1989년 동독 붕괴로 서독이 통일을 달성하자 “냉전의 종식은 슈미트의 이중 결정에 힘입어 소련의 핵위협에 맞서 힘의 균형을 이루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능력 강화를 위한 신무기 실험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능력 강화를 위한 신무기 실험을 참관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윤 대통령의 이중 결정은 당장에는 미 백악관과 국방부 등으로부터 한반도 비핵화에 맞지 않는다는 냉담한 반응을 받고 있으나 슈미트의 이중 결정처럼 조만간 미국의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한·미가 북·중에 맞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현재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는 계속 추구하고 있으니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은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향후 2~3년 안에 한국의 북핵 인질 위기가 심화하고 미·중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중국의 핵위협이 고조되면 윤 대통령의 이중 결정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높은 수준의 한·미 핵공유에 나섬과 동시에 더 나아가 자체 핵무장도 양해함으로써 한국이 동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을 이루는 전략핵동맹으로 도약하도록 지원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북한 핵위협 심화되고 중국 핵위협 고조되면 美도 한국 핵무장 공감 가능


이를 위해서 정부는 미국이 윤 대통령의 이중 결정을 수용하도록 대미 설득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같은 노력은 외교안보 부처들뿐만 아니라 경제 부처들도 나서야 한다. 대미 설득은 두 개의 큰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는 북핵 인질 위기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5개국이 미 전술핵의 기획과 운용을 공유하면서 대처하고 있는 러시아의 핵위협보다 더 심각한 만큼 전술핵이 없는 현 확장억제로는 김정은에게 절대로 공포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설득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대중 패권 전략으로서 추진 중인 ‘재세계화’의 성공을 위해 반도체 등 첨단 산업별 소자 연합(mini-lateral coalitions)을 비롯한 비공식 경제동맹에 선도적으로 참여해 미국의 기술 패권 유지를 뒷받침할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에 대한 미국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네덜란드 볼켈 공군기지의 지하 무기 보관 및 보안 시스템 금고에 있는 B61의 비활성 훈련용 버전. 탄두의 액세스 패널이 열려 PAL(안전/무장) 및 가변 수율 설정과 같은 작업에 대한 인터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이미지 확대보기
네덜란드 볼켈 공군기지의 지하 무기 보관 및 보안 시스템 금고에 있는 B61의 비활성 훈련용 버전. 탄두의 액세스 패널이 열려 PAL(안전/무장) 및 가변 수율 설정과 같은 작업에 대한 인터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윤 대통령이 이처럼 10일 간격으로 조선일보 회견과 국방부 업무보고라는 계기를 활용해 정부 공식 입장인 확장억제 체제가 북핵 위협을 억제하기에는 적합한 전략이 아니라고 판정한 데 이어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 필요성까지 언급했다는 것은 그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들 의제에 대한 고심이 컸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자신이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이 반대하는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동시에 제기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데는 군의 존경을 받는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이 필자와의 주간조선 신년호 커버스토리 인터뷰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언론과 정치권 안팎의 평가다. 이 전 장관은 역대 안보 부처 장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도 이제 독자 핵무장 로드맵을 밟자”며 “현 확장억제로는 북한의 핵위협 억제가 불가능한 만큼 전술핵 재배치를 해야 하며 미국이 전술핵 재배치에 동의하더라도 자체 핵무장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주창했는데 윤 대통령이 이를 읽고 비로소 확신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