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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7개국 재세계화 동맹' 통해 독자 핵무장 달성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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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7개국 재세계화 동맹' 통해 독자 핵무장 달성할 수 있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교관 대기자 “역사는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기술들을 지배하는 나라가 그 시대를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하나의 국민국가가 세계 패권을 유지할 때 국제 시스템이 안정된다는 내용의 ‘패권안정론’의 권위자들인 미국의 조지 모델스키와 윌리엄 톰슨이 공저 ‘선두 영역들과 세계 강국들’에서 19세기와 20세기 역사 전체를 통찰해 내린 결론이다.
이 언명은 미국과 소련 간에 반세기 가까이 벌어졌던 냉전에서 자유주의 진영이 최종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 전략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냉전 승리 전략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조지 케넌의 ‘봉쇄(containment)’ 전략이 소련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봉쇄의 핵심이 소련이 당시의 최첨단 기술들과 전략 물자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주요 자유주의 동맹국들과 철저하게 막았던 ‘기술 봉쇄’였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미국이 현재 대중 패권 전략으로 추진하는 ‘재세계화’는 냉전 때의 대소 기술 봉쇄에 이어 ‘제2의 기술 봉쇄’라 할 수 있다. 중국이 이 시대의 결정적 기술들인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첨단 정보통신 기술들을 확보해 ‘디지털 제국주의(digital imperialism)’로 세계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서는 중국이 이들 최첨단 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안보 대전략-경제 대전략은 깊은 상호 의존성 넘어 운명공동체와 같은 것


문제는 세계화 시대에 재세계화를 어떻게 해야만 세계화 체제를 유지하면서 대중 기술 봉쇄를 성공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냉전 종식 이후 모든 국가의 시장 개방을 통한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라는 세계화를 추구해온 만큼 이를 역행해 공식적인 대중 경제 동맹을 구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재세계화가 반도체와 AI 등 주요 첨단 산업들에서 중국이 최첨단 기술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각 산업의 강국들인 몇몇 자유주의 동맹국들과 ‘비공식 경제 동맹’을 구축하는 것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미 국제정치학자들인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베클리는 ‘위험지대’에서 평가한다. 미국의 재세계화를 결정적으로 부추긴 계기는 중국의 IT 기업인 화웨이의 거센 기술 추격이 꼽힌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라이언 하스는 ‘더 강한 국가’에서 화웨이가 2019년 9월 미국 부품 하나 안 쓰고 5G 모바일 저장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한 사실을 주목한다. 화웨이의 5G 기술 정복은 중국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반도체 분야에서 돌파구를 열겠다고 시진핑 주석이 중국공산당 리더들과 중국 IT 기업인들 앞에서 선언한 지 만 3년 만에 거둔 성과다. 5G가 반도체인 것이다.

미국이 재세계화의 성공을 위해 추구하고 있는 비공식 경제 동맹 구축 전략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첨단 기술과 연구개발(R&D) 규모가 세계 상위권인 7개 자유주의 동맹국들을 중심으로 ‘종합적인 비공식 경제 동맹’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요 첨단 산업별로 각 분야에서 첨단 기술을 보유한 몇몇 자유주의 동맹국들과 ‘소자 연합들(mini-lateral coalitions)’을 구축하는 것이다.

한국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한국을 종합적인 비공식 경제 동맹은 물론 주요 첨단 산업별 소자 연합들을 주도해 나갈 핵심 국가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랜즈와 베클리는 앞의 책에서 미국은 한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7개국과 함께 작지만 강력한 경제 동맹을 구축함으로써 재세계화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이들 7개국은 미국이 지배하지 못하는 핵심 기술들의 대부분을 개발하고 있고 세계 경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R&D를 합하면 중국을 앞서는 만큼 강력한 경제 동맹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거센 도전 봉쇄 위해 美, 종합적 경제동맹 외에 첨단산업별 소자연합도 추진


미국이 재세계화를 위해 이 같은 종합적인 비공식 경제 동맹 구축과 주요 첨단 산업별 소자 연합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새해 경제 대전략은 명백하다. 재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재세계화를 경제 발전을 위한 더없이 좋은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냉전 때 대소 기술 봉쇄에 참여한 동맹국들과 첨단 기술을 공유하고 이들 동맹국이 각자의 비교 우위 분야에서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따라서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니 탈동조화니 하면서 재세계화에 거리를 둘 경우 세계화에 늦게 동참함으로써 겪어야 했던 외환위기 같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벌써 한국과 대만을 겨냥한 ‘반도체 민족주의’가 꿈틀대고 있다고 미 터프츠대 크리스 밀러는 ‘반도체 전쟁’에서 경고한다.

중국은 미국의 재세계화를 저지하기 위해 두 가지 형태의 반격에 나서고 있다. 하나는 재세계화를 통한 미국의 대중 기술 봉쇄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강화와 개혁을 요구하면서 포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지역 경제 연합들에 대한 참여를 추진함으로써 앞의 7개국 비공식 경제 동맹이 구축되는 것을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최근 블룸버그가 중국이 첨단 반도체 기술 개발은 너무 어려워 중간 수준 기술의 반도체에 집중하기로 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보도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굳이 반도체 소자 연합 같은 대중 기술 봉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혼란 전술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보도 내용이 혼란 전술일 가능성이 높은 것은 ‘반도체 연구개발의 요새들을 공격하라’는 시진핑의 ‘교시’에는 물론 이에 기반해 외국에 의존해온 모든 반도체의 중국 자체 생산으로 대체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돼온 ‘Made in China 2025’ 전략에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비공식 경제 동맹 구축 전략을 통해 재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첨단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미국 주도의 비공식 경제 동맹에 적극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은 비공식 경제 동맹 구축 전략을 통해 재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첨단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미국 주도의 비공식 경제 동맹에 적극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진=글로벌이코노믹


중국이 이처럼 더 공정한 세계 교역 질서를 추구하는 듯이 행세하고 고급 반도체 기술은 추구하지 않을 것처럼 워싱턴을 혼란시킴으로써 미국의 재세계화에 맞서 반격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이 새해에 추구해야만 하는 안보 대전략의 달성을 위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의 핵 선제공격 위협에 대한 성공적 억제를 위한 높은 수준의 한·미 핵공유 체제 구축이라는 안보 대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핵심 수단인 전술핵의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결단을 한국이 재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기술 패권과 군사 패권 도전을 막아내기 위해 재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다른 동맹국들과 달리 한국이 재세계화에 적극 참여하면서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할 경우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가능성이 낮지 않은 것은 미국이 직면한 현재 최대 지정학적 위기가 북한의 핵 선제공격 위협이 아니라 디지털 제국주의를 통해 미국에게서 글로벌 기술·군사 패권을 빼앗아 가려는 중국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세계화는 미국의 대전략인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이 재세계화를 위한 7개국 대중 비공식 경제 동맹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반도체 등 주요 첨단 산업들의 소자 연합 구축을 선도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보답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한국이 미국의 재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새해 경제 대전략으로 본격 추진하면서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할 경우 바이든 미 행정부로서는 수용할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현재 미국이 AI는 물론 양자 컴퓨팅과 차세대 암호화 기술 분야의 소자 연합 같은 데에는 한국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이 이들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R&D를 늘려서 고급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아직 한국의 참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 소자 연합에도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만 한국이 아직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첨단 산업들에서도 미국의 지원으로 관련 기술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성공 이후 보수와 진보 정권을 떠나서 정부 차원에서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한국이 그동안 비확산체제(NPT)의 안정을 위해 전술핵 재배치를 꺼리는 미국을 설득할 만한 마땅한 지렛대를 보유하지 않은 까닭에 더더욱 전술핵 재배치를 강하게 요구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미국이 재세계화에 대한 한국의 적극 참여로 대중 기술 봉쇄 체제가 성공적으로 구축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만 된다면 이는 미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높은 수준의 한·미 핵공유 체제를 수용하게끔 만드는 결정적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韓, 동맹에 주도적 참여하며 美에 전술핵 재배치 요구땐 바이든 수용 가능성 높아


만약 미국이 윤석열 정부가 새해 추진하고 있는 전술핵의 실제 재배치 없이 미 전술핵의 기획과 운용만 공유하는 중간 수준의 핵공유 체제를 넘어 전술핵 재배치를 통한 높은 수준의 핵공유 체제를 수용하는 결단을 내리더라도 한국은 별도로 독자 핵무장 로드맵도 밟아나갈 필요가 있다. 독자 핵무장 의지가 강할수록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미국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독자 핵무장이 중요한 이유는 북한의 핵 선제공격 위협을 억제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미 전술핵 재배치만으로도 충분하다. 독자 핵무장은 그보다는 북한의 비핵화 실현과 함께 중국의 핵 선제공격 위협을 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정권 붕괴 시 북한의 핵무기 관리 명분으로 중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미 전술핵의 기획과 운용 경험만으로는 중국의 개입을 저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상희 전 국방장관은 필자와 가진 한 언론 매체 신년 인터뷰에서 NPT를 탈퇴해서라도 독자 핵무장 로드맵을 밟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럴 경우 미국의 경제와 외교 제재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한 나라의 생존이 우선”이라고 일축했다. 미국의 재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에 대해 대중 교역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재세계화는 궁극적으로 중국도 소련과 같은 운명을 밟게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한국이 대중 교역을 의식해 재세계화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망설일 경우 거꾸로 경제적 생존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