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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프로필] 대만 기습 방문 "낸시 펠로시" 대체 누구? 중국 시진핑 아픈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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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프로필] 대만 기습 방문 "낸시 펠로시" 대체 누구? 중국 시진핑 아픈 상처

미국 대통령 승계서열 2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이미지 확대보기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 의장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이 주목을 끌고 있다. 펠로시 의장과 중국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낸시 펠로시는 1991년에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당시 유혈 진압된 톈안먼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죽어간 이들에게'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추모 성명을 낭독했다가 공안에 붙들려 구금됐다. 그때 펠로시는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자격이었다. 그는 중국 당국의 허락 없이 두 명의 동료의원과 광장에 들어가 손으로 쓴 작고 검은 현수막을 펼쳤다. 중국 공안은 급하게 뛰어 들어와 취재 기자들을 거칠게 내몰고 의원 일행을 체포했다.

그때 현장에서 함께 체포됐던 마이크 치노이 전 CNN 베이징 지국장은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문에서 "그 사건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공산당 지도자를 찔러보려한 시도였다"고 빍힌 바있다. 중국은 사건을 '계획된 코미디'라고 비난했다.

낸시 펠로시는 이후에도 공산당이 시위대를 학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기념일때마다 성명을 통해 공산당을 '억압 정권'이라고 비판하면서 "톈안먼 시위는 정치적 용기를 발휘한 가장 위대한 행동 중 하나였다"고 평가했다. 펠로시는 2002년에는 후진타오 당시 중국 부주석에게 구금된 중국·티베트 활동가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편지 4통을 전달하려고 했으나 상대의 거부로 실패했다. 펠로시는 7년 후 주석이 된 후진타오에게 류샤오보(劉曉波) 등 정치범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신을 직접 전달했다. 펠로시는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의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 유치도 반대했다.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말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탄압을 문제 삼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외교 보이콧'도 주도했다.
펠로시는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관련해서도 인권 기록을 연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펠로시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하원의장이었다. 2018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하면서 하원 의장으로 선출됐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며 현재까지 유일한 여성 의장이기도 하다. 하원 의장은 대통령 승계 서열 2위이다. 그는 민주당 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가 지역구이다. 1940년 출생했다.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6남 1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과 볼티모어 시장을 지낸 롬바르디 달레산드로이다. 어머니도 민주당 당원이었다. 오빠인 토마스 달레산드로 3세는 볼티모어 시장을 지냈다.

펠로시는 톨릭 미션스쿨인 사립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62년 대학을 졸업한 후 고 동갑인 폴 펠로시를 만나 결혼했다. 1960년대에는 1981년부터 메릴랜드 주 상원의원 대니얼 브루스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사업을 시작한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건너갔다가 이후 1977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당원활동을 재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하원의원 필립 버와 가까이 지내며 여러 당직을 역임하였다. 1983년 필립이 갑자기 별세하자 역시 정치인이던 필립의 아내 살라 버튼이 의원직을 계승했다. 이후 살라가 1987년 암으로 별세하자 펠로시가 캘리포니아 5구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되며 연방하원의원이 되었다.

펠로시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이다. 진보단체인 미국 시민 자유 연맹과 인권 운동회에서 각각 92%와 100%라는 후한 점수를 받았다. 동성결혼을 막았던 Defense of Marriage Act를 반대했다. 헌법을 개정해서 동성 결혼을 원천 봉쇄시키려고 했던 Federal Marriage Amendment도 반대했다. 부시 행정부가 노동자가 사회보장제도 지원금을 주식, 채권 투자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제도 보호장치를 해제하려고 시도하자 이를 강력하게 당론으로 반대하여 무산시켰다 . 2006년 중간 선거에서 정경유착 해소, 복지제도 강화 등을 포함한 '100시간 계획'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상, 하원 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그때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하원 의장으로 취임했다. 2007년 미 의회 역사상 2번째로 한일문제의 중요한 해결과제인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최종적으로 미 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다. 2010년 미국 중간선거에서 낸시 펠로시 본인은 다시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했지만,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에 대한 인종적 반감과 함께 민주당의 '좌클릭'에 강력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 기존 민주당 성향 지지 남부나 중서부 농촌 지역 의석을 대거 공화당에 뺏기게 되면서 민주당은 하원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그로인해 펠로시는 4년 만에 하원 의장 자리에서 내려와 소수당 원내대표 자리로 복귀하게 된다. 2018년 미국 하원선거에서 득표율 8.6%p 차이, 의석수 36석차로 그간의 패배를 갚고 압승한 이후 하원 의장으로 복귀했다.

1997년에 북한을 방문한 적이있다. 그때 주민들의 참상을 보고 들은 뒤부터 북한 체제를 비판해 왔다. 2019년 2월 방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리고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등에게 "북한의 진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의 무장해제다."라고 발언했다. 2019년 6월부터 시작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대하여 8월 들어 중국 본토 정부가 강경 진압을 시도하자 공화당과 손을 잡고 중국에 폭력적 탄압 시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2020년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연두교서) 현장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의 연설이 끝난 후 연설문을 트럼프 눈앞에서 찢어버렸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