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국방, 항공우주, 해양 분야에 사용될 수 있는 반도체, 컴퓨터, 통신, 정보보안 장비, 레이저, 센서 등을 수출 통제 대상에 올렸다. 이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정부가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제재하려고 도널드 트럼프 전임 정부가 사용했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다시 적용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반도체를 수입에 의존해왔고, 반도체 자체 생산 능력이 제한적이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의 반도체 관련 수입 규모는 지난 2020년 기준으로 4억 4,000만 달러에 달하고, 직접회로칩(EIC) 수입 규모가 12억 5,000만 달러에 이른다.
러시아는 세계 2위의 무기 수출국이고, 이 무기를 생산하는 데 첨단 반도체가 꼭 필요하다. 미국 의회 조사국(CRS)에 따르면 러시아는 방공 시스템, 레이다, 미사일 수출국으로 세계 무기 수출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한 인공 지능, 5G, 로봇 분야 연구와 관련 제품 생산에 주력해왔다. 러시아가 한국과 대만 등의 첨단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면 이들 분야가 발전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 미국, 대만, 일본 등의 러시아에 대한 수출 제한 조처가 스마트폰 등 소비재 부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 러시아가 중국산 반도체를 수입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반도체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고, 중국산 반도체는 한국이나 대만 제품에 비해 품질이 떨어진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지적했다.
중국이 한국과 대만을 대신에 반도체를 러시아에 공급할지 불확실하다.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 규정을 어기고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 반도체 기업은 문을 닫도록 할 것이라고 지난 8일 경고했었다. 레이몬도 장관은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에 반도체와 다른 첨단 기술을 제공하면 해당 업체를 강력하게 제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나 어느 다른 나라가 미국의 러시아 제재와 관련된 수출 통제를 위반하는 활동을 하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다고 경고해왔다. 중국 등의 반도체나 통신 장비 업체가 미국의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일부 사용하면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수출 통제 대상이 된다.
레이몬도 상무부 장관은 중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독자적인 기술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중국 상하이에 본사가 있는 SMIC가 러시아에 반도체를 판매하면 우리의 장비와 소프트웨어 사용을 금지해 이 회사가 완전히 문을 닫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레이몬도 장관은 “중국 기업들이 러시아에 물품을 제공하지 말아야 하는 자체적인 이해가 걸려 있다”면서 “중국 회사들이 선의로 응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그 회사들의 반도체 생산 능력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