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마음을 치유하는 영화(43)] 시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돋보이는 영화 '아뉴스데이'

공유
0

[마음을 치유하는 영화(43)] 시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돋보이는 영화 '아뉴스데이'

프랑스 여의사 마틸드의 시점에서 바라본 수녀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아뉴스데이'.
프랑스 여의사 마틸드의 시점에서 바라본 수녀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 '아뉴스데이'.

우리 속담에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는 말이 있다. 당연히 해야만 할 일을 하러 갔는데 생각지도 않은 이득이 들어온다는 말이다. 이와 유사한 뜻으로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고스톱 용어로 ‘일타쌍피’가 있다.

누구나 잘 아는 내용들이지만 엠비씨제작사 김흥도 감독의 사례가 재미있어서 소개해본다. 수년 전 그가 직장에서 등산한 후 가진 회식 자리에서 경험한 일이라고 했다.

그와 서로 코드가 맞지 않아 어색하게 지내던 직장 선배가 술이 잔뜩 취해서 맥주잔에 양주를 한가득 부어서 권했다고 한다. 워낙 큰소리로 한잔 마시라고 권하는 바람에 수십 명의 이목이 술잔을 든 손에 집중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의 불행을 즐기는 자들이 “마셔라- 마셔라”하면서 놀부 심보로 응원의 떼창을 불렀다고 한다. 순간 분위기에 휩싸이면서 안 마시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순간적으로 대중의 응원에 무조건 호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들은 누군가 취해서 망가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시적 유희를 원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시지 않는다고 한들 누가 나무랄 것이며 양주가 가득한 맥주잔을 다 마시면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생각들이 들자 절체절명의 순간 김흥도 감독은 마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인하여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했다.

“선배 마시고 주세요.”

갑작스런 역제안에 “마셔라”는 응원은 선배에게 쏠렸고 이미 취해있던 그는 주저 없이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앉은 채로 뒤로 쓰러져 실려가서는 그날의 일은 기억도 못한다고 했다.

신나게 응원했던 사람들 역시 누가 쓰러졌는지 그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쓰러져 실려간 자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 김 감독 입장에서는 건강을 헤칠 정도의 술도 안 마셨고 나쁜 의도의 선배와 남의 불행을 즐기려는(?) 방관자들에게 한방 먹인 셈이다.

살아가면서 ‘일타쌍피’의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안 좋은 일이 닥쳤다고 생각될 때 낙담해서 그 안에 매몰되지 말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 속에서 반전을 만들어 내려는 생각을 열어두어야 한다.

영화 제목 ‘아뉴스데이’는 라틴어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직역된다.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제물’이라는 뜻을 가진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한 시대에 폴란드에 있는 한 수녀원을 배경으로 한다.

수녀원 역시 전쟁의 혼란 속에서 독일군과 소련군에게 무참히 짓밟혀지고 그 속에서 적십자 소속의 젊은 프랑스인 여의사가 상처 입은 수녀들을 돕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군인들에 의하여 비극적으로 임신한 수녀들은 종교 규율을 어긴 자책감으로 절망한다. 그녀들은 어떻게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좌절했고 다시 믿음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던 중 죄책감으로 자살하는 수녀도 생겨나고 출산을 준비해야 되는 수녀들도 늘어갔다. 그래서 한 수녀가 동료들을 위하여 어렵게 수소문하여 프랑스 여의사 마틸드를 수녀원으로 데려온다.

처음에는 마틸드를 신뢰하지 못하는 수녀들은 그녀로부터의 건강검진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러시아 군인들이 급습하였고 그녀는 의사라는 신분으로 러시아 군인들에게 전염병이 도는 것 같다는 거짓말을 하는 등의 기지를 발휘하여 수녀들을 숨겨준다. 드디어 수녀들은 그녀를 은인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프랑스인이 폴란드인을 돕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하는 행동이었다. 이 영화에 대하여 원장 수녀는 종교의 규율 때문에 생명의 존엄을 잘 지키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은 불행에 닥친 그들에게 마틸다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 있다.

어떤 해석이든 간에 이 영화는 성령에 의한, 아니면 그를 통한 인간의 의지로 인한 구원을 보여주며 결말을 맺는다. 영화의 결말에서 한꺼번에 나타나 있다.

마틸다는 상부 명령에 의해 이 지역을 떠나야만 되었고 수녀원 역시 아기들이 늘어나면서 소문이 날 경우 폐쇄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위기에서 오히려 빛나는 마틸다의 재치로 인해 희생자 없이 모두 살아난다.

마틸다는 넘쳐나는 전쟁 고아들을 위하여 수녀원을 고아원으로 변경할 것을

상부기관에 제안한다. 당연히 수녀원은 수녀님들이 고아를 돌보는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조건으로 허가됨으로써 수녀원 고유의 기능을 존치하면서 고아원으로 변경하게 된다. 이로써 당연히 수녀원의 아기들도 외부에 소문나지 않고 합법적으로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엠비씨제작사의 김흥도 감독은 이 영화는 시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작품이라고 감상평을 한다. 설혹 인간의 의지가 종교에서 말하는 성령에서 나온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격언과도 통한다고 할 것이다. 무엇이든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인간 자체로서도 최선을 다해서 희망을 가져보자. 그렇게 해야지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만 도랑에서는 가재를 잡을 수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