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칼럼] 리더의 핵심 덕목-노블레스 오블리주

기사입력 : 2018-06-1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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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남 한국HR협회 HR칼럼리스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ilige)란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사회적 책무로서 부여된 의무와 책임을 다함으로써 자기와 자기 자리를 부끄럽고 욕되지 않게 함을 말한다. 도덕적 양심에 입각한 자기 성찰과 자기 자신에 대한 개선, 도덕적 행동을 위한 자기억제와 책임, 도덕적 의무감에 의한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그 근본정신으로 한다.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을 뜻하고 오블리주는 닭의 노른자를 말하는데, 닭의 사명은 벼슬에 있지 않고 계란을 낳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도버 해협을 건너 프랑스 칼레에 이르면 이 도시의 시청광장에서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 조각상을 볼 수 있다. 1347년 영국과 프랑스간 백년전쟁에서 11개월간이나 항거하다 항복한 칼레시민들에게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전쟁배상 및 용서의 조건으로 시민 6명의 목숨을 요구하였다. 그 당시 이 도시의 최고부자인 ‘에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제일 먼저 처형을 자처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 귀족 6명이 추가로 처형에 동참하였다. 이후 영국왕비의 건의로 이들의 처형은 면하였으며, 이 사건을 기리기 위해 수백년 후인 1888년에 로댕은 칼레에 이 상을 세웠다. 서양에서는 이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원으로 생각한다.

동양에서도 유교사상에 입각한 군자(君子)의 ‘이상적 인간관’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맹자는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청(淸), 화(和), 임(任)을 지도자의 세가지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는 바, 청(淸)은 본래 타고난 깨끗함과 순수함을 견지하여 이로움을 쫓지 않고 인의에 전념하는 것이며, 화(和)는 인의를 대인관계에서 발현하여 사람들간에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하며, 임(任)은 인의를 사회적으로 구현하여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 선인들 중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천한 인물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경주 최부자 일화와 이순신 장군의 멸사봉공 정신, 우암 이회영 형제들의 의열 등이 필자의 뇌리에 생생하다.

경주 최씨 일가는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로 1600년대부터 12대에 걸쳐 300여년 동안 만석꾼의 부를 누리면서도 주변의 존경과 신망을 받았다. 이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6가지 가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만석 이상 재산을 늘리지 말 것,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말 것, 과객은 귀천을 구분하지 말고 후하게 대접할 것, 최씨 가문 며느리는 시집온 후 3년간 무명옷을 입을 것, 사방 100리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할 것, 벼슬은 진사 이상을 탐하지 말 것). 최씨 가문의 재산은 일제 때는 독립운동 자금으로, 해방후에는 교육사업으로 쓰여졌다. 만석꾼의 부자였으면서도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로 상류층의 도덕적 책임을 다하였다.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는 필자가 세세히 논하지 않더라도 명확한 공사구분 자세, 평소 전쟁에 대비한 준비 및 훈련, 부하와 백성들에 대한 자상함, 냉철한 판단력, 임전무퇴의 용기, 구국의 일념에 따른 자기희생 등 그 분의 지도자로서의 덕성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우암 이회영은 조선말기 한양에서 양반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살던 중 1905년 일제에 의해 일사늑약이 체결되자 나라 잃은 백성이 무슨 낯으로 이 땅에 살 수 있겠냐며 6형제를 규합하여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전재산을 처분하여 약 600억원(당시 40만원)으로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투사를 양성하는가 하면, 상해 임시정부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일체의 관직이나 자리를 원치 않았으며,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도 오직 독립운동과 국권회복에 전념하였다. 1932년 12월 중국의 다렌항에서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고 66세로 절명하였다. 그 형제들도 대부분 만주, 상해 등지에서 비참하게 죽었고, 해방 후 6형제 중 5째 이시형(전 부총리)만 고국으로 돌아 왔다. 이회영 형제의 나라사랑 정신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후손이 나름 한국사회에서 어엿한 정치인으로서 잘 활동하고 있어서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김용남 한국HR협회 HR칼럼리스트(숭실대 초빙교수) 김용남 기자가 쓴 기사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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