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한글이라는 고유의 문자를 가진 덕분에 문맹률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 거의 모든 국민이 글을 읽을 줄 아는데도 연간 독서량이 바닥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 사람은 왜 이렇게 책을 안 읽을까?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그러다가 내 나름대로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냈다.
세계는 점점 근대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성리학에 경도된 우리의 위정자들은 여전히 ‘공자 왈 맹자 왈’ 하며 거꾸로 가는 행태를 보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기라는 처참한 결과와 마주했다. 이러한 역사의 기억이 ‘책’으로 상징되는 인문학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조선 시대에 벌어진 역사의 경험이, 책은 내가 먹고사는 문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변화와 적응을 거부하는 고답적 사고에 빠지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형성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가 더욱 심각한데,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책에 대해서 즐거운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아기일 때까지는 그림책과 동화책을 보면서 책과 친해진다. 하지만 취학 연령에 이르러 책의 종류가 조금씩 ‘학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초등 고학년부터 드디어 지옥문이 열린다. 책장은 학업과 성적에 이로운 책으로만 채워지고, 줄곧 참고서와 문제집에 매달려야 한다. 대학에 진학해도 마찬가지다. 청춘의 경험은 취업에 필요한 스펙 쌓기에 집중되고, 자격증과 입사시험을 위한 수험서 보느라 다른 책은 거들떠볼 여유가 없다. 취업에 성공하면? 성과와 승진, 이직이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공부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이 긴 시간 동안 진절머리 나는 책밖에 본 기억이 없는데, 어떻게 책에서 즐거움을 얻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민중의 대다수가 문맹이었던 시절에 귀족 또는 권력자들은 문자와 책, 지식을 독점함으로써 지배 수단으로 삼았다. 소위 ‘배운 것들’의 지배욕은 오늘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지식을 일부가 독점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나라는 존재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식과 사상을 습득하여 나를 바로 세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실용성이 강화되는 시대일수록 인문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정한 기술이 쉽게 보편화되는 사회에서 차이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이기 때문이다.
가끔이나마 서점에 방문하길 권한다. 이제 서점은 책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갖춘 공간으로 거듭났다. 다양한 콘셉트를 갖춘 동네의 작은 독립 서점도 눈에 띈다. 특히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서점에 가보시라. 학부모는 자녀를 학생으로 키우지만, 부모는 아이를 사람으로 키운다.
임동건 파지트 출판사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