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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중산층, '빚더미'에 몰락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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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중산층, '빚더미'에 몰락 위기

2021년 기준 전세계 주요 지역별 고소득층, 중산층, 저소득층 자산 비중 추이. 녹색이 중산층이다. 사진=WIL이미지 확대보기
2021년 기준 전세계 주요 지역별 고소득층, 중산층, 저소득층 자산 비중 추이. 녹색이 중산층이다. 사진=WIL
전세계적인 부의 불평등이 지난 19세기말 ‘도금 시대’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우하는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자본주의의 허리로 표현되는 중산층을 둘러싸고 눈에 띄는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돼 주목된다.

유로존에서는 중산층의 지위가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는데 비해 아메리칸 드림으로 상징되는 미국에서는 중산층이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 몰락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불평등연구소(WIL)가 7일(이하 현지시간) 발표한 ‘2022년도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서 지적된 수많은 문제 가운데 하나다.

WIL은 소득 불평등 연구분야의 권위자인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등이 참여하고 있는 사회과학 연구기관으로 지난 2017년부터 세계 불평등 보고서를 발간해왔다.

미국과 유럽 중산층 ‘역전 현상’


2021년 기준 초고속득층(전체의 1%), 고소득층(10%), 중산층(40%), 저소득층(50%)간 소득 및 자산 비교. 사진=WIL이미지 확대보기
2021년 기준 초고속득층(전체의 1%), 고소득층(10%), 중산층(40%), 저소득층(50%)간 소득 및 자산 비교. 사진=WIL

8일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에 따르면 보고서는 고소득층와 저소득층의 경제적 불균형은 지난 1980년 이후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심화되고 있으나 미국이 유럽에 비해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특히 “유럽에서는 중산층이 미국에 비해 강한 기반을 유지해왔지만 미국에서는 중산층의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중산층의 자산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중산층을 쪼그라들게 하는 가장 대표적인 배경으로는 주택담보대출(모기지)과 대학생 학자금 대출과 관련한 빚이 꼽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내집마련과 고등교육을 받기 위한 대출로 미국 중산층이 빚더미에 깔리면서 미국 전체가구의 자산 대비 중산층 자산의 비중은 1980년 34%에서 현재 28%로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비해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유로존 경제대국인 프랑스의 경우 중산층 자산의 비중은 여전히 40% 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결과 19세기말부터 20세기초까지는 유럽 사회의 계층간 경제적 불균형이 미국보다 심했으나 20~30년이 흐른 이제는 미국의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 격차가 더 벌어지는 방향으로 반전이 이뤄졌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유럽의 중산층은 아직은 탄탄한 지위를 잃지 않고 있는 반면에 미국의 중산층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때문에 그 비중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다는 뜻이다.

모기지와 학자금 대출 문제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가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는 조짐은 미국 중앙은행 보고서에서도 이미 지적된 바 있다.

뉴욕연방준비은행이 지난 5월 펴낸 가계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평균 부채는 5만2940달러(약 6200만원)로 주로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구입자금 대출, 신용카드 관련 부채, 대학생 학자금 대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3만6730달러(약 4300만원)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고 학자금 대출이 5730달러(약 670만원)로 2위, 자동차 대출이 5000달러(약 600만원)로 3위를 각각 기록했다.

이같은 구조 속에서 지난 3분기 현재 미국의 가계부채는 15조2400억달러(약 1경7990조8200억원)에 달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달았다. 이 역시 주택담보대출이 지난 분기보다 크게 늘어난 결과다.

미국에만 국한된 문제 아니다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 경제대 교수.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 경제대 교수. 사진=로이터


그러나 WIL에 따르면 이는 미국에만 해당하는 문제로 그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보고서 작성에 처음부터 참여해온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는 첫 보고서인 ‘2018년도 세계 불평등 보고서’가 2017년 12월 발표된 후 미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미국이 세계 불평등의 나쁜 본보기가 되고 있다”면서 “미국의 사례를 좇는 나라가 많아질수록 전세계 불평등은 더윽 심화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WIL은 2022년도 보고서에서도 “지난 1995년 전세계 억만장자들이 보유한 부는 전세계 부의 1%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2750명에 불과한 억만장자들이 지닌 자산이 전세계 자산의 3%로 크게 늘어나 지구촌 사람의 절반이 가진 재산과 2750명이 가진 재산이 거의 비슷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 정도면 19세기의 마지막 30여년간 서구 자본가들이 약탈적인 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해 떼부자가 되면서 사회계급간 불평등이 극에 달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이혜영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