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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증권사가 ‘은행의 ETF’에 방심하면 안 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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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증권사가 ‘은행의 ETF’에 방심하면 안 되는 까닭

금융증권부 강수지 기자
금융증권부 강수지 기자


“투자자들이 은행의 상장지수펀드(ETF) 매매에 관심을 보일까요? 귀찮은 신탁 방식에 실시간도 아닌 지연 매매. 수수료까지 생각하면 투자 매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최근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이 내놓은 퇴직연금 ETF 상품을 두고 어느 증권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투자자들은 그동안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에서만 ETF 투자가 가능했으나, 이제 은행의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에서도 ETF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증권업계에선 은행의 ETF 상품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그러나 은행이 보여준 추진력을 살펴봤을 때 방심은 금물이다.

앞서 은행은 투자자들이 퇴직연금 계좌에서 바로 ETF에 투자할 수 있도록 매매 시스템을 마련했다. 실시간 매매는 어려워 약간의 시차를 둔 지연 매매 시스템을 가동할 작정이었다. 실제 한 은행은 ETF 매매 시스템 가동을 앞두고 문자로 홍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해당 은행의 시스템 가동 하루 전날 이를 알아차렸고 가동을 금지했다. 증권사 고유 업무의 영역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유권해석에 은행은 애써 준비해온 시스템을 쓸 수 없게 됐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해당 시스템을 신탁 방식으로 가동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금융당국의 유권해석에 어긋나지 않는다.

은행은 증권사와 같이 ETF 투자 때 발생하는 수수료를 없애는 등 투자자 잡기에 혈안이다. 증권사로 이동하는 투자자들을 막고 은행에 붙잡아둘 심산이다.
현재 증권업계는 이를 두고 크게 경계하지 않고 있지만, 투자자들은 이미 은행의 ETF 상품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퇴직연금 특성상 장기투자 관점에서 지연 매매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은행에서 증권사로 계좌를 이동하는 번거로움을 기피하는 투자자도 존재한다.

이처럼 증권업계가 생각하는 은행 ETF의 단점들이 투자자에겐 단점이 아닐 수 있다. 증권업계는 은행에서 증권사로 옮겨오는 투자자가 끊기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방심해선 안 된다. 실시간 매매 외의 여러 장점을 찾아 공략할 필요가 있다.


강수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ksj8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