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소식 전문지인 맥루머(macrumors)는 23일(현지시각) “애플이 이날 오전에 터키에서 온라인 제품판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맥루머는 애플의 터키 매장은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나 환율 변동성으로 인해 현재로서는 가상 카트에 추가하거나 구매할 수 없다고 전했다. 즉, 소비자가 애플 스토어에 접속하면 구매 희망 기기를 선택한 뒤 가상 카트에 담고 추후 결제절차를 진행하는데, 가상 카트 담기 버튼이 비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이코노믹이 24일(한국시각) 오후 2시 현재 애플 터키 스토어 사이트에 들어가 구매 절차를 진행해 본 결과 여전히 결제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리라화 가치는 달러 대비 50% 가까이 하락했다. 리라화는 레젭 타입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최근 금리 인하를 단행한 뒤 추가로 15% 하락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맥루머는 애플이 터키에서 언제 판매를 재개할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나 인플레이션이 20%에 가깝고 에르도안 정부가 금리 인상을 거부하고 있어 하락세가 지속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판매 중단 기간이 길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터키에 다수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도 애플과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아직 판매 중단과 같은 최악의 결정은 내리지 않고 있다. 다만, 리라화 폭락 상황이 길어질수록 특단의 조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진출업체들은 3년 전에도 리라화 폭락 사태를 경험한 적이 있다. 현대차는 이즈미트시에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지에서 생산한 물량의 90% 이상을 서유럽으로 수출해 리라화의 영향은 크게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분품을 수입할 때 리라화 가치가 급락하면 지급해야 할 달러 금액이 커지기 때문에 완성차 제조 원가가 올라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가뜩이나 위축된 시장 상황에서 원가 부담이 높아지면 터키에서 만든 자동차와 수익성이 상실되어 수출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현지 법인이 한국 공장과 체코 등 유럽 내 공장에서 만든 자동차를 들여와 판매해도 수입 가격 상승과 소비심리 악화 등으로 인해 팔기 어려울 수 있다.
LG전자는 터키 매출 비중은 작지만, 현지 업체인 아르첼릭과 50대50으로 합작해 현지 법인을 세우고 에어컨을 생산·판매하고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매출을 달러로 바꿀 때 발생하는 환 손실이 가시화하고 있어 현지 판매량 감소는 물론 완성품 제작을 위한 부품 공급량도 줄일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도 중동·아프리카의 매출 비중이 10% 미만이지만 터키가 이 권역에서는 2~3번째 시장이라 현지 시장 상황 변화에 따른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는 한국의 17번째 수출 상위국가이며,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수출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 올해 1~10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58억86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2% 증가했으며, 수입은 9억8800만 달러로 9.0% 감소하는 등 코로나19 사태 이후 교역량이 늘고 있다. 하지만 리라화 폭락의 영향으로 교역액이 증가했어도 각 기업이 거둬들이는 수익은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지난 2018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터키를 향해 관세 폭탄을 던지자 리라화가 급락한 적이 있다. 당시 터키는 물가 급등에 상인들이 물건을 팔지 않고 재고로 쌓아두면서 일반 국민이 물품을 구하지 못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다른 편에서는 가격이 폭락한 명품을 사재기하기 위해 매장과 백화점 등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목격되는 등 경제적 혼란을 겪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