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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뿌리를 찾아서②] 새로운 100년을 기약하는 버팀목, 농협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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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뿌리를 찾아서②] 새로운 100년을 기약하는 버팀목, 농협은행

1907년 금융조합에서 내려온 뿌리, 농업은행과 만나 농협으로 재탄생
사채에 시달리던 농민, 온전한 ‘금융’의 세계로…60년간 농민의 지지대로
양적 성장 통해 금융기관으로 성장…90년대 외국계 자본에 맞서는 ‘민족은행’
새롭게 출범한 농협은행…디지털 혁신 통해 새로운 100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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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농업은행 개업식 [사진=농협중앙회]

“농업이 대우 받고 농민이 존경 받는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8월 15일 창립 60주년을 앞두고 이틀 전 열린 13일 ‘영상 창립 기념식’에서 던진 화두다. 이 한마디에는 지난 60년 간 농민의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 온 농협과 NH농협은행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NH농협은행은 태생부터 은행법이 아닌 '농협법'에 의해 설립된 우리 민족 자본으로 만든 민족 은행이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기반은 농업이란 점에서, NH농협은행의 60년은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본지는 지난 60여 년을 걸어온 NH농협은행의 역사를 통해 그동안 우리 민족 자본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또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NH농협은행의 행보를 통해 미래로 향하는 단초도 얻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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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은행의 변천사 [자료=농협중앙회]

◆금융조합에서 내려온 뿌리…농업은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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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금융조합연합회 건물 [사진=농협중앙회]

NH농협은행의 뿌리는 구한말 지방금융조합에서 비롯됐다. 지방금융조합은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 농민들이 한반도로 이주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금융 수요에서 비롯됐다. 초기 지방금융조합은 농사 지도 활동을 담당하던 ‘농회’에서 분리돼 만든 것이 시초다. 각 지방 별로 유지나 지주, 주민들의 출자로 설립돼 대부 및 예금 업무 등의 기능을 수행했다. 은행보다 신용협동조합적 성격을 지닌 것.

이후 한국통감부가 주도해 지방금융조합에 대한 법제화를 진행했다. 1907년 5월 ‘지방금융조합규칙’과 ‘지방금융조합설립에 관한 건’이 공포 되면서 본격적인 금융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 1918년에는 ‘금융조합령’을 제정해 지방금융조합에서 '금융조합'으로 명칭도 변경했다.

1928년 9월에는 조선금융조합협회가 결성됐지만 운영이 원활하지 못해 해체된다. 1933년에 결성된 조선금융조합연합회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산된다.

이런 상황을 겪으며 해방 후 등장한 것이 농업은행이다. 1956년 5월 정부는 영농기를 앞두고 영농 자금의 방출을 위해 기존의 금융 조합과 대한금융조합연합회를 모체로 하는 농업 은행을 설립했다. 다만 농협 은행법의 출자 조항 삭제 등 절차나 과정 때문에 실질적으로 농업은행이 첫 업무를 개시한 시점은 1958년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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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수확물을 고르고 있는 농민들(왼쪽)과 1958 농업은행 개업식 [사진=농협중앙회]

문제는 농업은행과 같은 해 출범한 농업협동조합 간 유기적 협조가 부족했다. 소농 경제가 특징인 국내 농업 구조 아래 농민 협동조합 사업은 경제·신용사업을 띌래야 띌 수 없었다. 이를 이원화 시키자마자 자금 지원 등이 원활하지 못했고 기대 만큼의 성과도 얻지 못했다.

◆'농협'으로의 출발, “농업인 지위와 삶의 질 향상

결국, 19618월 농협중앙회를 출범 시키면서 구 농협과 농업은행을 통합시킨 종합농협이 발족됐다. 정부의 농업 정책금융을 대행할 수 있는 전담 금융기관이 탄생한 것이다. 다만 농업은행의 일부 도시 점포는 중소기업은행으로 분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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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창립기념식(왼쪽)과 1961년 농사자금 배정공고를 보고있는 농민들 [사진=농협중앙회]

출범 이후 종합농협은 이동 조합, 시군 조합, 농협중앙회 3단계 조직 체계를 구성해 사업기반이 취약하거나 부실한 체계를 개편했다. 특히 정부 주도로 탄생 돼 자본 조달 능력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1964년에는 ‘농협저축증대 5개년 계획’도 실행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농협은 농업 금융 전담 기관으로 입지를 다진다. 1961년부터 1968년까지 예수금은 약 13배 증가했으며 전체 자금 조달 규모도 169억 원에서 1031억 원으로 6배 늘었다. 농협의 외부 자금 의존도도 77%에서 52%로 크게 완화 됐다. 특히, 모인 자금을 바탕으로 농협은 1969년 상호 금융 제도를 도입했다. 농업 고금리 사채 대환 실시 등을 통해 사채 금리를 크게 인하하면서, 농촌의 고리 채 문제를 해결한 1등 공신으로 떠오른 것. 1972년에는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제도를 도입해 담보력이 부족한 농업인에게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1973년에는 면 단위 이상 모든 단위 조합에서 상호금융 업무를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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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단위조합 전경(왼쪽) 및 단위조합 창구 모습 [사진=농협중앙회]
◆민족은행으로 거듭난 농협, 농민의 지지대로 우뚝 서다

1980년에도 농협은 농산물 수급 불균형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의 조력자 역할을 수행했다. 영농자금금리를 10%에서 8%로 인하했으며 1987년에는 농가부채경감대책을 통해 사채대체자금을 지원했다. 낮은 이자로 농지 구입 자금까지 공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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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농협 온라인 창구(왼쪽)와 1997년 경제살리기 외화저축운동 [사진=농협중앙회]

1984년에는 농협 전 점포에 걸쳐 온라인 망이 구축됐다. 이때 농산물을 외상으로 구입할 수 있었던 ‘알뜰 적금’, 농촌을 돕기 위한 ‘내 고향 적금’ 등 특성을 살린 다양한 저축 상품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90년 말 농협은 전체 금융기관 중 최고의 수신고를 기록하며 전국 최우수 저축 기관으로 선정된다.

1990년대 농협은 슬로건 그대로 ‘든든한 민족 은행’의 모습을 보였다. 당시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1995년 WTO 출범 등 농산물 시장이 개방된 시기였다. 여기에 1997년 외환위기까지 겹쳐 국내 농업은 존폐 위기에 처한 시기다. 농자재 값 폭등, 농산물 소비 감소 등은 농가의 경영 수지도 극도로 악화 시켰다. 이런 가운데 농협은 전 농가를 대상으로 금리 인하와 보조금 지원 규모를 늘려 농민들의 부담을 줄여줬다. 농협은 1998년 이후 6번의 농가부채경감대책에 맞춰 회생 자금 지원, 연체이자 감면 등을 시행해 농민들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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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농업구조개선가업과 농업금융 선진화 심포지엄 [사진=농협중앙회]

농협은 일반 은행 업무 외에도 정책 대출도 실시해 국가나 공공 단체 업무 대리 등 공공성이 높은 사업도 적극 지원했다. 특히 외환위기로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3000억 원의 특별 자금을 지원하고자 ‘YES, OK론’ 상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변혁기의 농협, 기반 다지며 미래를 기약

2000년대는 농업 환경에 있어서 또 다른 변혁기였다. 2000년 9월 인터넷뱅킹서비스를 실시한 농협은 수신 기반 구축과 사업 안정화에 중점을 두고 사업을 펼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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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인터넷뱅킹 개시 장면(위쪽)과 2004년 도농 상생예금 판매 [사진=농협중앙회] 사진

그 결과 농협의 예수금은 1965년 106억 원대 에서 2010년 123조 원이라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이어 2020년 말에는 294조 9999억원 대로 증대됐다. 이에 국제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 S&P로부터 각각 A1, A+라는 높은 등급도 부여 받았다.

외국환 사업도 빠질 수 없다. 농협은 1969년 재무부로부터 외국환 은행 인가를 받아 업무를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수출 경기 상승으로 취급 실적이 매년 늘어나 1980년에 11억 8100만 원을 달성했다. 특히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에는 오히려 국제 금융 업무 기반을 구축하고, 외국환 전산통합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금융 산업의 국제화를 미리 준비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사업 구조 개편을 통해 뉴욕 지점을 개설하기도 했다.

농협은 카드 사업 면에서도 눈부신 두각을 드러냈다. 농협은 1984년 은행 신용카드(BC) 사업에 참여해 1991년 비씨 카드사 회원 은행 중 최초로 100만 명을 달성했다. 2004년에는 수익 다변화를 위해 체크카드 판매에도 나서 2009년에는 고유브랜드 ‘NH채움카드’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에 지난해 기준 카드 이용액만 101조 5165억 원, 시장 점유율 11.5%에 달하는 등 업계 4위로 성장했다.

◆NH농협은행으로의 새출발…디지털 혁신으로 새 100년 꿈꾸다

2012년 3월 2일 농협중앙회는 기존 중앙회 체제에서 1중앙회, 2지주사(농협경제지주, NH농협금융지주) 체제로 전환했다. 이는 1990년부터 이어진 '신용 사업'과 '경제 사업'의 분리를 통한 농협 개혁의 논의 결과다. 이 무렵 NH농협은행은 농협금융지주의 100% 자회사이면서 동시에 일반적 은행 법 상 시중은행이 아닌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른 농업계 특수은행으로 설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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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새농협 출범 기념식 [사진=농협중앙회]

NH농협은행은 100% 국내 자본으로 설립된 이른바 ‘민족은행’이다. 이에 걸맞게 NH농협은행은 출범 당시 ‘서민금융 전문은행으로의 재도약’을 천명했다. 특히, 저금리 대출 상품에 주력했다. ‘새희망홀씨대출’, ‘희망드림대출’ 등을 출시해 소외된 저신용자들의 조력자로도 나섰다. NH농협은행의 1122개 점포 60% 이상은 금융소외계층이 많은 비수도권 지역에 위치해 있다.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국민 전체에 고르게 제공해 도·농간 금융 격차 해소에 첨병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성장세도 눈부시다. 출범 당시 NH농협은행의 총 자산은 206조 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377조 원으로 두 배 가량 성장했다. 순이익도 약 4000억 원에서 1조370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 NH농협은행은 경영전략으로 ‘비욘드 뱅크(Beyond Bank), 고객 중심 종합 금융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을 선언했다. 데이터 기반 마케팅을 강화하고 빅테크와 제휴로 ‘디지털 생활금융 플랫폼’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농협은 '디지털혁신부'를 신설해 디지털 시대를 맞아 유통과 금융을 아우르는 '종합 그룹'으로 역량을 키우고 있다. 특히, NH농협은행은 뱅킹앱을 고도화하고 디지털소외 계층을 돕는 ‘NH포디예금’ 등 비대면 상품을 출시로 디지털 혁신에 기반한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NH농협은행은 마이데이터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범 농협의 압도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고객의 일상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금융서비스’를 지향한다. 특히 NH멤버스의 방대한 유통 데이터는 NH농협은행이 지닌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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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NH농협은행 본점. [사진=NH농협은행]

권준학 NH농협은행장은 “디지털 금융 혁신은 농협은행의 미래 생존을 위한 최우선 과제다”며 “고객의 이해 아래 차별화된 디지털 생활 금융 플랫폼을 구현해 '고객 중심 디지털 금융 선도 은행'으로서 거듭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농협 금융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시장과 고객으로부터 신뢰라는 값진 자산도 얻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신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o63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