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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피해 안 보면 된다"는 보신주의 '치료'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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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피해 안 보면 된다"는 보신주의 '치료'할 필요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23)] 되풀이 되는 '방관자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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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효과를 주제로 삼은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 피고인.
최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운행 중이던 한 통근 열차 안에서 노숙자가 다른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한 여성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시 열차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은 끔찍한 사건을 보고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건을 담당한 한 경찰은 "당시 많은 사람이 개입했어야 한다. 누군가가 뭔가를 해야 했다"며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 준다. 누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겠느냐"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사건이 일어난 펜실베이니아의 남동부 교통국은 이번 사건을 "끔찍한 범죄 행위"라며 "열차에 이 끔찍한 행위를 목격한 다른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신고했다면 더 빨리 범행을 멈출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사건은 비단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2012년 2월 10일 오후 학원을 가기 위해 서울지하철 면목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한 모양(13)은 뒤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1m80㎝가 넘는 남성이 뒤에서 계속 몸을 밀착시켰기 때문이었다. 이 남성은 지하철에 타자마자 한양을 반대편 문 쪽으로 밀어붙이고 한양을 협박한 뒤 바지 안으로 손을 넣고 성추행을 했다. 당시 열차의 좌석은 꽉 차 있었고, 다수의 승객이 서 있었다. 이 추행은 뚝섬유원지역에서 내릴 때까지 14분여간 계속됐다. 하지만 역에 내린 후에도 2층 승강장 자판기 부근에서 또다시 성추행을 당했다. 도심에서 여학생 성추행이 일어났지만, 모두가 외면했다. 눈앞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데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고, 여학생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통근열차에서 노숙자의 여성 성폭행 사건 발생

이와 유사한 사건의 결정판은 1964년 3월 13일, 뉴욕 주 퀸즈에서 일어났다.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라는 젊은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 근처에서 칼을 든 강간범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녀는 새벽 3시 15분에서 50분까지 약 35분 동안 세 번에 걸쳐 칼에 찔려 비명을 지르면서 이리저리 피하며 몸부림쳤지만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처음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 보도되었을 때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인이 일어난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38명의 이웃 주민이 비명을 들었고, 도망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녀의 모습을 35분 동안 창문을 통해 지켜보았지만, 주민 중 누구도 경찰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었다. 어떻게 사람이 한 여성이 살해당하는 동안 그 광경을 목격한 많은 이웃 중 한 사람도 직접 도움을 주거나 단순히 전화로 신고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과연 이 이웃들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인간들인가? 물론 사건 발생 40여 년 후인 2007년, 뉴욕타임스 등 이 사건을 대서특필한 언론 보도는 많이 과장되었다는 것이 상세한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52년 만에 제노비스 오보를 인정하는 사과 기사를 실었다. 처음의 보도처럼 사건의 목격자가 38명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처음 범인이 제노비스를 폭행했을 때 그녀를 내버려 두라고 고함친 사람도, 경찰에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

일부 목격자들도 여자의 비명을 듣고 창밖을 어렴풋하게 보긴 했지만 그것이 살인 사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목격자들은 연인끼리의 사소한 다툼으로 여겼다고 후에 진술했다. 한 여성은 범인이 다시 돌아와 자신을 해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제노비스가 숨을 거둘 때까지 안고 있기도 했다. 이 충격적인 사건 보도로 사회심리학에서는 '방관자 효과'라는 이론이 탄생했다.

승객들 끔찍한 사건 보고도 방관

1968년 사회심리학자 달리(John Darley)와 라타네(Bibb Latane)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유명한 실험을 고안했다. 그들은 목격자들이 도움을 주지 않은 것은 대도시의 비정함이나 주민들의 무감각함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미 경찰을 불렀을 거라는 추측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했다. 그들은 이 현상을 '방관자(傍觀者) 효과'라고 부르고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그들은 방관자 효과는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가정했다. 즉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도움을 덜 줄 것이라고 가정했다.

달리와 라타네를 위시하여 여러 심리학자들이 '방관자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를 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실험에서 달리와 라타네의 가설이 지지되었다. 그들은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방관자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책임감 분산(分散)'에서 찾았다. 책임감 분산은 상황의 모호성과 더불어 지켜보는 사람이 많으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리킨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실험들에서 혼자 있을 때는 85%가 도움을 주는 반면, 두 명이 있을 땐 62%, 네 명이 있을 땐 31%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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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고인' 포스터.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의 연구에 의하면, 쥐들조차도 곤경에 빠진 다른 쥐를 도울 줄 알지만 주변에 도움을 주지 않고 방관하는 다른 쥐와 함께 있을 때는 도움에 나설 가능성이 작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쥐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방관자 효과'(bystander)를 갖는다는 것이다. 연구팀에 의하면, 이번 연구 결과가 도움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것이 개체의 성향이나 도덕성보다는 상황에 달려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 사회에도 의미가 있는 결과라고 했다.

방관자 효과가 일어나는 이유로는 '책임감 분산' 외에도 '변명의 정당성'이 있다. 혼자 있는 상황에서는 도움을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있었을 경우에는 도덕적 책임까지도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방관자 효과는 '상황 인지의 부정확성'에서 생길 수도 있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인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인지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경우가 많다. 만약 다른 사람들도 아무런 도움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 상황은 도움을 줄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1988년 개봉되어 주인공 역을 맡은 조디 포스터(Jodie Foster)에게 61회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피고인(The Accused)>도 방관자 효과를 주제로 삼은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소도시 변두리의 허름한 술집 구석방에서 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다. 강간을 당할 당시 그 구석방에 여러 명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 중 일부는 피해자가 강간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와주기는커녕 웃기까지 했다. 올해(2021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조디 포스터는 <피고인>에 대한 회고에서 "'당시는 여성이 치마를 입고 있었으니 강간당하는 게 정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방관자 효과 다양한 형태로 표출

안타깝게도 방관자 효과는 현재도 다양한 여건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학교 교실에서도 소수의 불량학생이 착한 학생을 괴롭히는 것은 못 본 척 묵인하는 다수의 학생들 때문에 괴롭힘은 지속된다. 회사와 같은 조직에서도 나만 피해를 안 보면 된다는 보신주의로 동료들이 괴롭힘을 당해도 눈을 감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무턱대고 '비겁자'라고 비난하거나 매도할 수 없다. 그리고 이웃이 피해당할 때 방관하는 사람들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더욱 살만한 격조 높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도덕적이 되라"는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방관자 효과의 본질을 설명하고 그럴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체험까지 하는 실질적인 교육까지 나아가야 한다. 항상 말보다는 경험이 더욱 효과적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