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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은행점포, 디지털 만능주의에 소실된 ‘고객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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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은행점포, 디지털 만능주의에 소실된 ‘고객 배려’

지난해 은행 점포 6411개…전년比 303개 감소
시중 5대은행, 내년 1월까지 점포 100여 개 통폐합 예정
문제는 디지털 취약자, 비대면 이용률 낮은 고령층 등 배려 부족
금융노조 “금융 소외 계층에 대한 고려 없어”

전국은행산업노동조합협의회와 금융정의연대가 지난달 25일 오전 금융감독원 앞에서 ‘은행점포 폐쇄 중단 및 감독당국의 점포폐쇄 절차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미지 확대보기
전국은행산업노동조합협의회와 금융정의연대가 지난달 25일 오전 금융감독원 앞에서 ‘은행점포 폐쇄 중단 및 감독당국의 점포폐쇄 절차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은행권을 둘러싼 통폐합 흐름에 내년 초 100여 개의 영업점이 사라질 전망이다. 이는 코로나19에 빨라진 ‘디지털 전환’과 일맥상통하지만, 일각에서는 디지털 취약자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내년 1월 17일 영업점 30개와 출장소 5개, 24일에는 영업점 7개를 인근 지점과 통폐합한다. KB국민은행 역시 내년 1월 21일 영업점 24개와 출장소 11개를 통폐합한다. 하나은행은 다음 달 영업점 11개를, 내년 1월 10일에는 서울 광장동점과 울산 삼산점을 통폐합한다. 우리은행도 다음달 30일 영업점 21개, 출장소 3개를 정리하고 기존 영업점과 통폐합한다. 이밖에도 ▲NH농협은행(7개) ▲BNK부산은행(8개) ▲BNK경남은행(2개) 등이 일부 영업점을 연말까지 영업하고 기존 영업점과 통폐합한다.
이는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면서 은행점포의 효용성이 떨어진 영향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은행의 신용대출과 적립식예금 상품의 비대면 거래 비중은 70∼80%에 달했다. 특히, 하나은행의 경우 2분기 신용대출의 88%가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19개 국내은행 영업점포 및 임직원수 추이 [자료=금융감독원]이미지 확대보기
19개 국내은행 영업점포 및 임직원수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줄어드는 은행점포에 갈 곳 잃은 디지털 취약자들

은행 점포 축소는 가속화 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9개 국내 은행의 점포수는 6411개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 말 대비 303개(4.51%)나 급감했다. 이는 고정비용이 큰 점포를 유지하기보다 통폐합을 통해 점포수를 축소하고 거점 역할을 하는 일부 점포만 운용하는 형태로 영업점 운용을 효율화한 것이다.

문제는 급격한 영업점 감축에 따른 부작용이다. 올해 상반기 말 19개 은행 임직원수는 11만721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00명(1.51%)이나 줄었다. 5대 시중은행에서만 상반기 2600여 명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수많은 은행 임직원들이 직장을 떠났다.

더 큰 문제는 고령층 등 디지털 거래에 취약한 이른바 ‘디지털 취약자’들과 농어촌 지역 등 금융서비스 과소 제공이 우려되는 지역에 대한 금융 접근성이 악화된다는 점이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 따르면 고령층의 스마트폰 등 스마트기기 보유율은 77.1%로 일반 국민 대비 15.2%포인트 낮았으며, 특히 인터넷 이용자 가운데 고령층의 금융거래 서비스 이용률은 41.1%로 일반 국민 대비 19.7%포인트나 낮았다.
고령층 모바일 스마트기기 보유율 및 금융 서비스 이용률 [자료=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이미지 확대보기
고령층 모바일 스마트기기 보유율 및 금융 서비스 이용률 [자료=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일례로 전북 익산에 거주 중인 70대 고령자 A씨는 최근 5년간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 매번 버스 세정거장 거리를 30분 걸려 이동하고 있다. 이는 2016년 A씨가 거래하던 KB국민은행의 지점이 다른 지점과 통폐합됐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 직원은 A씨에게 모바일뱅킹 등을 권유하며 사용방법을 알려줬지만, A씨는 은행 영업점을 방문하는 것이 더 편하다며 5년째 은행 업무를 위해 30분 이상 걸리는 지점을 방문 중이다.

이러한 사례는 A씨만의 일이 아니다. 여러 은행들은 비대면 거래 비중이 증가하면서 대면거래 상품 대신 비대면 상품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모바일 앱 등에 오픈뱅킹이나 증권 등 각종 기능을 탑재하는 것으로 대면 거래를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은 스마트폰이나 PC가 없거나 사용에 익숙치 않은 디지털 취약자에겐 역차별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당국은 지난 3월부터 점포 폐쇄 전 사전영향평가에 따라 이동점포나 ATM 등 대체수단을 운용해야하는 내용이 담긴 ‘은행권 점포 폐쇄 공동절차’를 개정·시행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에만 78개 점포가 사라지는 등 온전히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달 25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금융정의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은행의 급격한 영업점 폐쇄를 비판했다.

노조 측은 “점포 폐쇄 지역은 주로 지방이고 노년층이 거주하는 격지 위주”라며 “비대면 거래 증가를 이유로 노년층 거주지 중심으로 영업점을 폐쇄하는 것은 금융 소외 계층에 대한 고려 없이 오직 수익에만 혈안이 돼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시행 중인 점포 폐쇄 공동절차는 세부기준을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어 은행 간 협의나 공동대응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며 “디지털 취약계층 밀집지역과 금융서비스 과소제공지역에 점포 폐쇄 시 스포츠의 드래프트 제도처럼 은행 간 순차적으로 폐쇄하거나, 은행 간 공동점포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신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o634@g-enews.com